로마서연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2,

생명있는 신앙 2013. 9. 28. 05:00

이스라엘은 그 탄생의 근원이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 작정에 있는 것이지만 이방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로 인한 정욕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된 근원으로부터 출생도 모두 하나님의 창조로 부터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처음 지음을 받은 만물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종속되어 태어난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지으심으로 되었다는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이방인들은 그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으심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실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욕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방인이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이처럼 하나님 앞에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욕을 일으켜 우리를 잉태하셨을 지라도 우리의 탄생은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잉태가 있어도 하나님의 허락이 아니라면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결국 우리가 죄의 열매로 잉태되었을 지라도 우리로 하여금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지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작은 죄로부터였습니다.

우리는 죄만 행하고 죄의 삶만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에 충성을 다하고 죄를 만족시키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 죄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의 영혼에 비춰졌습니다.

하나님은 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아들인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것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고 지속적으로 죄의 노예로 사는 것을 끊으시기 위해 죄에 대하여 값을 치르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그로 하여금 죄가 쏟아내는 모든 분노를 당하게 하시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가 깨달았던 하나님의 의는 바로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에 대해서 죽으신 것은 실지로,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해 이 땅에 생겨난 죄가 자기의 분노를 쏟아내고 스스로 자기의 죄를 끊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 이 세상에 죄가 종말을 고하여 하나님의 피조 세계의 무대에서 종영을 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의 끝입니다.

사도가 말한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선언하는 것,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이방인이 다 죄아래 있습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의로 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로 살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들을 흐트러지지 않고 사도가 전하는 말과 우리의 영혼에 비취는 성령의 조명하심에 집중하여 다시 지식을 얻으려 하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집중하는 것을 아주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나 유대인이나 모두가 죄 아래 있으며 죄의 지배아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죄의 본질은 우리 영혼의 지성에있는 우리를 살게 하는 지식이었고, 그 지식은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 아니라 온통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왜곡되고 거짓된 지식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알 수 없고우주를 논하고 세상의 철학을 설명할지라도 그 지식에는 무지와 결함이 함의 되어 있는 거짓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 지식으로 모든 것뿐만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판단하였으며, 이 지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이 지식은 거짓이고 진리로 부터 심각하게 왜곡되었기 때문에 죄의 본질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코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오직 한가지 죽는 것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안에 있는 죄,

죄의 본질인 지식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요구하고, 죄 자체로 살아있는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나 있는 삶입니다.  

예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라고 하셨을때 믿음이 없다는 말은 '그 사람의 지식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

믿음은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한 지식을 지각하여 전인으로 인식하는 행위입니다.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영혼이 하나님을 지각할 수 없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지성에 없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죄란?

하나님을 아닌 지식이 아닌 다른 지식을 지각하여 전인으로 인식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죄는 죄된 자신을 아주 잘압니다.

자신의 존재의 비참을 스스로 인식하고 저주하며, 그 원인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로 말미암았다는 사실까지도 잘 압니다. 

영혼은 미래에 처해지는 자신의 운명까지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처우하시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미움과 분노를 드러냅니다.

창세기 6:5~6에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사" 라 하신 것은 타락한 사람의 영혼에서 쏟아내는 사람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크게 후회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결과로 사람은 자기를 구성하는 영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개혁파 장로교회의 교리가운데 TURIP 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이 교리는 개혁파 장로교회의 오대강령입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신조에 대항하여 고백한 교리로, 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교리로 도르트회의에서 인정한 교리입니다. 

이 교리에서 전적 타락이라는 말은 완전한, 조금도 선함이 없는 뜻을 가진 말로 타락 뿐임을 말하는 고백입니다. 

개혁파 교회의 신앙은 사람은 완전히 타락했으며 선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완전한 죄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의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는 사람의 죄된 지식으로 판단하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피조물을 살리는 지식으로 행하는 것 '죄'와 대비한 상대적으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논하되 스스로 드러낸 오류를 정당화하는 지극히 어리석을 실수에도 감복하고 기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락한 사람이 자기 지식으로 판단하는 선하게 보이거나 감동적인 여러 일들을 통한 즐거움을 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점에 주의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의가 없다는 것은 사람을 살릴수 있는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이고,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은 지성에 살릴수 있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지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사람에게 선하게 보이거나 기쁘게 보이는 수많은 일들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죄된 지식이 판단하는 것이지, 사람을 살리는 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의에 대하여라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요16: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죄에 대하여 죽으시고 다시살아나셔서 아버지께로 가신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다시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의는 다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가 말하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하는 것은 곧 죽음으로부터 다시살아날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의미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