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경건치 아니한자를 의롭다 하심(롬4:5) 8,

생명있는 신앙 2014. 3. 12. 07:16

그러면 경건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는 사회성과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어떤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자신을 복속시키고 사회의 규범과 질서에 적합한 행위에 합당한 자기의 굴복을 의미합니다. 이 굴복은 자기의 포기 의사를 실제적으로 인정 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말의 뜻은 헬라어로 δέβω라 하는데 이는 To worship, ‘경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고, 경배는 스스로 자신을 굴복시켜 낮추고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경건하다는 것은 자신을 버리고 의지할 대상에게 기대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삶의 표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삶은 의지하는 대상과의 사회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되자 영혼의 지성에서는 하나님에 관하여와, 대하여의 지식을 상실하였고, 자기와 실제적인 관계에 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 속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므로 이미 사회적 관계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지으셨으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사회일 뿐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의식을 가지고 삶을 사는 동안 자기의식으로부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함께 자기 인생을 고민하며 살다가 육체에게 주어진 삶을 마치고 저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게 될 때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충만하게 담아간다면 영생의 세상에서 그 아는 지식을 가진 만큼이나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로 삶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글리 현상에서 나타난 바와 같은 사람이지만 사람으로서 의식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의 존재는 사람과 한없는 거리감만 있을 뿐 결코 하나의 사회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로부터 지음을 받은 사람이 마치 모글리 현상의 사람과 같이 자기의 존재가 사람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태어났지만 늑대에게 길러지고 늑대 사회 속에서 자라다 보니 늑대 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어 늑대사회에 속한 사람과 같이,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아 하나님에 의해서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결함의 지식 사회 속에서 자라다보니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사회를 형성하고 사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하지 아니함이라는 사도의 말의 의미를 장시간 동안 말하면서 본문의 의미와는 무관한 사회적 관계와 또는 모글리 현상과 같은 이상한 말들을 한없이 끌여들여 이야기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경건하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사회성과 관계가 있는 말입니다.

곧 성경이 말하는 경건하다라는 말은 사람으로서 전 인격적인 삶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지음을 받은 그 존재대로 살 때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늑대 사회성으로 사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결함의 타락 지식 사회에 속하여 하나님이 없는 사회를 사는 것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관점으로 볼 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아닌 모글리 현상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함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회에 복속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끌고 하나님의 사회로 가서, 하나님을 향하여 경배하며, 하나님의 질서에 따라 우리 스스로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함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도가 말하는 의미에서 보면 일을 아니할 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라고 말하는 것은 실지로 사람은 하나님의 사회에 속하여지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입니다. 비록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은 깨어져 버렸으나 여전히 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나 모글리 현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지만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지 아니하고 늑대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그 사람을 향하여 믿음을 드러내고 자기의 안전에 대한 안정감을 가지고 신뢰하는 것과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우리는 마귀자식입니다.(8:44)

그런 우리가 마귀와의 사회적 관계를 벗어나 우리의 본성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신뢰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잔뜩 경계하고 다가갑니다. 혹시 그가 우리를 해치는 존재가 아닌지, 우리에게 불행을 주는 존재가 아닌가 하고 의혹을 가지고 접근하여 아주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마치 늑대 소녀들이 조심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 사람과 평온을 유지하는 관계를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사람이 늑대 소녀들에게 위협이라도 가하면 사납게 달려들고 영원히 경계의 끈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실지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모글리 현상을 가진 늑대소녀와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주인이 사단이과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인데 사단의 가족에 속하여 있다.” “그의 눈을 뜨게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26:18)”,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없이 새로운 눈을 뜨고 세상과 하나님을 향하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늑대 소녀들이 눈을 열고 자신의 존재와 사람들을 향하여 보고, 자기안에서 자기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사람으로서 사람의 의식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은 "자신을 하나님의 사회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사람의 의식을 가지지 않았고 하나님에 대하여 경계를 늦추지 아니하고 신뢰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우리를 보시고 믿음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경건하지 아니하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향하여 접근해 가고 있는 상태이고 믿음을 드러낼 만한 어떤 근거를 우리의 의식으로 가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불러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