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온전한 상태를 유지한 존재에서 사회를 구성하면 반드시 천국을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이 형상 안에는 아담이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들을 짓는 선재하는 지식이 있었듯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본유지식이 있어 그 지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냄으로 관계를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기 때문에 천국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유지식의 조명을 받지 아니하고는 스스로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앞에서 모글리 현상을 말씀드렸습니다.
아말라와 카말라는 늑대에게 자랐고 늑대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며 살다가 늑대처럼 동물을 잡아먹던 가운데 선교사의 목장을 침입한 것이 자기의 정체가 발견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부모와 사람의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아 늑대의 보호 아래 자라게 되었는데 그결과 늑대의 사회성을 배우고 의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이들을 조사한 어떤 관심 있는 연구가에 의하면 1920년부터 2009년까지 약 80 여명의 어린이가 버려져 동물과 사회를 구성하는 모글리 현상을 가진 사람들이 발견되었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동물의 사회를 구성하는 현상을 분명히 드러내 주는 것은 사람은 후천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그 습득한 지식에 의해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011년 KOREAN GOD“S TALENT라는 한 공중파 매개체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최 성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전에서 살았던 한 사람이 출연하여 자기가 3살 때에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다섯 살 때에 구타를 당하여 이를 이기지 못하여 고아원을 탈출하여 도시 한복판의 길거리에서 12년 동안을 홀로 살아온 고백을 들을 수 있었고, 전 세계의 공중파 매채에 출연하여 자기의 삶을 고백하여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의 놀라운 이야기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사람으로부터 버려져 외톨이가 된 상태로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살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숙소는 건물 빌딩의 지하 계단이었고,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 학교에도 다닐 수 없었고, 배우고 관계하는 것은 지극히 재한되어 사람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버려진 한 짐승과 같이 취급을 받고 살았습니다. 세상에 나오기 까지 12년 동안이나 얼굴을 씻는 것 뿐만 아니라 양치를 해야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껌을 팔아 얻은 수입으로 가계에서 필요한 음식을 사 먹는 경제활동에 대해서도 몰랐습니다.
사람이 거처하는 동내 한 가운데에 사람안에서 모글리 현상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만난 사람들이 자기에게 거내는 언어를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몇 마디 그와 관계를 가졌던 껌팔이 방법을 가르쳐준 또 하나의 사회 소외자의 지식만이 그의 지식의 전부였던 것입니다.
그의 사회는 감정을 가진 사람과의 사회가 아닙니다.
사회가 가진 어느 정도의 묵시적인 기준이나 규칙의 적용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의 법과 규칙이 그를 적용하여 규제하기에는 그가 가진 지식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회가 그에게 법칙과 규칙을 제시하여 행동에 제약을 보일지라도 그는 그 제시된 규칙에 따른 행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제시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없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사회 속하면서 사람과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사회의 구성원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사회에 동참할 수 있는 사회에 속한 지식이 없고 사회는 그를 받아주기에 너무 자기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회는 사람의 영혼 안에 있는 자기지식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최소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회와 일치한 일반적인 지식 정도는 있어야 사람의 사회에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12년 동안의 삶은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연구 대상으로 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무조건 살아 단 한 번의 삶이니까”라는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모글리 현상을 통해서 우리가 알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이란?
사람으로서 사람이 되기 위해 지식을 가지는데 그 지식이 본래부터 사람에게 생산되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사회에 속해있어도 소외된 사람은 보고 듣는 것만으로 사회에 조화될 수 있는 스스로 지식을 가지지 못합니다. 지식은 사람에게서 나오지만 사람이 스스로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조명해주는 선재하는 지식이 없으면 필요로 하는 지식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지식을 주셔야 했습니다. 그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으로 살도록 주신 지식입니다. 이 지식에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 조명해줌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갖게 하고, 창조와 사람 자신에 관한 지식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알 수 있는 모든 지식으로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경건한 행동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의 사회적 관계의 발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지식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에게는 경건이라는 감정적 행위가 드러날 수 없습니다. 사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위치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주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해야하고, 우리의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시는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영혼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 하나님을 향하여 반응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 대한 삯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아니할 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살게 하시고 우리를 존재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
하나님께서 저것들을 기르시지 아니하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땅히 우리를 기르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경배하며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것과 전혀 관계없이 의롭다 칭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하지 아니하고, 믿지도 아니하고, 의롭지도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사도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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