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심(롬4:5) 3,

생명있는 신앙 2014. 3. 6. 07:10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때, 교회는 혼탁해졌고 절대적으로 개혁이 요구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를 비롯해서 수많은 젊은 신학자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개혁자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을 비춰 진리가 무엇인지 조명해 주심으로 인하여 크고 견고한 성으로 둘러싸인 천주교회를 향하여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독재와 타락으로 어둡게 물들여버린 천주교회를 대항하는 연약하고 가련하기 짝이 없는 개신교회가 이 땅에 싹을 틔우고 자랐습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 그 개신교회가 예전의 천주교회를 닮아 개혁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세속화되어 세상으로부터 질타를 당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므로 인하여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의 공 예배에 부지런히 참석하고 새벽기도도 하며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만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목사들은 교회에 하나님의 계신다고 큰 소리를 치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만나라고 하지만 그 교회에 하나님이 안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려 나간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것이고, 곧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께서 교회에 나가셨으나 교회는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세속적이고 율법적이며 지극히 거짓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머지않아 수많은 젊은 목사들이나 신학자들이 일어나 교회를 향하여 질타를 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개신교회는 예전의 천주교회와 같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과 단절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개신교회가 성령의 충만한 하나님의 종들의 질타를 완강하게 거부할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개신교회가 그 충고를 받아들이고 개혁에 참여하고 스스로 피를 흘리는 회개를 한다면 새롭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신교회를 새롭게 할 어떤 신학적인 진리들이 신학자들의 영혼에 비춰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아모리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치 아니함같이 개신교회의 죄악이 관영치 않아 얼마든지 회개의 기미가 있습니다.

회개!

지금 교회는 회개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세력을 잡고 있는 바리세인들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자리를 잡으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비참해지기 때문입니다.

 

몇 대가 지나갈까요?

아니면 다음 대에 일어날까요?

아모리 사람들은 400년 동안이나 참으신 하나님은 아브람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한 나라를 세우시고 세력을 확장해 가신 것처럼 아무도 알지 못하는 700인의 용사들이 시간을 먹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일어서는 그날 지금의 교회는 적나라하게 자기의 모습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용사들이 교회를 향하여 회개를 선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개신교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별도로 모아 온실에서 기르시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아모리가 깨닫지 못하고 더욱 죄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간 것과 같이 깊이깊이 빠져 들고 있습니다. 개신교회가 신실한 종들을 기르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기들의 죄를 향유하면서 회개하지 않고 교회에서 자기의 인생을 향유하고 자손들에게세습하며 교회를 자기들의 소왕국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 하나님 앞에 큰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탈법을 빙자하여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리는 신비주의적이며 지극히 세속적이며, 그것이 마치 교회의 본질처럼 왜곡되어 있어서 결코 진리가 무엇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져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 온갖 탈법과 비 도덕을 서슴치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잣대인 선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기준에 턱없이 모자랍니다. 속히 돌이켜 진리의 교회로 돌이키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탈법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의 구원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범죄한다고 해서 천국은 빼앗기지 않는 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바로 이 사상이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개혁주의 신학사상을 곡해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말은 맞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래서 믿으십시오.

당신이 믿으면 그 순간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본질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긴 시간을 교회의 타락의 위험과 우리 신앙의 위험을 스스로 경고하면서 사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몰두하여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선에 입각한 믿음을 우리가 가지려는 믿음을 향한 우리 믿음의 행위를 따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우리 앞에 있는 믿음을 잡으려는 것이지 이미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삶을 믿음에 몰두해야합니다.

전심전력을 다해 믿음을 향하여 진력해야 합니다.

믿음을 붙잡기 위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믿음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이 믿음을 향하여 진력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를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성공을 향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믿음만 바라보고 그 믿을 붙잡으려고 우리가 진력해야 합니다.  

우리스스로 믿음이 있으니 이미 구원은 받았고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우리에게서 구원을 떨어지지 않는 다는 생각은 옳은 믿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드린 모든 말씀은 개혁교회와 모든 개신교회들이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성도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보다는 세상의 영향에 더 크게 기울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믿음을 향하여 전심 전력으로 진력하여 믿음을 붙잡으려고 집중한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성공할 것인지 몰두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참된 믿음으로부터 너무 벗어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 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죽으셨으니 이제 모든 죄를 그에게 지우고 의인으로 바꿔진 신분으로부터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속하였으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하면 그 사람은 뭔가 자기 안에 죄가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비극적인 인생을 새롭게 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의롭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죄가 우리를 이끌어 다시 예전의 비참한 인생으로 이끌어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생각이고 율법주의적인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는 할례를 받은 혈통적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라를 잃고 세상속에 흩어져 살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성공적인 인생으로부터 낙오되는 것은 자기들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과 오늘날 개신교회 사람들의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믿음으로 우리 앞에 있는 믿음을 붙잡기 위해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진력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붙잡기 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