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고난주간

내어주심 1

생명있는 신앙 2014. 4. 17. 08:28

내어주심

 

이방인의 영혼은 무지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객체에 대하여 감각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영혼의 상태는 마치 칠흙 같은 어두움 속에 갑자기 자기 앞에 어떤 물체가 나타남을 감지한 사람의 상태와 같습니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인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더듬어 만져야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상태에서 앞에 있는 존재가 자기에게 유익을 줄지 아니면 해를 줄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직 어떤 물체가 있다는 것만 느낄 뿐입니다.

이때 상황은 공포와 두려움에 영혼이 완전히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보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숨을 죽이고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도록 최대한 움츠리지 않을 수 없고 자신의 보호를 위한 방어 본능이 작용하여 뭔가 주위에 있는 어떤 물체라도 손에 쥐고 있어야 두려움이 덜할 것입니다.

극한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주 서서히 조금씩 주위를 더듬어 보려지만 허공을 가르는 더듬이 손 때문에 불안이 더해갑니다.

칠흙 같은 어두움은 무지를 말하고, 자신을 지키려고 하고 자신의 감각에 느껴진 객체가 위협적이며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지식이 없고, 알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을 공격하여 자기를 해할 수도 있다는 무질서한 지식이 영혼의 지성에서 육체에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태초 처음 지음을 받은 상태는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담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고 그 형상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필요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의 조명에 따라 어두운 상태에서 어떻게 해쳐 나가야 하는 지식을 발현하여 충분히 질서롭고 조화롭게 안전하게 잘 해쳐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하지 않은 안전한 상태에서 사람은 모든 것을 아는 지식이 조명해 주기 때문에 부조화와 무질서의 삶을 근본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삶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삶을 살기 때문에 위험과 두려운 상황이 발생해도 아주 지혜롭게 해쳐나가고 세상에 평온을 유지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영혼에는 무지가 지배함으로 무질서와 부조화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영혼을 미래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자기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지 못함으로 하나님도 모르고 세상에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2:12), 라고 사도가 증언한 대로였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고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없는 그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욕을 일으켜 낳은 목적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영혼은 본질상 자기들을 존재하게 한 근원에 대한 분노를 가집니다.

우리는 세상에 아들 딸들을 낳으면 기쁨이고 즐거움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영혼은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가 그들을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각하지 못하는 세상을 우리의 영혼은 인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런 세계를 우리의 영혼이 인식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우리의 육체의 감각에 지각되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만화와 같은 공상 소설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실지로 우리의 영혼은 미래에 대한 지독한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불안을 지금 인식한다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질서대로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이 자기의 육체와 소통하는 것을 단절시키고 하나님의 영이 사람으로부터 영원히 떠나가게 된 것입니다.(6:3)

우리의 정체성,

우리 자신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Calvin 선생은 기독교 강요를 시작하는 서두에서 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기독교강요 1,1)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알지 못하고는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창조시 지음을 받은 본성으로부터 이탈된 존재들입니다.

게다가 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로 말미암아 정욕을 일으켜 낳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손들도 아니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내어진 것도 아니요, 하나님도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하나님에 관한 아무런 지식을 가지지 않은 정말로 외인입니다. (2:12)

우리는 우리를 존재하게 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얼마간 이 세상을 살다가 결국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런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고통의 세계인 지옥으로 보내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는 지독한 증오가 들끓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낳났느냐

왜 우리를 낳고도 무책임하게 우리를 버리느냐

증오로부터 솟구치는 영혼의 몸부림은 이 세상에 미움과 분노와 질투를 생산합니다.

우리의 영혼에서 미움이 나오고, 분노가 나오며, 포악 잔인함이 분수처럼 솟구쳐 이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와 결코 함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제아무리 바다 모래와 같을 지라도 증오와 분노를 쏟아내는 분노하는 영혼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세상에 자기들을 내어주고 스스로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래서 항상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짝하고 세상을 닮아 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세속화 되는 원인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세상을 닮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사는 것은 곧 아벨의 삶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세상과 짝하고 세상을 닮아가서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이려고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기들에게 보내어진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처리할 까 고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세상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보내졌으나 그들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어떻게 세상에서 견고하게 자기들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지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묘책을 생각했는데 그것이 모든 백성을 위해 한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대제사장이 생각해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스라엘은 자기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에게 제물로 내어주기도 결정하고 처참하고 잔인하게 죽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내어주심에 대해서 살펴 보아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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