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불법이 사함을 받고(롬4:7)

생명있는 신앙 2014. 4. 24. 07:44

다윗은 시편 32편에서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의 복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질병을 죄의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다윗이 시편 32편을 고백하게 된 동기를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입은 후에 개인적으로 고백한 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H. Schmidt, Dahood, Mowinckel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다윗의 32편의 고백은 질병과는 관계가 없는 고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Kraus 와 같은 학자들인데 이들은 그는 다윗이 구체적인 어떤 한 죄를 행한 후 그 죄에 대한 사죄를 받고난 다음에 고백한 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윗이 고백한 죄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우리는 그 죄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는 사도가 말하는 허물을 가리움을 받은 복에 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에 부딪힐 것입니다.

다윗이 질병으로부터 고통을 당한 후에 나음을 입고 고백한 시라면 그 가 고백한 죄가 무엇이냐?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고, Kraus 의 말과 같이 어떤 한 죄를 범한 후 그 죄에 대한 사함을 받은 후에 고백한 것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밧세바를 범한후의 고백으로 인한 심정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관계된 죄가 아닌 드러나지 않은 다른 죄가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얻는 순간 자신의 죄에 대한 깨우침의 반응을 드러낼 때 어느 한 죄를 범하고 그후 그 죄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로만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는 마음에서 일어나는데 일반적인 상태에서 오래전에 지은 죄를 깊은 충격으로 회개하는 반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고백한 원인의 죄가 무엇인지를 찾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다만 그의 고백적인 글들에서 어떤 죄가 시편32편의 고백을 하게 했는지 유추할 뿐입니다.

실지로 Karus 의 주장과 같이 밧세바를 범하고 고백한 마음의 고백으로서 시라고 한다면 의미와 좀 동떨어질 수 있는 내용을 시편이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밧세바를 범하고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죄로 인하여 겪게 될 죄에 대한 대가를 분명히 언급하게 됩니다(삼상 12:10~12). 그것은 죄로 말미암은 분명한 대가였고,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 죄를 밝히 느기습니다. 로 죄를 고백한 것이 아니라 시편 32:4에 보면 다윗은 스스로 자기의 영혼으로부터 죄를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허물을 사함을 받고 죄를 가리움을 받았다고 고백한 시편 32편을 보면 다윗은 자기의 죄를 은밀히 감추고 있는 어떤 죄 의식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32:3)”

이는 무엇인가 자신에게 있어서 억눌리는 죄책으로 인한 말 못 할 괴로움을 혼자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32:4)라고 결심하고 나아가 자복했더니 마음에 평온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시를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왕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왕이 수심에 차 있는 모습만 보아도 자신도 역시 수심에 차 있을 것이므로 이에 대하여 문의 하였을 것이고, 그렇다 할지라도 다윗은 자신에게 있는 은밀한 죄에 대한 고백을 드러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밧세바를 범한 죄를 자신의 주위에 있는 시녀들이나 종들이 모를리 없습니다. 항상 왕을 옆에서 보좌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알았고, 왕의 명령을 받아 밧세바를 궁으로 불러오는 심부름을 직접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고백하는 죄는 그런 죄가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온 인격에 지각된 압박해오는 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이 뚜렷하게 인식된 어떤 죄에 대한 하나의 행위가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그의 의식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대하여 설 때 마다 내면에서부터 지각되는 죄로부터 눌림에서 고백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순간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때마다 느껴지는 의식은 자신의 죄 된 모습입니다. 물론 그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섰다는 의식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타락으로 인하여 자기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식하는 인식을 가지지 못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성령의 조명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식에서 죄의식을 크게 느낄 때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성령의 조명하심이 있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진 상태인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바로 이런 시간이 오래 지속되었고 결국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이라는 의식이 자신을 사로잡았으며 곧바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무릎을 꿇었을 때 마음의 평온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의 인식을 얻게 되었고 이를 시편 32편에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죄에 대한 의식을 갖지 못한 무수히 많은 행동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으로부터 행동하게 하는 모든 지식들이 하나님의 선으로부터 일치한 지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지식이 무지와 결함의 조명을 받아 생성된 지식이기 때문에 각각의 지식에는 무지와 결함이 항상 조명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해위는 본질적으로 죄입니다. 여기에 죄인인 우리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죄 된 행동은 본질 적인 죄가 행하는 선에 이르지 못한 지식으로부터의 행위 이상을 뛰어넘어 사람이라도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