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언약(롬4:13~14)
잘못 생각하면 우리의 주장이 마치 모든 믿음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잘못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우리의 영혼에 있는 지성에서 반영한 지식으로 행한 것이므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이러한 불식들을 해소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우리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타락했고 죄라는 주장과 상치 된다는 오해가 있을까? 하는 노파심에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믿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한 것이지만 그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브람이 믿음을 드러낸 영혼의 지성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만남의 경험들이 선재한 지식들로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즉 지식이 아브람의 영혼에 받아들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식들이 하나둘 모여 지성에서 빛을 발하여 다른 조명하기 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입니다. 물론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갈대아 우르에서의 소명은 분명 아브람을 아버지 데라로 부터 이끌어내 독립하게 하는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역할이 지속적으로 아브람의 지성에서 작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도록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이끌려 세상에 나와 독립을 꿈꾸며 방황하는 삶을 살았으나 실지로는 본성의 타락된 지식의 주도아래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지성에는 본성으로 타락에 의한 거짓되고 왜곡된 지식만 있으나, 이 지성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취지도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 거짓된 지식을 하나씩 조명하여 밝힐 때 사람이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는 객관적 의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에 의해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는데 이 말씀들이 어느 정도 조직을 갖추어 사람으로 의식되어질 분량이 될때 사람은 그 말씀들에 의해 하나님께 반응하는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있어서 이 분량이 채워지기 까지 만남과 말씀을 들음이 반복되었으나, 이 지식들이 자기 안에 잇음에도 불구하고 본성 지식의 주도로 의식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믿음을 드러내기 이전 까지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부터는 아브라함이 드러낸 믿음처럼 하나님의 지식의 체계를 어느 정도 가진 후에 비로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의 지식으로만 충분히 사람을 즉시 믿음으로 돌이키게 하하기에 충분합니다.(롬1:17)
사람이 복음을 지식 있게 받아들이면 즉시라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복음이 사람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게하고 자기 정체성을 밝혀주는 충분하고 완전한 체계를 갖춘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본문에 따라 사도가 언급한 중요 내용으로서 세상의 상속자를언급하는데, 여기에서 상속을 받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창세가 15:4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람은 두려움에 빠져 있고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아브람은 현재 자기의 능력 밖의 상황에서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부족의 신이 되시려면 이제 자기보다는 다메섹 엘리에셀을 지켜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한 부족을 세워 가시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한 말속에서 아브람의 종교관과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의식 등이 모두 나타나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모든 것을 설명 드리지는 않지만 이미 대충 설명한 것과 같이 아브람은 자기의 지성에 반영되어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과 경험들을 타락되고 왜곡된 본성의 지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시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창15:3)”
아브람이 상속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자기가 현재 직면한 상태를 예견하고, 그것으로 인해 자기가 어떻게 멸망을 달할 것인지도 짐작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말을 반박하시면서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15: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것을 약속으로 계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언급된 사도가 말하는 상속자는 바로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에 언급된 상속자를 말하고 그 상속자는 아브람의 생각과 같이 사람의 의식의 한계에 속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속한 것입니다.
이후에도 아브람은 자기의 생각과 노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이를 사래가 동조하여 몸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낳게 하는 우를 범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의 역사를 사람은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지식으로 결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면 우리의 지성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타락의 본성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을 왜곡되게 하여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하되 우리의 지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주도에 따라 해야 합니다.
구약시대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 이상에서 일어난 우리의 관점에서 초자연적인 일이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지성에서 결코 생각해 낼 수 없는 지식의 일입니다. 그 일이 99세 되고 불가능한 여인에게서 이삭을 낳는 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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