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환난은 인내를 12 (롬5:3)

생명있는 신앙 2015. 6. 26. 09:03

환난이란

이제 우리는 환난을 말할 때가 왔습니다

명사 들립시스(Thu. 이래)는 들리보(qlivbw, 2346)에서 유래했으며, '억압, 압박', '고통, 괴로움, 고난'을 의미한다.

 

헬라어로 들립시스라는 말로 억압” “압박” “고통” “괴로움” “고난등의 말로 정상적인 삶을 위협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억압을 당하는 상태로서 실제로 살아야 하는 참된 생이 정지되고 살아있는 상태에 외부로부터 처해지는 삶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생은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니 마땅히 누려야 할 유한한 존재에게 주어진 살아 활동하는 모든 것이지만, 삶은 살아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미친 더하여진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생과 삶은 엄격히 구별되고 생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공통적인 삶을 의미한다면, 삶은 생에 공통적 삶에 덧붙여진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을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인지는 삶으로부터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의 구별하도록 가치를 드러내주는 것이 삶이라는 점에서 삶과 생은 명확하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환란은 생에 더하여진 삶으로 본래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삶이 사람에게 다가 왔을때에 사람은 생을 망각하게 되고 삶에 매입니다. 이것을 생이 정지된 것과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생은 정지되고 삶으로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은 사람이 임의로 변화 시킬  없는 주어진 삶이지만, 삶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적응하며 부딪혀야하는 대응하는 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생은 삶에 의해 중단되고 멈추어지며,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이 삶에게 짓밟히고 삶에 매여 허우적거리다가 이생을 하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최초 사람의 타락은 태어날 때 부터 받은 생을 잃어버렸습니다.  생은 하나님의 형상에 새겨진 하나님 안에서 감추어진 것이었습니다. 

지음을 받은 사람은  생을 잠시 맛보았으나  타락하여 잃어버리고 곧장 삶으로 직행하여  삶에서 허우적 거리는 인생을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참된 생은 하나님께서 최초 사람에게 부여하신 것이고 그것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삶에 밀려 잃어버리고  것입니다. 

삶은 사람이 상황과 환경에 따라 경험적인 바탕위에서 맞이한 운명적 생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부여된 참된 생을 잃어버리고 삶에 처해져 있는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생을 잃어버린 사람은 상황과 환경에 대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참된 지식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 참된 지식마져 상실한 사람은 무지와 결함을 가진 자기지식으로 인하여 불안과 두려움으로 자기의 삶을 해쳐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마치 떨어지는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은 거친 인생인 것입니다. 

본래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존재하도록 작정되어진 아담의 후손들이 최초에 주셨던 생으로 귀환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이 예수 께서 보내심을 받은 목적이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부여하신 생은 아담 안에 작정되어진 사람만 해당된다는 것을 간과 해서는 안됩니다. 

아담 안에 작정되어진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을 가지실 때 아담 안에서 어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것인지는 계획속에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사람들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식과정을 통하여 작정된대로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하자 그들에게 죄로 말미암아 정욕이 일어났고 작정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태어났는데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은혜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역사하여도 결코 하나님을   없는 존재가 정욕의 열매로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가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가 로마서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하나님의 아들들과 죄의 아들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말한 것을  살펴 본다면 우리 이방인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 생을 부여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의 존재를 허락만 하셨을 뿐임을 알게  것입니다. 

이방인의 운명이란? 이처럼  땅에 태어날 때 부터 철저히 구별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사람을 받지 못하는 존재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의 비천한 운명적 존재를 생각할 때 우리가 구원을 얻을  도록 신분을 바꾸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반대로 하나님의 원수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있는 놀라운 은혜에 갑사하지 않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을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인을 본다면 그의 영혼에 결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지고  은혜로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였는데 우리는 그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고 말하는 의미를 이해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정으로부터  이방의 존재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구원을 받을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생을 부여받지 못하고 존재를 허락받았습니다. 

우리의 생은 생이 아니라 존재함으로 인하여 불가불 속하지 않을  없는 환경과 상황에 처해진 삶의 존재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삶이 결코 안전하지 않은 변화 무쌍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상황은 시시각각 얼굴을 달리하고 사람에게 다가와 사람으로 상황과 환경 속으로 몰아넣어 버립니다

사람은 자기의 환경과 상황을 대처하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삶에서는 안전한 자유와 평화를 결코 얻을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여받은 생이 아닌 삶은 환난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없이  환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최초 지음을 받은   부여받은 생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다른 환난이 있습니다. 

 환난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주어진 환난입니다. 

 환난은 자기의 범죄의 행위로 말미암아 주어진 환난인데 모든 이스라엘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집니다. 

 환난은 죄로 말미암아 정욕을 일으켜 아들을 낳은  아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대서 오는 환난입니다.  환난은 가인과 아벨에게서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아벨은 가인의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이방 세력의 미움을 받고 엄청난 환난을 직면하여 수없는 고난과 아픔을 당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미움을 받아 순교의 피를 곳곳에서 흘렸습니다. 이것이 환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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