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Son of God)
사도가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고 골로새 교회에 얼굴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서신을 보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가 인내를 설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에 관하여 말하려고 하는 것은 예수의 삶에 인내의 비밀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믿음-환란-인내-연단-소망 순서로 연결하여 말합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으로는 이 구절의 명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한란에서 인내로 이어지는 구절은 환란을 인내함으로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으나 구체적으로 사도가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발견할 수 없다.
실지로 헬라어의 의미를 환란을 θλἰψιζ qlivyi"(들립시스)로 고난, 억압을 뜻하고, 인내 ὑπομονἠ uJpomonhv(휘포모네) 라고 발음하는데 ‘견고히 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연단은 δοκιμἠ dokimhv(도키메) 라고 발음하는데 이는 ‘인정을 받은 자질’ ‘시험’이라고 하고, 마지막으로 소망ἐλπἰζ ejlpiv"(엘피스) 기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마음에 담고 있는 구절의 의미는 고통과 억압을 당함으로 인하여 사람은 견고하게 설 수 있게 되고 그것으로 시험을 통과한 자와 같이 인정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하여 소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견고하게 설 수 있게 합니다. 때로는 극한 상황에 이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지혜에 맡겨두고 항상 피할 길은 예비 되어 있으며 극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참고 견디며,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과 같이 환란이 생명을 앗아가는 극단적인 결과를 드러낼지라도, 궁극적으로 그 환란은 그를 하나님 앞에 견고하게 세우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지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을 갖는다면, 환란을 당할 때 피하거나, 환란이 무서워 두려워한다거나, 그로인하여 부끄러움을 보이는 행위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들이 환란을 당하는 이유에 대해서 분명한 의미를 자기의 마음으로 인식하고, 하나님 아들로서 책임이 무엇이고 자기를 괴롭히고 억압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행위를 하는지 대해서 충분히 납득해야 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만약 그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결코 용서가 되지 않고 동일하게 분노를 드러낼 것인데, 이렇게 분노를 드러내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없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이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을 명확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자기에게 욕하고 살점이 패이고, 피가 나도록 채찍을 휘두르며, 인정사정을 두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으며, 조롱하고 괴롭히는 이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증오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의 분노는 지표를 뚫고 솟구치는 땅속의 용암과 같고, 들끓는 용광로와 모든 것들을 녹여버리는 풀무불과 같아서 능히 견딜 수 없고 그 미움에 표적이 되면 살아남을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런 증오를 충분히 감당하고 죽음에 이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존재의 비참이 무엇인지 능히 이해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살리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쏟아내는 환란을 퍼붓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그것을 피하기위해 지혜롭게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당하는 슬픔에 빠지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실지로 환란을 일으키고 억압하는 주인공들은 하나님의 아들에 속하지 않은 영혼들로부터 나오는 증오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속하지 않은 영혼들이라는 의미를 잘 알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일으키는 온갖 악행들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기로 계획하실 때 아담이 생식의 과정을 통해서 후손들을 낳게 하는 것 까지 모두 완전하게 고려하여 지으셨고, 아담 안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든 계보들이 완전히 계획된 상태로 일종의 프로그램이 작성되어 그 후손들이 작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통한 계획된 자녀들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태어나도록 정해진 사람들이고,그 후손들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구별되게 하셨으며,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계획되어진 아들들에 속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작정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들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태어나도록 허락되어진 허용적 작정에 의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이방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로 말미암아 관계되어지고 이방인들이 이 세상에 존재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죄의 원인으로 말미암음으로 하나님의 관심밖에 존재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 밖이라는 말은 사도가 로마서 11장과 에베소서 2장에서 잘 설명하였는데, 그들은 태어남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고, 이스라엘 나라밖의 외인이며, 율법도 없고, 언약도 없는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로 태어났습니다. 이방인이 하나님과 원수임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원수가 되는 삼각관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된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사도의 사상에는 하나님과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이라는 삼각관계에서 모든 진리가 진술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가 환난을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유대인이라는 가족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이방인의 분노와 악행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마땅히 견디어야 할 고난을 중심으로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필연적으로 이방인으로부터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방인에게 고난을 당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뭐라고 하셨습니까?
대표적인 말씀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교훈에 나타난 명령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온전히 희생적인 삶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째로,하나님의 아들은 자기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이 세상에 있게 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가인의 후예들로 지칭되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그들이 ‘존재 됨’이라는 영광을 맛보았을 지라도,근원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의 결과이고 그 존재의 대가가 영원한 비참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한마디로 죄의 열매라는 운명적 꼬리표를 지울 수 없으므로 그들의 영혼의 깊숙한 곳 까지 죄가 뿌리내려 죄의 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운명적인 삶의 비참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가 저들을 낳지 않았다면, 저들이 비참의 운명에 처하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탠데” 라는 범죄의 고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점을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디베랴 광야에서 제자들에게 선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 죄에 대한 자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기 안에 있는 죄가 낳은 결과로 말미암아 자기의 죄를 자각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 후 가인을 낳았고 이어서 아벨도 낳았습니다. 그들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아담 안에 계획한 후손들만 낳았을 것입니다. 범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지식이 아담의 영혼을 조명하여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게 함으로 정욕이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죄는 사람의 지성을 어둡고 혼란스럽게 함으로 정욕에 이끌려 이용당하는 것을 방어하지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모든 범죄는 충동적이거나 혹은 정욕에 이끌려 스스로 자기의 행위를 제어하지 못하는 감각적인 행위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이후 아담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별할 수 없는 지적 상태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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