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창조되었는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인간이 구별되는 것은 지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이땅에 생명체가 존재하도록 지으신 후 지식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기 까지 인류는 긴 시간 동안 인내했어야 합니다.
최초 인류는 네 발로 살던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숲을 걸어나와 두발로 직립 보행을 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것을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되었고 오스탈로 피테쿠스가 등장하였고 25만년전에는 오늘날 우리와 같은 호모사피언스가 등장하여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이 발견이 사실일까? 하는 문제는 앞으로 많은 연구를 거듭한다고 할지라도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에 밝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인류는 충분히 인류의 시작을 발혀낼 것이고 가설이 아닌 분명한 사실일 것이라고 지금과 같이 가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사실을 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조상이 호모 사피언스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한 역사에 관한 기록은 창세기 1장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1장에 기록된 증언에는 우리가 이해하는데 있어서 명확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서 실재와 동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된다. 즉 공간과 빛, 하룻만에 탄생하는 태양과 그 행성들, 모든 생명체들의 출연을 24시간 안에 나타난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의 주장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한다.
현재 까지 신학은 성경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을 신앙이 없는 불경건의 모습이라고 이단시 하고 정죄하기에 급급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공간의 문제는 차자하더라도 인류의 탄생에 관하여 성경의 모순된 주장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는 행위라고 배격한다.
그러나 신학에서나 이세상의 모든 학문들에게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우주와 자연 만물들이 존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어떤 신적인 지적능력을 가진 존재에 의해서 지어졌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과학적으로 인정할 만한 납득할 조건들에 의해 확인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론들에 의해 불협화음이 나타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에서 과학으로 하여금 사실을 더듬어가는데 좋은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것이 성경이다. 성경이 없다면 과학은 자기의 방향을 찾지 못하므로 명확한 근거를 찾아내는 작업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은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조무르고 결국은 자기의 안내자를 배척하는 결과에 이르고 자기가 모든 사실을 밝혀낼 수 있는 유일한 잣대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간에 이 세계는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았고 처음 지음을 받은 그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질서라는 지식을 세상에 보내 세상이 하나씩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질서의 지식에 의해 존재하기 시작한 만물들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 충실히 드러내는 일을 하지만 모두가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 1:2)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신 하나님은 온 세상의 만물들을 다스리는 존재를 지으시기를 계획하시고 사람을 지으셨다.
진화이론의 입장에서 볼때 사람은 분명히 유인원에서 호모사피언스로 진화하였고 그 호모사피언스가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이런 주장을 일거에 거절하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만드셨다고 주장한다.(창1:26~27)
진화이론 자들은 우리의 이런 주장을 대해의 표면만 보고 그 속을 조금도 들여다 보지 않는가? 하는 우려를 드러낸다. 만약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신학자들이 지나친 보수주의적 경향에 의해 성경이 가지고 있는 깊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채 일방적인 문자주의적인 주장을 한다면 그 말은 옳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기 이전에 과학은 발전하지 않았고, 신학의 입장에서 과학이 이런 주장을 낼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전적 신앙을 보수해왔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신학의 입장에서는 과학의 공격을 받는 다고 생각하고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바리게이트를 펼치고 적진을 향하여 엄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이 인내를 가지고 신학에 호소하여 신학으로 하여금 과학의 확실성을 개진함으로 신학이 과학을 수용하든지 수용하지 않든지 하는 결정을 하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신학은 과학이 주장하는 학문이나 이론들이 성경에 적응 될만한 어떤 여지가 있는지 면밀히 살피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든지 아니면 이에 대한 길 안내를 해야할 의무가 있다.
지금까지 과학은 지속적인 연구와 발전을 거듭하여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세기를 거듭하여 과학적인 주장들을 신학에 제시하였고 제시된 주장들이 충분히 토론되어 온것을 사실이며 아직까지 그 토론은 진행중이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신학은 미진한 결론들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교회내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고, 이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여 교단적 차원에서 수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성급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행위가 다분할 수있다.
그것은 충분히 신학적 토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편향적 이해와 속단으로 수용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화이론의 입장에서 사람에 대한 주장은 과연 신학적 입장에서 아니 성경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진화이론은 결론에 이르기 까지 도출한 방법과 학문의 적용에 있어서 성경이 말하는 주장은 서로 배치된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진화이론은 유인원이 변하여 호모사피언스가 되었고 결국은 현재 인류가 탄생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성경은 전혀 다른 특별한 창조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 진화이론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진화의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를 받아들이는 진화론자들에게는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기본 적인 확신을 배제하지 않고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인간 창조는 무엇인가?
신학자들은 성경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다른 종들과 구별되게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성경이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흙을 빚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이 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보의 양보를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서 과학과 과학적 입장을 고수하는 과학적 신앙인들에게는 보수하는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각각이 배치되는 주장들은 하나님의 사역의 방법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과 Human creation by proxy 이론
하나님께서 피조 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내며 사역하시는 방법은 신학적으로 말씀으로 명하셔서 만물을 불러내시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성경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족장들이나 그의 선지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으로 역사하시고 사역하시는 배면에 있는 사건들을 친히 조종하시는 것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명확하게 계시하시고 그것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명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명백하게 보여 주신것이 아닐끼 생각한다.
예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낳으셨지만, 분명히 증거한바와 같이 사람의 탄생 방법인 정자와 난자를 결합시켜 태어난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의 잉태는 사람과 성령 하나님의 관계를 통하여 잉태 되었는데 그 잉태가 소위 말하는 부정한 언어로 묘사하는 성관계를 통하여 언급된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동정녀에게 임하셨고 그에게 잉태할 수 있도록 하시는 방법은 지식을 통하여 사역하심으로 동정녀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게 된 것이다.(히 11:3, 시33:6, 시 104:27~30)
그러나 동정녀는 자신이 잉태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오순절 성령 강림때였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초 사람 아담도 바로 이런 방법으로 창조하시지 않았을까?
사람은 진화되었든지 아니면 진화과정에 있지 않은 종이든지 사람과 닮은 짐승에게 하나님의 지식이 부여되었고, 그 짐승은 자기에게 지식이 부여 되었다고 해서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안에 심겨진 지식에 이끌려 사람의 모형을 만들든지 아니면 잉태하여 낳았을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동졍녀의 몸을 빌려 오신 것처럼, 사람이 지음을 받기 이전에 충분히 사람과 같은 짐승이 존재했고 진화되어 왔을 수도 있으므로, 어떤 존재의 몸을 빌려 사람을 탄생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추론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시기 위해 아무 원인자를 사용하시지 않으셔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한 바와 같이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으로 오셔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를 사용하셔서 보내셨다는 것을 명백히 증거하는 것은, 처음 아담도 어떤 원인자를 사용하셔서 사람이 존재하도록 하시는데, 그것이 소위 말하는 호모 사피언스인지 아니면 원숭인지는 정황하게 알 수 없지만(과학이 증명할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같았을 것이다.
그 방법은 여러가지중에 가장 타당한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데 어느것이 옳을지 분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기에 가장 적당한 방법은 말씀으로 불러내어 흙을 빚어 지으셨다고 말하는 방법이 매우 말하기 좋은 방법이지만 이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는 다르기 때문에 받아 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통적인 견해는 이사야 51:1의 증거에 따라 이 이론을 받아들여 왔고 이로인하여 진화이론 주장자들의 공격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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