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증거자 요한 (요 1:6-18)

생명있는 신앙 2007. 3. 13. 20:50

요한복음 1:6-18 증거자 요한

세례 요한에 관한 연구

복음서는 세례 요한을 예수님을 소개하는 선지자로 소개한다. 모든 복음서가 세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증거 자로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 3:1-4:11, 막 1:1-1:13, 눅 3:23-4:13, 요 1::15-34 은 세례 요한의 탄생과 그리고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심을 언급한다. 이 내용이 복음서에 언급이 되지 않을 경우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가? 그리고 기록됨으로 해서 누구에게 유익이 되는가? 이점을 밝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것은 성령께서 독자들을 향한 의도임으로 분명히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밝혀보려면 독자가 누구인가? 당시의 시대적인 환경은 어떠했는가?

마태가 복음서를 기록하던 때는 대략 AD 60으로 본다. 이때에 Titus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중이다. 마태의 독자들은 페트라로 피신해 있다. 그리고 마가의 독자들은 로마 네로 황제가 광기에 가득하여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에 이른다. 이 때 베드로는 순교하고 교회는 지하로 숨어들어 간다. 이런 숨막히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순교를 두려워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를 확인한 마가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급히 붓을 들었다. 마가복음은 모든 내용들이 간략하게 구성되고 그리스도를 부인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는 결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15:39). 누가복음은 전달하려는 목적이 “내가 살펴 본 결과 이것은 사실이다”라는 메시지이다. 누가는 친구이며, 절친한 사이인 데오빌로에게 내가 살펴 본 결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이 분명하고 바울 사도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사도(사도행전)임을 증거하기 위해서 기록한 메시지이다. 이와 같이 공관 복음서 기자들은 각기 독특한 이유 때문에 붓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그의 행하시는 일을 증거하였다. 그러면서도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심을 기록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과 신성을 이해하는데 큰 장벽이 될 수 있다.

실지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신성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아들(성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서 저자들이 기록한 세례요한의 증거는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기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요한 복음서를 중심으로 다른 복음서를 같이 연구할 것인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알게 되고 우리가 신뢰하는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의도와 반드시 기록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들을 살펴보자.

1) 요한의 모습 (마 3:4, 막 1:6)

2) 요한의 신분

마태 3:7-12 (생략)

마가 생략

누가 3:15 (모든 사람이 요한의 신분에 대해서 마음에 의논함)

요한1:19-28 (정확한 요한의 신분을 묻는 사람들과 요한의 대답)

3) 요한의 선포 마 3:7-15의 자세함과

막 1:7-8의 간략함과

눅 3:7-18의 여러 증거자를 통해들은 이야기

요 1:19-37 증거자의 증언

4) 요한이 한일에 대한 객관성

(1)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

마태3:13-17은 목격자의 입장에서 정확하게 기록한다. (저자가 목격)

마가 1:9-11은 목격자가 아닌 대략적인 증거로 증언한다. (목격자로부터 전해들음)

누가 3:21-22은 공통적으로 행해진 일처럼 기록한다. (여러 이야기를 들음)

요한 1:29-34은 일을 행한 자의 증언을 직접 듣고 기록한다. (세례 요한에게 들음)

이런 사실을 살펴볼 때 마태는 선지자의 출현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는 현장에 갔다가 마 3:7-12의 선포의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의 이상한 모습과 선포하는 메시지의 중요함을 깨닫고 마음에 이끌려서 자주 요단강으로 나아가 어느 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후 얼마 후 마태가 직접 보는 자리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려 오셨고(마3:13-17),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목격한다. 이때 세례 요한은 예수께 세례를 행한 후 마태나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했다(3:16-17). 하지만 사도 요한은 이 장면을 목격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만약 목격한 사람이라면 1:29-34와 같이 불분명하게 기록하지 않고 자기의 본 그대로를 정확하게 기록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 사실의 이야기를 차후에 세례 요한에게 증거로 듣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본 것이 아닌 증언임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무었을 말하는가?

성경은 분명히 어떤 증거자의 증거와 그리고 저자의 증거, 그리고 다른 객관적인 증거들이 분명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1. 마태와 세례 요한 마 3:1-4:11

본서의 저자 마태가 본 성경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등장한 시기는 언제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은때 부터이다. 마태는 자신이 기록한대로 9:9에서 예수께 부르심을 받는다. 부름을 받은 마태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잔치를 배설하고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서 식사를 대접한다. 이때 바리세인들이 와서 예수께서 죄인인 마태의 집에서 여러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비난한다(마 9:9-13). 이 자리에서 마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죄인으로 취급받고 예수 마저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되어 절망에 빠질 상황이었으나,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모든 의구심을 깨끗이 씻고 예수님의 제자로써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부름 받기 이전에 마태의 행적이 기록된 것은 그가 예수님과 세례요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관심을 가진 다는 것은 그의 본심이 하나님 안에서 정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하나님 안에서 정직하다는 것은 우선 그의 신분을 살펴보고 이해하여야 한다. 그가 하나님 안에서 정직하지만 실지로 그는 세리였다. 바리세인들에게 민족의 역적이라고 비난받은 죄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받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가 왜 세리의 직업을 가져야 했는가? 그가 하나님 안에서 정직하다면 이런 직업을 가질 수 있는가? 불가능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은 문제들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마태는 가난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청년으로 가난을 이기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뚜렸한 결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비난받은 일인 줄 알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부득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세리가 된 것이다. 이전에 그는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율법을 연구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마태가 세리가 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그가 율법을 깊이 연구할 사람이라면 메시야에 대한 강렬한 소망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율법의 기록에 따라서 메시야는 곧 올 것이라는 사실을 기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수없이 많이 나타난 가짜 메시야 들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가짜 메시아들의 활동이 메시야가 아니라 민족적, 혹은 종교적인 야심을 가진 영웅주의자들이라는데 실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세례 요한의 출현에 놀라게 되었고 자기의 의식에 따라서 세례 요한이 소문과 같이 메시야나 혹은 선지자인가를 확인해 볼겸 요단강으로 나가 직접 확인해 보았다. 마태가 본 세례 요한은 이전에 나타난 다른 가짜 선지자와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2. 베드로와 세례 요한 막 1:1-1:13

베드로와 세례 요한과의 사이는 베드로의 직접적인 고백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례 요한과의 관계에 대한 글을 남기지 않고 로마에서 네로 황제의 로마 대 화제 사건에 누명을 쓰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거꾸로 십자가에 매여 죽었다. 이 사건 이후에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흔들리자 마가가 베드로의 생전에 신자들에게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던 내용을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마가복음이다. 여기에서 베드로와 세례 요한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가는 베드로가 남긴 가르침을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가가 글을 기록하려는 상황과 또한 베드로에게 들은 설교가 저자로서 자기가 직접 목격한 것과 일치 할 수 없기 때문에 대략적인 증거들만 언급하기 때문에 상세하지 않아서 두 사람과의 사이를 정확하게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마태나 누가에 의해 기록된 자료를 통해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3. 누가와 세례 요한 눅3:23-4:14

사도행전 16:10에 “우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저자를 포함한 바울의 전도자 일행을 의미한다. 누가는 이방인이며 의사로서 바울을 도와 복음 전하는 일에 동참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누가는 세례 요한을 만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면 누가가 기록한 세례 요한의 대한 자료는 어떻게 얻었을까? 누가복음 1:3에 보면 누가는 [이 모든 일의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라고 말한다. 이것은 누가가 본문의 내용을 기록하기 이전에 자세히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누가가 성경을 기록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몇 가지의 의문을 해소 하면서 기록하여야 한다.

1) 신실성

저자가 사건의 자료에 대해서 얼마나 성실하게 자료를 취하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2) 정확성

사건의 자료를 정확한 근거나 증거 자로서 분명한 사람들에게 “사건의 주체들”로부터 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3) 신뢰성

사건의 자료를 어떠한 자료에 근거하거나 이 사건이 조금도 거짓이 없이 진실하다고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분명히 누가의 의식에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5-2:52의 대부분은 다른 복음서에는 발견할 수 없는 자료이다. 이 자료는 누가가 창작이 아니다. 분명한 증거자의 자료에 근거한 자료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누가에게 증거 해준 사람은 누구이며 누가가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가장 확실한 것은 이 사건들의 자료가 사건의 주체들로부터 취할 경우는 하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이 자료를 얻었다면 누가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들로 인해 정확한 자료라고 인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확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경우에 있어서 누가는 이 내용을 데오빌로에게 전하는 서신에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료의 진실성을 어떤 방법으로 확신할 수 있는가? 이런 점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사도 요한과 세례 요한 1:15-34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1: 6,7) 우리는 이 내용을 연구하기 위해서 공관복음의 공통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선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세례 요한과 함께 있었고(요 1:19-28, 1:35(두 제자) 요 3:23-30), 또한 1:35에서 두 제자를 언급하는데 그 중에 하나는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였고, 또 한 사람은 자신임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을 성경에 기록한다는 점에서 요한의 기록을 통해서 자신의 상황을 대략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이 각 저자들의 경험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증거 되고 있다. 마태는 자기의 입장에서 세례 요한을 보았고 다른 제자들은 경험에 의해서 또는 증거에 의해서 , 또는 자기가 직접 조사해본 경험에 의해서 증거 되고 있다. 그러므로 4사람의 증거에 따라서 약간씩 다른 면들을 종합해서 진리를 얻어야 한다.

1. 본문 연구

1) 본문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 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온 자라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 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2. 내용분해

1. 증거자 요한 6-7

2. 세상의 희망이 되는 빛 8-12

3. 독생하신 하나님 13-18

1) 말씀이 육신이 됨

3. 본문의 의도

세례 요한이 증거 하려 왔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증거 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독생 하신 하나님이다.

4. 공통 성구 연구

2. 성경 신학적 연구

1. 저자의 사상적 배경연구

1) 자료 수납 과정

본문의 자료는 저자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이 자료를 확신하기는 밧모섬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만약 밧모섬 이전에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면 베드로와 마태에 의해서 이런 언어가 나타나지 않음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2) 저자의 의도

본문은 자료는 저자의 것인가 세례 요한의 것인가? 본문을 입으로 처음에 말한 사람은 누구인가? 세례 요한이 본문을 바리세인들이나 다른 유대인들 앞에서 외쳤을 때 반응은 어떠했을까? 첫째 본문은 사도 요한의 것이다. 그리고 본문은 비 유대인들보다는 교회에 외친 말이다. 그러므로 이미 계시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알고 있는 교회는 요한의 말에 조금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받아 확신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는 어렵고도 힘든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믿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이다. 초대 요한의 교회가 요한의 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교통했듯이 우리도 교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말해보라 그들이 받아들이는가? 얼마나 기적적인가? 우리가 기적 안에 살고 있지 않은가?)

2. 역사적 연구

1) 본문의 역사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입은 사람이 났으니]

하나님의 역사는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혼란과 불법이 난무한 가운데 하나님은 구원의 사역을 쉬지 않고 진행하셨다. 이중에 인간들은 얼마나 명에를 위해서 일하고 자기의 안식을 위해서만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는가?

구체적으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 들을 보라.

하나님은 역사 하시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지 않는가? 엄밀히 말해서 당시의 대제사장 제도는 분명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으로 선택 된 사람들이 아닌가? 돈을 드려서 제사장의 권위를 사고 로마의 총독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니 제사장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명예를 위한 독제 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들이 로마에는 아부하고 백성들을 착취했는가? 유대의 모든 재산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사람들을 보내셨고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시므온은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1:26)하는 지시를 받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역사 하셨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우리 곁에 계신 것처럼 항상 역사 하셨다.

요한은 많은 자료들을 근거해서 본문을 말할 것이다. 우선 요한이 세례요한을 보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본문 속에 포함된 역사가 아니고 본문을 기록할 때 저자가 인식하고 있는 내용이다. 요한이 첫 활동을 시작하여 자신이 요한의 제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차후에 보니까, 세례 요한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자기 땅에 오매-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 대한 사도 요한의 확신된 지식이다. 이지식은 요한이 그리스도를 만났거나 세례 요한을 알았을 때 알게된 지식이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이 임하시게 된 후에 알게 된 지식이다.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들은 육으로 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여기에는 철저한 ‘선택과 유기’가 요한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요한이 가지고 있는 신학”-요한 신학-이라고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독생자의 신학이 요한으로 부터 언급된다. 이런 말을 교회가 쉽게 받아들이려면 어딘엔가 전통적인 주장이 겸해야 한다.

하지만 히브리 사상에서 이런 사상은 전혀 발견 할 수 없다는 게 특징이다. 다만 이를 뒷받침 할 구절이라 하면, 잠언 8:22-36과 이사야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 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7: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가 있을지라도 본문의 말씀을 밝혀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요한의 글을 읽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요한의 글은 모세 오경과 같은 성경의 권위에 두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순수하게 요한의 창작에 불과하고 전혀 새로운 요한의 주장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요한이 이 주장을 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가?

앞에서 살핀바와 같이 요한은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과 승천하신 예수님을 분명하게 목격했다. 먼저는 3년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목격했고 다음은 승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밧모섬에서 환상으로 분명하게 목격하고 계시를 받은 적이 있다. 이점에 있어서 사도 요한은 다른 제자와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요한의 주장이 교회에 받아들여져야 한다. 교회는 사도의 말이라고 아무 주장이나 간단히 받아들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도가 전한 복음이라 할 지라도 진실에서 벗어난 주장이라면 교회는 당연히 거절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령의 교통하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이 말한 본문이 교회에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확증할 만한 지식이 이미 교회에 이해되고 알려져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주장은 다른 복음서 저자들이 미쳐 알지 못한 내용을 사도 요한은 이미 교회에 가르쳐 왔던 것이다. 그것은 계시록을 통해서만 가능했을 것이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처음 보았을 때 이런 것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어딘가 조금은 감동적인 부분을 발견했거나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아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깨닫고 난 후에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독생하신 하나님]

불신자는 요1:1-18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만약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그에게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성경은 단순히 기록된 책이 아니라 지금도 역사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호가인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가 이 글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성령과 함께 한다는 증거요, 성령께서 믿도록 역사 하신다는 분명한 증거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믿는가? 아니면 믿지 않는가? 확인해 보라.

독생 하신 하나님은 구약의 자료에도 나타나지 않은 내용이다. 구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는다. 단 하나님을 복수 단어로 사용할 뿐이다.

3.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

2. 하나님의 주권

4.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