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요 1:29-34)

생명있는 신앙 2007. 3. 13. 20:51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1: 29-34

1. 본문의 장소

1) 제1장소(사건의 장소)

요단강

2) 제2장소(분문의 형성 장소)

불분명

3) 제 3장소 (기록장소)

2. 등장 인물 조사

제자들에게 사실을 증거 하는 세례 요한

세례를 받으시려오시는 예수님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있는 기타(제자들)

3. 사건의 줄거리 조사

예수께서 세레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것.

세례 요한은 자기가 세례를 주는 이유와 그리고 세례를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역사를 제자들에게 증거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사무엘과 같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기 위해서 나타난 선지자였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의 대제사장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사람 세례 요한을 통해서 세우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눈이 가리워 지고 만 것이다.

1. 본문 연구

1. 본문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2. 내용분해

1.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라. 29-31 (저자가 직접 목격)

1) 어린양이로다 29

2)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30

3) 이스라엘에게 세우려함이라 31

2.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 32-34 (증거를 들음)

1) 성령이 임하더라 32

2) 하나님의 아들이더라 33-34

3. 본문의 의도

세례 요한이 한 일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이스라엘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4. 공통 성구연구

1) 마태복음 3:13-17

2) 누가복음 3:21-22

3) 마태복음 17:1-8

2. 성경 신학적 연구

1. 저자의 사상적 배경연구

1) 자료 수납 과정

저자는 29-31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러나 32-34는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사건이 일어난 때에 현장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저자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32-34)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태는 3:13-17에서 이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는 점에서 비교 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29-31에서는 현재 진행형을 32-34에서는 과거완료형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전자의 장소는 요단강이라도 후자의 장소는 요단강이 아닌 다른 장소일수도 있지만 확실치 않다. 아무튼 장소가 다른 환경에서 이루어진 일임에는 틀임이 없다.

2) 저자의 의도

저자는 세례 요한이 이를 증거 했고 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한 증거로 하나님께 들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데 있다.

2. 역사적 연구

1) 본문의 역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상 죄를 지고 간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요단강에 나타난 선지자를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그들은 아무 의미도 없이 그냥 흘러버릴 외치는 소리로만 들었을까? ‘선지자가 또 한 마디 했다’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까? 저자는 세례 요한이 외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는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문은 놀라운 외침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53:1-17의 배경에서 외친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을 선지서와 관계를 지어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설사 있었더라면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예수를 좇아 다니는 제자 이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예수께서 친히 부르시고 택하신 제자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하신후 사십일 동안 함께 계시기 이전에는 몰랐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세례 요한이 전에 한 말이 한 말이 무었인가? 이는 요1:15, 막1:7, 눅3:16, 마3:11-12을 의미할 것이다. 이미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이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1:26에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라고 말하는 것은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기 이전에 이미 예수를 제자들에게 여러번 소개한 것으로 보는 것은 적당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다.

[내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격에 관해서만 논란을 일으킨다. 아마도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세례 요한의 족보에 대해서 모를리 없다. 그의 아버지는 약 27년 전에 대제사장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유대인들을 대표하는 제사를 드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의 행위가 그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율법적인 것이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그가 확인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를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선포할 것이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을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과 다윗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을 생각하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왕을 기름 부어 세우게 하신다. 삼상 10:24에서 사울이 이스라엘 앞에 세움을 받는다. 삼상 16:13에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아 세움을 입는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또는 온 세상의 구원 주로 세움을 입은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방법대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이 사실을 보았을 때 마땅히 다윗이 왕으로 세움을 받은 것을 생각하고 선지자에 의해 소개되고 세움을 받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적인 교리와 생각이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비추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살펴보았고, 그들의 개념에 합당하지 않은 메시야에 대한 판단으로 예수를 거부하게 된다. 물론 이것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세례를 주는 것은 곧 다윗의 기름 부음을 받는 것과 일치함을 말한다. 자기는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신 대로 생명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세워 증거 하라는 명령대로 그 일을 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그가 예수님을 벌써부터 알았고 예수님으로 부터 이미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할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표적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예수를 소개하고 있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들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 그에게 머물렀더라]

그 동안 세례 요한이 조심스럽게 예수를 소개하였었는데 어느 날 그가 세례를 주는데 예수께서 찾아와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심을 보시고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라고 말했더니 예수께서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마 3:13). 이 말씀은 세례요한의 통찰력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오심을 보고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마 3:11,요 1:26은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었고 또 그분이 어떤 분임을 대충 짐작하여 세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셔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비들기같이 내려와 그 위에 임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생각할 수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다면 굳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줄 필요가 있었겠느냐? 이것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께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염려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명하시기를 ‘요단강에서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라’(요1:33)고 하셨다. 그 일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 제자들에게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증거는 마태가 기록하는 실재 현장과는 다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현장이 아니라 그 후에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4.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일을 사람이 알 수 없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로 말미암아 내일에는 어떤 일이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한가지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믿음의 후손을 얻기 위해서 관을 주시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믿음으로부터 타락된 후손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조상을 부끄럽게 하기도 하신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기로 정하신 하나님은 이방여인 룻을 고난에서 승리하게 하셨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서 선지자 사무엘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게 하셨다. 일반적 상식으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또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유대인들을 보라. 그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메시야를 만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의 신앙은 철두철미하게 성경적이라고 생각했고 완벽했다. 그래서 메시야는 당연히 그들 가운데에서 나타나야 했다. 오늘 우리가 스스로 확신하기를 우리는 분명히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었다. 그러나 2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 철학, 또는 성경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바탕들이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는 성경적인 개념, 이것은 언제까지나 사견이고 예수를 만나게 하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권자로 행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게 내어주시고 고난을 당하시게 하는 모든 일부터 오늘 우리가 타락된 세상에서 구원받는 일 하나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 하심에 달려 있다. 여기에 우리의 조금이나마 협력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요단강에서 세례를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5. 적용

우리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자, 어떠한 고난도 하나님께 맡기자,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는 사실을 확신하자. 그분에게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