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보라 1:43-51
1. 등장인물/
예수님
베드로의 친구 빌립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
2. 갈릴리 근방
1. 본문 연구
1. 본문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2. 내용분해
1. 빌립과 예수 43-45
빌립을 만나심 43-44
나다나엘 45
2. 나다나엘과 예수님 46-51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7-51
3. 본문의 의도
예수를 만나는 사람들은 한 결같이 예수를 구약에 예언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누구든지 예수를 만나 예수님과 대화를 하게 되기만 하면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4. 공통 성구연구
본문과 같은 내용으로서는 공관 복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2. 성경 신학적 연구
1. 저자의 사상적 배경연구
1) 자료 수납 과정
저자는 자료를 다른 증거 자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수납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자기에게서 나온 확실한 증거이다.
2) 저자의 의도
저자는 빌립이 고백하는 ‘모세의 글에 기록된 사람’이라는 고백과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임금임을 고백하는 나다나엘의 고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당시의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자는 이미 확신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일반적인 다른 제자들의 고백을 들어서 확실함을 증거 하려는 것이다.
2. 역사적 연구
1) 본문의 역사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빌립이 무었을 경험하였을까? 그는 예수를 만나고 난 다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이는 신명기 18:18의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의미한다. 후에 베드로가 성령에 감동을 입어서 유대인들에게 당당히 외치는 그 말이 여기에 근거한 말이다. 그러므로 빌립의 생각은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의미함으로 엄청난 고백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빌립의 [나와 같은 선지자]개념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온갖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능력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 부할 하시기까지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성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순전히 인간으로서 선지자를 이해한 것이지 인간을 초월하신 하나님 자신이신 메시아에 대한 개념은 유대인들에게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오셔서 초월하신 메시아 개념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새로운 개념의 하나님의 구원을 분명하게 밝혀주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 그리고 지혜 또는 지식이나 명철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은 우리가 지금 그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있고 이야기하고 있고, 또는 생각하고 있다는데 있는 것이다. 2000년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이 역사와 함께 해온 선민인 이스라엘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간단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지금도 그 견고한 전통을 이어온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당신의 한 위로 보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빌립과 나다나엘이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하는 그 고백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시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빌립과 나다나엘이 이것을 알았다고 고백하고 있을 때 그 마음의 감동을 어떠했을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
나다나엘이 지금 예수님께 고백한 말이다. 왜 이런 고백이 나왔는가? 그리고 우리의 독자은 우리를 만났을 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가?
나다나엘이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대답에 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참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뮈라고 말씀하시는가?
우리는 참으로 구역질 나는 더러운 존재일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기도 싫은 사람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게으르고, 나태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교만하기 이를대 없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칭찬을 들을리 없다. 단 한가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나다나엘은 이스라엘의 선생정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직하게 살려고 애를쓴 사람이며 또한 이스라엘에서 범죄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산 사람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예수님으로 부터 칭찬을 들었다면 상당한 도덕적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개념으로는 이런 사람을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은 예수님의 개념에서 도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4.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
2. 하나님의 주권
5. 적용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방법이 독특하다. "와보라"
이는 요한이 예수님의 어법을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요한의 생각에 그렇게 한 것인지는 분간할수 없다.
그러나 요한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방법을 "와보라"그리고 같이 계시면서 말씀을 나누셔서 자신을 보이시고 믿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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