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의 장소 / 요단강
2. 등장 인물 조사
제자를 부르시고 사역을 시작하시려는 예수님,
자기의 사역의 때가 다된 것을 느끼고 있는 (세례)요한,
자기 선생을 신뢰하려는 어린 제자 (사도)요한,
선생을 따라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안드레(베드로 동생)
고기 잡기에 여념이 없는 베드로
3. 사건의 줄거리 조사
1) 먼저 이 때가 언제일까?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기 이전일까 아니면 세례를 받으신 다음일까? 우선 마태는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바로 유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한다.
* 예수께서 유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기록은 아주 중요하다.
그 기록 배경을 보면 시험을 받으신 장소에 예수님과 사단 외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저자 마태가 배경인 시험받으신 장소에 같이 있었다거나 멀리서 지켜보고 예수님을 경호하는 일은 물론 없었을 것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다음 사역중이실때 부름을 받았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광야에서 시험의 자료는 다른 사람에게 얻은 것이거나 아니면 에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밝힌 내용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예수님과 사단과의 관계를 지켜보고 증거 한 자료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수께서 시험을 받으신 장소에는 예수님과 사단만있었도 후에 이 자료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전달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마태가 이 자료를 어떻게 받았는가?
이것은 예수께서 시험받으셨던 사실을 제자들 중에 마태가 있는 곳에서 말씀하셨다는 분명한 사실을 확인 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 복음에는 이 사건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왜 요한 복음 저자는 이 기록을 배제하였을까?
막 1:12-13 눅 4:1-13 에는 마태복음의 시험사건이 공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요한 복음에는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요한이 공관 복음서를 이미 읽고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배제하였을까?
아무튼 요한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요한은 다른 복음서 저자들이 경험하지 못한 다른 자료들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다른 저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은 가지지 못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먼저는 사건에 대해서 직 간접적인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 증거를 미쳐 듣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그 시기 동안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라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 마태복음 주님께서 제자들과 첫 대면시에 즉시 부르시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 첫 대면이 소명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인간적인 관계로 접근한다.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들은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예수님의 질문을 받았다는 것은 다른 공관 복음서와 전혀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이런면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들려지고 읽혀지는 의미들을 성령께 묻고 깨달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아무 의미 없이 이런 내용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 뜻과 의미를 가지고 우리에게 교훈 하시고 계신다.
본문은 두 제자는 밤이 늦도록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이것은 두 제자가 예수님께 교육을 받은 장면이다. 이 교육이 너희는 나의 제자이니까 교육을 받아라 해서 행한 교육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밤이 늦도록 함께 있었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셨으며 제자들은 예수님께 여러가지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장차 미래 교회를 이끌어갈 제자들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과 친근감을 나타내 주셨다.
예기에 제자들이라고 불리는 두 사람은 이미 세례요한을 따라다니며 그에게 뒤에 오시는 메시아에 대해서 자주 들었던 터이고 세례요한이 지명한 사라이 바로 예수님이셨기 때문에 경계하는 마음이 없이 가까이 할수 있었으나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결정적인 생각은 갖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하였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셨다.
이날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는 세례요한에게서 예수님께로 스승을 바꾸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마도 에수님의 말씀이 그의 결단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3) 그러면 안드레의 메시아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안드레는 어떤 관점으로 예수가 메시아라고 했을까?
결론적으로 예수께서 광야의 시험을 이기신 다음 다시 갈릴리에 오셨을 때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예수를 소개한 것이다.
4. 본문 연구
1) 본문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었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2) 내용분해
함께 거하니
메시아를 만났다.
3) 본문의 의도
먼저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다가 베드로가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고(마 4:18, 막 1:16),
요한의 형제는 그믈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다(마 4:21, 막 1:19)고 기록한다(눅5:10-11).
이것은 사도 요한이 공관복음서를 읽어본 다음에 기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복음서들의 내용을 더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추측은 합당한지 모르겠다.
다만 사도 요한은 자기가 처음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 감격을 생각하고 있다. 그때 안드래가 예수를 매시야라고 했던 그 통찰이 결코 거짓이 아니엇음을 말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공관 복음에서의 제자들의 부르심 장면 외에 다른 장면이 요한에게 나타난 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들을 서로 연결하여 예수께서 제자를 만나시고 부르시는 일을 순차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안드레와 요한은 세례 요한의 소개에 의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베드로는 안드레에게 이끌려서 예수께로 갔으며,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소개하기를 예수를 메시아라고 말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리고 베드로의 부르심을 받은 것을 공관 복음서와 구별되게 기록한 것은 중요한 의도는 아니다.
5. 공통 성구연구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갈릴리에 돌아오신 예수님의 활동시기(마 마 4:18이하, 막1:16-20)
베드로에게 이름을 주심 (요 1:42, 마 10:2 , 마 16:17,18 , 막 3:16 , 눅 5:8 , 눅 6:14)
2. 성경 신학적 연구
1. 저자의 사상적 배경연구
1) 자료 수납 과정
저자가 본문의 자료를 따로 수납한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서 처음으로 증거 되어진 말씀이다. 성령은 저자를 통해서 온 세상에 이 메시지를 선포하셨다.
2) 저자의 의도
안드레가 바르게 판단하다.
사도 요한은 다른 의도로서 본문을 기록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본문도 역시 앞 문장과 같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야임을 드러냈던 세례 요한의 증거를 말하려고 한다. 더하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하룻 밤 동안 예수님과 함께 거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예수께서 메시야라고 증거 한 것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데 중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 역사적 연구
1) 본문의 역사
본문은 예수께서 부름을 받으시고 유대 광야의 시험을 당하신 다음 다시 갈릴리에 돌아와서 세례요한이 활동하는 곳에 다시 나타났을 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날을 안드레와 함께 지내고 안드레가 형 베드로에게 메시아를 만났다고 데리고 오는 일까지다.
이때는 예수님이 사역의 초기 제자들을 부르시려 다닐때다. 이 때를 전후해서 예루살렘에는 빌라도가 예루살렘 성전에 가이사 형상이 그려져 있는 기를 꽃아 놓은 일로 유대인들이 반발하게되고 빌라도는 반발하는 유대인들을 무참히 죽이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진 시기이다.
3.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
2. 하나님의 주권
4. 적용
우리가 말하는 사람의 입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분이나 혹은 우리의 자랑할 만한 귄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진실한 우리의 입술이다.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를 잘 소개하는가?
그리고 성경을 잘 이해하고 성경대로 말하는가?
이것은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소개하는것이 사람의 입이 할일이다.
우리의 독자들은 우리의 증거대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되어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이상하게 전하면 독자들은 우리가 전하는 대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된다.
유대의 권위자들은 다른 일에 몰두하여 있다(로마와의 정치적인 관계).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정치적인 왕으로 소개하려 할 것이다.
또한 사회운동가는 그리스도를 사회의 악을 제거하는 슈퍼맨으로,
환경운동가는 그리스도가 환경을 새롭게 해주는 능력자로 소개하고,
경제인은 경제를 원활하게 하는 돈버는 메시야로 소개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사람이다.
그는 광야의 사람이다.
그가 입은 옷은 약대 털옷이다.
그는 가진 것이 없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없다.
그는 하나님께서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메시지를 주시고 백성들에게 전하라 하신 것이다.
그 말이 우리의 귀에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믿어져야 한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증거한다. 이것이 본문을 기록한 그의 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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