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사건의 장소
갈릴리 가나 (가버나움에서 하룻길 나사랫의 가까운곳)
이 가나는 두로와 시돈 사이의 사렙다 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가나에 비해서 사렙다 쪽의 가나는 더 큰 동네라고 일컬어졌다. 이 갈릴리 가나는 스블론 지파에 속한 땅에 있었고, 다른 가나는 아셀 지파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Jerome도 자기가 살던 시대에 가나란 이름의 작은 동네가 있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예수의 어머니가 그 결혼 잔치에 참석한 것을 보면, 가나는 나사렛에서 가까운 하룻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서 저자는 예수께서 그 지역에 계신지 사흘 후에 결혼식이 거행 되었다고 말한 사실에서 우리는 가나와 뱃세다가 인접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본문 요약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도 함께 청함을 받았다. 아마도 이 혼인 잔치는 마리아의 친척중의 한 사람의 가족으로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초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활동하신 사역이 이 혼인 집에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처음 기적을 행하심으로 제자들을 믿게 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본문의 의도 / 본문은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이적을 증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실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적은 요한의 입장에서 가장 귀한 이적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공관 복음서 외에 많은 기적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모든 기적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이적들이다. 특히 양문 곁의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된 병자에게 행하신 이적, 죽은지 나흘이나 지나 무덤속에 장사지낸 나사로를 불러내신 사건등은 공관 복음서의 이적보다 더한층 극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이적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물로 포도주를 만든다는 것은 자연의 모든 조화까지도 뜻대로 역사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만물의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신 것이다.
내용 분해
(1)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으심 1-2
(2) 좋은 포도주 3-11
본문을 기록한 특이한 이유는 유대인과의 거리감을 두려는데 있다. 요한은 유대인과 철저한 구별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전혀 다른 근원을 말하려 한다. 본문으로부터 유대인과의 관계성을 묘사하는 저자의 의도를 살필수 있다.저자가 성경을 기록할 당시의 여사적 상황은 핍박받은 유대인과 멸시받은 상황이다. 예루살렘은 100년전에 이미 멸망했다.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으나 로마인들에 의해서 처절하게 멸시를 받고 있다. 도미티안 황제 재위시절에 유대인들은 약 45000명이나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베스파시안 이후 티토. 도미티안은 형제로서 유대인들을 철저히 미워했고 멸시했다. 아마도 이것은 주님의 예언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사도 요한의 마음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신학적 연구
1. 공통본문연구
2. 역사적 배경연구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중 혼인잔치에 까지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은 무엇을 했을까?
무엇을 하면서 공동생활을 했을까?
이 모든 점들은 한결 같이 여러가지의 상상을 유발하게 한다.
첫째는 처음 이적을 행하신 곳이면서 제자들까지 초청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활동이 시작이후 여러날이 지난 것으로 추측하게 할뿐만 아니라 이미 이 혼인집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아주 단순히 예수님으로 인해서 제자들까지 초청을 받았을 것도 전혀 배제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사흘동안이나 머물고 계셨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사흘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무슨 이야기들을 하셨을까?
복음서 기자는 분명히 말하기를 예수께서 처음으로 이곳에서 기적을 행하셨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모두 너무도 궁굼한 비밀들이다. 제자들을 사흘이나 묶어두고 공동생활을 하도록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것은 무엇일까? 모르긴 해도 하늘 나라의 신비스러운 이야기들로 제자들을 붙잡아 두셨을 것이다. 아마도 제자들은 하늘나라의 신비스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는 동안 예수님을 점차 신뢰하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유하였을것이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 나다나엘이 빌립에 의해 이끌려 에수님 앞에 왔다가 메시아를 만난 놀라운 사건이 있다. 이때 나다나엘은 예수님으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1:49).
AD27-29
성경개론
저자가 이 본문을 기록하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아마도 자신이 평생을 바쳐 자신이 해온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를 글로 증거하려는데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예수는 이런 일을 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기적의 사건을 증거하는데 큰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요 20:31에 분명히 고백한다. 저자는 많은 사건들과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 몇가지만 기록했다. 이것은 순전히 독자를 위해서 선택된 자료일 것이다.
2.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하심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위해서 섭리로 미리 예비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혼인잔치집에 포도주가 모자라게하셨고, 제자들이 초청을 받도록 조건을 조성하셨으며, 하인들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순종하도록 마음을 움직였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지만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행해진 일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사람이 책임을 지게 되있다. 이미 타락햇기 때문이다. 만약 이미 타락하지 않았다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그 때 지게 된다.
그러나 지금 혼인잔치 집에서의 사건은 사람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 하인들은 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인들의 마음을 이미 움직여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에게 책임이 있으며 어떤때에 그들에게 책임이 없는가?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책임과 사람의 책임을 생각할 때 현재 사람의 상태를 분명히 전제하고 있어야한다. 혼인집에서의 사람들은 이미(창세후 아담으로 인해) 책임으로 인해 심판을 받았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적대적이고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졌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랬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은 움직이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손길이 버림받은 폐기물에 닿앗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폐기물을 들어 구속의 역사에 쓰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과 관계없이 그들에게 거룩한 손길에 닿은바 되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은혜는 이 손길에 의해서 구속의 은혜를 입은 선택된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은 나를 들어서 어떤 구속사역에 쓰시려는가?
2.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라. 마치 인형 극무대에 나타난 종이 인형들을 움직이시는 배면에 계신 하나님을 보라.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것은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마음에 믿음을 심기려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4. 적용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살피라.
동정녀 마리아의 생각
하인들
구경하는 제자들
구경하는 다른 사람들
연회장
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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