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강해

세상의 구주.(요 4:39-42)

생명있는 신앙 2007. 3. 13. 21:08

세상의 구주.(요 3:39-42)

본문

4장 39절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장 40절///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장 41절/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장 42절/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등장인물

사마리아 여인들, 예수님, 제자들,

사건의 내용

변화된 사마리아 여인이 마을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다른 여인들이 몰려 오게 되었다. 몰려온 수가의 여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마도 예수께서 수가의 여인들에게 어떤 일을 하셨을 것이다. 그것은 선지자로서의 이적과 기적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우물에 온 여인의 과거 남편의 수를 미리아시고 대답하신 것 같이 어떤 기적적인 일이 수가 여인들에게 있었을 것이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중 예수님께서 놀라우리만큼 인간의 마음을 아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들의 소망과 희망을 아신 점을 들어 그리스도임을 확실히 믿게 되었을 것이다.

수가 여인들이 왜 예수님을 마을로 초청하여 이틀동안을 머물게 하셨을까? 이 일이 가능한 일인가?

여인들이 왜간 남자를 초청해다가 몇일씩 모셔두면 남편들에게 무슨일이 없을까? 이처럼 윤리가 흐트러져 버렸을까? 충분이 오해 받지 않은 어떤 방법으로 모셨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가 선지자라는 사실이 분명히 인정 되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은 선지자를 집에 모시면 복이 온다는 일종의 민간 신앙같은 것이 정슨되어 왔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연구 해볼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수냄 여인이 선지자 엘리야를 모시고 복을 간구 해서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24:32 참조] 야곱의 우물

본문 요약

사마리아 여인은 에수께서 자기에 관한 모든 사실을 다 알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동내에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예수께 로 와서 예수를 모시고 함께 유하기를 청하였다. 이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여러 가지의 질문들을 위해서 자기 마을로 초청하여 이틀을 유하게 되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여인들에게 많은 이야기들로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 하셨을 것이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다.

1. 신학연구

1. 공통본문연구

눅 9:52-53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고로 저희가 받아 들이지 아니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2. 역사적 배경연구

1) 사마리아 사람들의 종교성

사마리아인들의 종교적 배경은 솔로몬의 죽음 이후에 왕이된 여로보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로보암은 9지파 반으로 분단된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된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 예루살렘을 왕래하다가 유다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출애굽때 하나님을 배반하고 신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그 신상 둘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게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BC 722-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사마리아가 함락을 당하므로 멸망을 당하고 사마리아에는 이방 백성들이 들어와 거주하게 된다. 이때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민죽들과 혼합되어 이방화 되어 유대인들에 의해서 배척받는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배척받은 민족적 감정 때문에 유대인과 하나되지 못하고 감정을 누그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떳떳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혼혈아라는 이유 때문에 선민으로서의 모든 혜택을 박탈당하여 버림받은 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갈 자격도 얻지 못한다. 야곱의 자손이라는 명예도 누리지 못한다. 이들이 섬기는 종교는 그리심산에 있는 황소 신상이다. 이 황소 신상은 유다가 말하는 여호와를 의미 한다. 그들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한 신이 여호와임을 믿는다. 그러나 그 여호와를 황소 신상을 만들어 놓고 섬긴다.

사마리아인들의 종교는 윤리적인 틀을 가지지 못한다. 계율이나 윱법 같은 것을 갖지 못한 우상 종교로 전락되고 말았다.

우리는 약간 잘못된 종교성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민족간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인지 확실히 깨닫게 된다. 우리들 가운데에도 처음에는 같은 생각으로 같은 사상을 가지고 종교 생활을 하는 것 같으나 세월이 흘러 후대에서는 신학의 중신 교리와 철학의 차는 벌어져 서로 합할 수 없는 엄청난 종교적 변질을 가져올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사마리아인들도 분명히 이스라엘의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야곱의 자손들의 후예이다. 다만 그들이 이방에게 함락당하여 이방인과 혼합 되어버렸다는 것 뿐이다. 비록 정통 유대인은 아니지만 분명히 약속의 자손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그들만의 종교 성지를 만들어야 하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대신에 이방인 여로보암을 따라갔으며(왕하 17:21) 그가 섬기라고 하는대로 좇아간 결과였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한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어야 했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행한 범죄의 소굴로 들어가서는 안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하여서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여 멸망당하고 유대에서 배척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책임이 막중함을 가르친다. 백성을 이끄는 자가 하나님을 떠나게할 수도 있다. 백성을 이끄는 자의 종교 철학과 신학은 성도들의 신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하는 말이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한다. 이것은 그들의 세계에서의 선지자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 잘못된 인도자를 따라 왜곡된 신앙생활을 했을지라도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소망은 남아 있었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다.

3. 저자의 사상적 배경연구

저자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증거한다. 이 자료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증거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정화한 이후 갈릴리로 돌아가는 길에 사마리아를 통행하시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갈릴리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왜 저자는 세례 요한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께로 돌아 왔는가? 이것은 저자의 결정적인 변화를 말한 것이다. 이는 아마도 세례 요한에게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께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저자가 갈등하고 있는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세례 요한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하는가? 누구를 따라야하는가? 저자는 유다를 지배할 메시야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해서 고민한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유대인의 결례 문제로 인한 세례 요한의 답변이 저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저자는 이 답변을 듣고서 예수께로 돌아가 갈릴리로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된 것이다. 그 길에서 사마리아 야곱의 우물에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것이다.

본문은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본문에서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려 마을로 내렸갔다고 말하는데 마치 예수님은 혼자서 야곱의 우물에 남아계신 것처럼 보여진다.

저자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마을로 내려가지 않았다. 예수님과 함께 우물에 남아 있다가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내용을 자세히 듣고 보았다. 이야기의 내용이 현장감 있고 상세한 것으로 본다면 이 기사는 저자가 직접 본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사건의 배경을 그려볼수 있다.

야곱의 우물에 여러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갈릴리의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유대인들이기 때문에 멀리서 사마리아 여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지 않으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인과 이야기를 하거나 접촉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목이 마르셔서 물한그릇을 청하셨다. 이것은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분명히 범죄에 속한다. 예수님은 반드시 양을 드려 속죄해야 하고 몇일간 정결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하자 사마리아 여인이 하는 말이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하나이까”라고 대답한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더러운 혼혈여인에게 물을 달라고한 것 자체에 대해서 의아했을 것이다.

이런 놀랄 만한 배경을 본 저자는 본문을 다른 독자에게 듣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들은 내용을 말한 것이 분명하다.

4. 본문의 의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마리아 여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았다는데 중점이 있다. 다른 복음서에는 귀신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았다는데 기록을 한다. 귀신은 이미 예수를 알아보고 말한다는 점에서 귀신의 정체에대한 분명한 확신을 준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이틀간을 거하는 도중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직접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5. 성령의 의도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사마리아 여인이 오순절 이후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지식으로 알았을까에 대한 것은 의문이다. 이들의 그리스도 개념은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다윗의 왕과 같은 의미를 생각했을 것이다.

2.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하심

말씀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예수를 알 수 없다. 우리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도록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벗어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되는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법을 주신역사가 없다.

2. 하나님의 주권

사마리아 여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거나 알았을지라도 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본문은 이런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사실은 다음 장(요 6:44)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3.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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