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 5:14-18)
본문
요 5장 10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요 5장 11절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요 5장 12절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요 5장 13절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요 5장 14절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요 5장 15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요 5장 16절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요 5장 1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요 5장 18절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등장인물
병나은 사람,
유대인,
예수님.
사건의 내용
병 나은 사람이 자기의 자리를 들고가는 일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에게 다가와서 그의 죄를 들춰내 그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무너지게 만든다. 이 환자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대의 법을 알 것이다. 미쉬나나 토라의 계율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유대인이 말하기를 안식일에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은 범죄다. 더군다나 성전 옆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정말 그렇다, 우리라도 그 말에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대의 전통이요,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환자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래 내가 죄를 지엇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은 사람은 사단의 어떠한 궤계가 잇어더 능히 이길 수 있다. 온전한 지식은 악한 궤계를 능히 물리치고 그 궤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이 환자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마음에 담았다. 아니 그가 담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두 번째로 본문은 안식일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유대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안식일 논쟁은 여러곳에서발견 되지만 이 장면에서는 더욱 강렬한 반응이 나타난다.
본문 요약
1. 병 나은 사람에게 다가온 시험 / 환자가 병이 나아서 자기의 자리를 들고가는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율법으로 이 환자로 하여금 소망에서 무너지게 한다. 사단은 이렇게 믿는자를 넘어지게 한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즉 올바른 지식을 소유한다면 어떤 유혹이나 우리를 무너지게하는 궤게도 능히 물리칠 수 있다.
3. 안식일에 관한 논쟁
[본문 분해]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다]
안식일은 유대의 모든 것이다. 아직까지 이들은 안식일을 제일의 계명처럼 지킨다. 그러나 이들이 이처럼 굳게 지킨 안식일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 얼마나 안따까울까?
우리가 그토록 확신하고 섬겼거나 믿었던 진리의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슬피 울며 이를 감이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전도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안식일이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에 오셨다. 무슨 이유로 오셨을까? 이곳은 제사장들이 양을 잡기 위해서 씻는 곳일찌도 모른데 주님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가 무었일까? 아무리 살펴보 예수께서 이곳에 오신 이유를 알 수 없다. 만약에 이 이유가 조금이라도 알려진다면 우리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저자로 하여금 그 내용을 기록하지 않게 하신 것이다. 아무튼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율법해석에 따라 안식일에 바늘을 몸에 지니도 다녀도 물건을 다른 장소로 이동한 것이기 때문에 죄를 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으려면 바늘 하나라도 몸에 붙여서 다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 환자가 자기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곳은 유대의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벽 바로 옆이다. 그곳에서 자기의 짊을 지고 걸어다녔으니 마땅히 유대인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낫게한 그이가 걸어가라 한데]
환자는 자기가 낫게된 원인을 자세하게 말한다. “자기의 질병을 고쳐주신 분이 어떻게 해서 병을 고쳤는지 그 사실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가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그가 나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므로 내가 일어섰더니 내 병이 나았다.“
”그가 나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그가 명령하여 나를 고친 것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한 것인데 내가 다시 환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가 누구냐]
유대인들이 그를 낫게한 그 사람을 말하라 한다. 그것은 그에게 병을 고쳐주고 그에게 일을 하게했으니 그는 죄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네가 나앗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
이 말씀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아마도 이 환자가 병이 들게 된 원인은 그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환자는 병을 얻을 수밖에 없는 어떤 죄를 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것이다.(어디까지나 이는 추측이다). 그러므로 그가 잘못을 저질러 범죄하여 병을 얻었다면 최소한 20대 이후의 나이에 발병하여 38년동안 고생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병이 나은 때는 젊은때가 아니라 상당히 나이가 많았을때로추측할 수 있다.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유대인들이 자기를 낳게한 이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그곳에 있지 아니하였으나 성전안에서 예수를 다시 만나고 그가 예수님인 것을 알고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자기의 병을 고치신 것을 말했다. 아마도 고침을 받은 환자는 자랑스럽게 예수님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것이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게한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예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야한다. 이 환자는 자기가 짊을 들고 가는 것이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또한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서 자기에게 미치는 불리한 책임을지지 않으려는 속샘이기도한 반면, 자기를 고친자를 사람들에게 알려 그의 능력을 드러내려는 의도도 있다. 그래서 스스로 유대인에게 가서 예수를 고소한 것이다.
사람은 이와 같다.
자기를 고쳐준 은인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숨겨야 마땅하나 그는 그렇지 아니했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고 드러내게 다니지 못한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유대인들이 예수께 와서 여러 가지고 비난 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예수께서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밝혔음이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둥등이심을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더욱 분노하게 된다. 자기가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과 하나님과 동등함으로 말하는 점에 유대인으로 더욱 분모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지금가지 일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자신을 보내시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한다.
그랬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가지 쉬지 않으시고 일하셨다. 이것은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으로 안식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 쉬는 날이라도 범죄한 사람 때문에 쉬지 못하시고 계셨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증거가 된 것이다.
1. 신학연구
1. 공통본문연구
렘 17:21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마 12:2
막 2:24
막 3;4
눅 13:14
2. 역사적 배경연구
3. 저자의 사상적 배경연구
저자는 다른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 두 번째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기록한 목적은 유대인들이 이적을 행하신 그리스도를 비난하고 환영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록하는데 목적이 있다.
저자는 병자가 38년된 환자라고 말한다. 병자가 38년이나 질병으로 고통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것은 이 환자에 대한 절망적 상황을 진실하게 증거한다.
저자는 베데스다 못에 관한 증거를 자세하게 기록한다. 이 사건은 다른 저자들에 비하면 더욱 극적이고 놀라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사도 요한만이 기록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저자가 의도하는 사고의 방향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저자는 사건과 사건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론, 유대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순서로 기록한다. 요한복음의 대부분의 말씀이 예수님의 강론 중심으로 되어 있으면서 유대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것은 저자가 글을 기록하는 그때의 감정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글을 기록하면서 독자들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독자들과의 상황에서 유대인은 어떤 관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유대인과 고침을 받은 사람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과 안식일에 관한 지식을 증거한다.
4. 본문의 의도
본문은 안식일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밝혀주려는데 있다. 어쩌면 저자의 독자들이 안식일에 관한 일로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뭏튼 본문이 안식일에 관하여 자세하게 증거하는데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안식일에 관한 유대인들의 교리는 엄격한데 반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 보다 주의 부활의 날(안식후 첫날)을 더 강조하여 그날에 모이는등 오나전히 유대인과 구분되었기 때문이다.
5. 성령의 의도
성령께서는 안식일을 가르치기 위해서 본문이 선택되어 기록되도록 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본문의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다른 목적으로 본문이 전달 되도록 하신 것은 결코 아니다. 본문은 순수하게 사건 중심으로 기록하여 사건 자체로서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려는 것이다.
첫째 본문은 저자와 유대인과의 구별성을 말한다. 저자는 유대인과 철저한 구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안식일과 주의 날과의 차이점일 것이다.
두 번째는 생각의 차이이다. 그날까지 유대인이었던 사람들은 새로운 계시가 그들에게 나타나자 완전히 지식에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2.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하심
주님께서는 애굽을 출발한 유대인으로 더불어 가나안을 인도하실때에 새로운 법을 제정하여 그들이 지켜 나아갈 규례로 삼으셨다. 예수께서도 이땅에 오셔서 처음으로 구원 사역을 행하시고 성도들을 이끌고 약속으 땅 천국으로 신자들을 이끄는데 새로운 제도와 규례를 주신다. 그것은 사랑과 화평 그리고 소망과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옛 안식일을 개혁하셨다. 이제 그 안식일은 에전의 안식일과 전혀 다른 의미로 바뀌었다.
2.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인이시면 그리스도는 만유의 근본이시다.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만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신다.
3.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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