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대로 살면 (럼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3) 복음의 역할
복음은 진리의 지식입니다. 진리라고 할때 성령께서는 항상 그 진리와 함께 계시고(요15:26) 사람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16:13). 진리는 지식이면서 곧 하나님이시라고 말 할 수 있지만(요1서 5:7) 삼위 하나님과 같은 위격인 본성이 아니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계시의 속성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있는 곳에 성령 하나님이 반드시 계시고 성령께서는 이 진리로 인하여 사람에게 역사하시고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복음이 진리라고 할때는 복음이 가지는 역할 때문에 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내용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사실로서 하나님의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살후2:13). 하나님의 행위가 계시로서 복음으로 드러났으므로 하나님을 나타내며 그 진리와 함께 성령이 계시므로 복음을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령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보이는 의식작용의 결과가 아니라, 진리와 성령, 그리고 사람 영혼이 복음인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말씀에 의해 살게하는 생명작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피조물의 영혼에 글을 쓰는 서기관의 작업과 같고 씌어진 복음은 사람의 생명활동의 의식을 일으키는 작용적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씁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고집대로 세상을 살던 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복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의 방향을 지시하고 이끌어주며 가르키는 열할을 합니다. 복음은 사람이 말로 전달해주지만, 그 말씀은 사람의 영혼에 새겨져 활동하게하고 활동을 재어하는 역할을 하며,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드러내는 색(color)입니다. 예를 들어 복음이 백색이면 사람이 백색이 되고 적색이거나 흑색이면 이에 따라 적색이나 흑색이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복음의 내용에 관해서 보았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그대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2)”입니다. 이 복음이 지닌 역할은 소명의 역할, 그리스도의 계시의 역할, 복음을 받는 자의 상태를 밝혀주는 등불의 역할을 말합니다.
(가) 복음이 지닌 소명의 역할,
복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개개인의 이름을 호명하시며 부르심이고, 두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부르시는 것은 소명입니다. 호명을 받은 자가 그 부르심에 응할 것인가 응하지 않을 것인가, 라는 선택의 여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닙니다. 최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니시다가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 하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은 사람을 찾아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고 부르시는 호명입니다. “아브라함아”(창 21:22,1). "모세야"(출 3:4). "사무엘아"(삼상3:4;6;8).같은 부름에는 다 각기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특별한 목적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려는 의지로서의 부르심으로 호명이었습니다. 두 번째 부르심은 공통으로 부르시는 소명으로 응할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여부는 개인에게 맡겨진 자유로서 공표의 의미가 있습니다. 복음이 공표될 때 그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 동의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마음에 믿고 받아들인 사람에게 복음은 세가지의 효능을 나타내는대 1) 의를 , 2) 믿음을 , 3) 구원을 나타냅니다.
첫째 복음은 듣는 사람에게 의가 나타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거니와(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의 머리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상실할 때, 먼저 하와가 하나님께 중대한 실수하게 되었습니다. 사단의 유혹을 맏은 하와는 쉽게 넘어졌고 인내하지 못함으로 범죄하였고, 곧 바로 아담에게도 동일한 죄를 짖도록 유혹하여 넘어 뜨렸습니다. 하와는 먹었던 선악과 열매를 내밀어 먹도록 했습니다. 이때 아담은 마땅히 하나님의 의를 행하여 선악과를 먹은 하와에게 적용될 죽음의 저주로 인한 심판을 두려워하고 자기가 할 일을 생각하고 그 일에 자신을 던져 하와를 구원하는 일에 희생되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의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여 구원하는 일이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그 죽음을 대신 담당하여 하와를 구하고 자기 죽음을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면 하와의 죽음은 용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두 번째 복음은 믿음을 일으킵니다.
믿음은 영혼의 의존 감정으로 지성의 충분한 동의입니다. 실지로 이런 감정은 일어날 수 없는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기적적인 일입니다. 자세하게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하와의 유혹에 넘어진 아담의 타락으로 영혼은 실명 상태에 들어갔고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영적인 어두운 상태가 되어 거의 아사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영혼을 죽었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영혼이 없는 사람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 존재하고 있다면 영혼은 사람 몸에 있으므로 사람이 완전하게 구성됩니다. 하지만 영혼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영혼이 제기능을 하지 못함으로 사람은 육신으로만 생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모든 영혼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면 영혼이 제기능을 하게 된다면 어떤 역할을 할까요? “영혼은 하나님과 관계한 모든 인식의 세계를 마음에 비추어 육체에 감각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한 모든 지식은 영혼에서만 인식되고 육체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사도가 육체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했습니다.(롬8:7)
믿음은 복음 곧 하나님과 관계한 지식이므로 육체로는 결코 알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받아들이고 믿었다면 그것은 곧 영혼의 작용입니다. 영혼이 믿음을 받아들이고 작용을 일으켜 생존한 존재와 같다면 상당한 논리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앞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영혼으로만 받아들여진다고 하였고, 분명히 영혼은 죽어있는 상태, 곧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지식인데 죽어 있는 영혼이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사람의 영혼에 보내셔서 진리의 지식인 복음을 영혼의 지성에 새겨놓으셨고 영혼은 그 진리의 지식 하나로만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성령의 역사이지 사람의 육체의 지성이 깨닫고 알고 느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으로 믿음을 주시고 거듭나게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곧 하나님의 기적이 사람의 영혼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믿음을 일으키고 이 믿음은 “성령께서 죽은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을 새김으로 일어나는 영혼의 의지로서 마음에 반영된 순수한 영혼의 의지”입니다. 실지로 죽은 영혼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면 결코 깨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때 비로써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눈을 열게 되고 영혼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심판을 받게 된비다. 그러므로 육체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는 결코 영혼의 깨어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셔서 사람을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복음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에 의해 영혼에 새겨짐으로 영혼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실지로 영혼이 깨어나려면 육체가 죽어야 하는데 복음을 받아들인 영혼은 육체가 살아 있으면서 영혼이 깨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지닌 지식은 지극히 제한적인 복음 뿐입니다. 성령께서 그사람의 영혼에 오직 복음만 새겨 두셨습니다. 이 복음은 그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사람이 태어나면서 영혼의 지성에 새겨놓은 지식은 모두 육체의 오감으로부터 얻은 것들입니다. 이 지식 사이에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처음 새겨진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바탕으로 영혼은 하나님의 지식으로 점차 증가하게 되고 이 지식의 증가로 말미암아 신앙인은 점차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깊어지고 육체의 정욕과 욕심은 점차 제 힘을 잃어 갈 것입니다.
믿는 마음은 영혼의 동의로 말미암는데 타락한 영혼은 그 지성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짐으로 빛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간단하게 믿음을 일으킨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육체의 의지가 믿음을 일으키려면 감각적인 경험을 필요한데 감각적인 믿음이라는 것은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냄세를 맡고 귀로 듣고 느낌으로 확실히 경험했을때 믿음을 일으키는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2천년 전의 역사로서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당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 조차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던 장면을 친히 목격하였지만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로는 결코 복음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도 스스로 자기가 아직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 영혼이 기능을 하지 못하는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항상 육체로 인식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영혼으로도 영혼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영혼이 생명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을 깨우신 분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에게 임하시고 영혼에게 생명을 부여하시기 위해 복음의 지식을 영혼에 새겨 넣으심으로 영혼이 소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고서 결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보혜사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에 관한 진리의 지식을 영혼에 새겨주심으로 소생하게 하시고 그 진리의 지식에 의해 믿음이 일어나는데 이 믿음은 영혼의 지성에서 비치는 등불에 의해 전 인격적인 사람에게 밝혀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복음은 구원을 나타냅니다.
구원은 하와의 범죄로 영혼이 타락하여 죽음의 길을 볼 수 있었던 아담이 하와를 어떻게 그 범죄에서 구원할 것인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보아도 됩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혼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와의 모습에 드리워진 비참함에서 구원할 방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담이 깨달은 구원에 관한 지식은 한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하실 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하셨으니 하와를 대신해서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주 순전한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아담이 대신 죽어야 한다는 진리는 후일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죽으시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해야 하고 아담과 하와는 해어져야 할 것입니다. 아담에게는 하와와 해어진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일것입니다. 물론 아담이 선악과를 받아먹게 되는이유는 더많은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많은 이유들이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이끌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앞에서 타락한 하와가 구원을 받으려면 아담이 대신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은 우리즤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면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는 말씀을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는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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