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신분에 관하여 살펴보고 그 차이점을 관해서 살펴 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주 말씀드린 것처럼 창세전에 작정에 의해서 태어나도록 계획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이 사람의 범죄 때문에 파기될 수 없기 때문에 계획대로 아담은 작정된 후손들을 생산하게 됩니다. 그들은 죄를 지었으나 죽음으로 인하여 죄의 값을 치루고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죽고 끝나는 것이 하나님의 작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작정하실 때에는 그들과 함께 한 가족을 이루어 함께 계심으로 즐거워하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에는 오늘날과 같이 이 세상의 많은 나라들이 생기고 그 가운데 또 하나의 나라로서 이스라엘이 아니었고, 그들 밖에 없는 세상가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죄의 열매들을 생산하게 되고, 하나님의 작정이 아닌 허락에 의한 유기백성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죄로 인하여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고 사라지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를 무의미하게 하여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실패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을 피조물인 사람이 변경시키거나 방해하고,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을 지으실 때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흠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발상들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서 서로 상관관계를 가질 수 없는 존재론적 구별이 있습니다. 이런 구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관계를 가지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을 알 수 있도록 계시하시며, 사람의 관점으로 볼 때 상관 관계를 유지하시면서 관계를 가지시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당신은 낮추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품을 수 있고, 의지를 생각할 수 있는 이 놀라운 지각을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존재로 지어 주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 범죄했을 경우 당신의 계획이 전혀 손상을 입지않고, 피조 세계에 완전히 실현되도록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에서 비롯된 경륜입니다. 그것 때문에 세상에는 아름다운 윤리와 도덕이 일반은총의 차원처럼 드러나고 도처와 모든 피조물들에게서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섭리의 한 현장이고, 그들로부터 원하시는 영광을 받으셨으며, 그 존재를 충분히 나타내 주셨고,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계획 경륜과 함께 사람들의 죄의 결과들이 드러났고, 죄로 말미암아 그들의 지성이 어두워짐으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는 완전한 소경이 되어 그 역사하시는 섭리하심을 아무도 지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들의 후손이지만 그들이 지은 죄의 결과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죽어야만 했고, 그 죽음을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드높고 깊은 철학과, 교육,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높은 도덕의 삶, 인내와 숭고한 사랑들이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을 향한 갈망이 있었고, 숭고한 정신들이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였습니다. 비록 이런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깨우친 무지와 오류를 함의한 지식들의 결과이지만, 이런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의 놀라운 지성적인 능력은 하나님께서 지혜로 지으신 인간의 탁월성을 보여준 아름다운 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탁월한 지적인 능력과 이해력으로 신의 경지에 이르는 일들을 수행할지라도 그들의 운명에 드리워진 비참과 비극적인 종말은 죽음이라는 마지막 심판으로 잊혀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사람들을 지으실 때 죽음을 보지 않도록 지으셨으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에 갇혀버린 비참한 운명은 그들 스스로 결코 벗을 수 없는 굴레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아들들의 죽음.
그들이 죽어가면서도 자기에게 왜 죽음이 오는지를 분명히 알고 깨우치며 그것을 알려주고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본래 그렇게 죽도록 지음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목적을 깨닫고 죽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삶의 교훈이나 법령처럼 생각하는 성경에 죽음의 들어온 이유에 대해서 분명히 말했으나 그들은 그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여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의 비췸을 갈망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지한 이방인들과 같이, 태어났으니 반드시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면서도 죄인으로 어두움에 갇혀 살았기 때문에 생명을 잃어버린 자신을 알지 못하였던 이스라엘은 죽음이 죄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임을 분명히 알지 못하였고, 오히려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육체의 삶의 기간 동안을 정욕과 탐심으로 일관된 삶을 유지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소경인 이스라엘은 자기를 낳아준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고아처럼 세상에 버려졌다가 사라지는 운명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탄생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태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창조에 영향을 미칠 하등의 관계도 없습니다. 사도가 말한 것 처럼 “세상에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엡2:12):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잉여의 자식이고 존재에 아무런 가치도 부여되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의 정욕으로 잉태하여 세상에 태어났으나, 죄의 열매로 태어났기 때문에 반드시 죽을 것이고, 죽음 다음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세상은 비참과 비극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위해 유일하게 한가지만을 준비해 주셨으니 그곳이 지옥입니다.
이런 삶은 비단 이방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안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방인과 같이 비극적인 세상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는 이처럼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는 결과들을 매일 생산하면서도, 자기들의 행위가 죄로 말미암아 얻게 될 그 무서운 세상을 물려주는 것을 조금도 지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오늘 이 지면을 읽고 계신 여러분이 바로 이처럼 천대 받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로 말미암은 정욕으로 태어난 죄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런 보장도 없고 하나님도 외면한 결코 쓸모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미움이 솟아 오릅니다.
왜 죄를 지어 정욕을 일으켜 우리를 낳았느냐고 분노를 폭발하기 직전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참 하나님의 아들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아니 보내심을 받으셨다기 보다는 떠밀어 내셨습니다.
우리의 손에 죽으라고 보내지신 것입니다.
죄를 범하고 죽어가는 소망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결코 죽음을 모르는 참 하나님이신 그 아들이 우리에게 스스로를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죄로 너희를 낳아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내가 잘못했다고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너희를 낳지 않았으면 너희가 지옥에 가지 않았을탠데,
내가 낳아서 너희가 지옥으로 가니 견딜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막대기와 돌맹이를 우리 손에 쥐어주며 자신을 향하여 던지고 죽여주라고 했습니다.
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지어 이 땅에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태어나지 않게 자신을 죽여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원망과 미움과 분노를 그에게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으로 그 안에서 움틀 거리는 죄의 정욕을 완전히 죽였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씌워 피흘리며 고통을 당하게 했고, 채찍을 휘둘러 살점을 찢어냈습니다. 십자가를 지워 등에 메고 골고다를 오르게 했으며,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옆구리에 창을 찔러 피를 쏟아냈습니다. 다시는 그 육체에서 정욕이 솟아나지 않도록 육체를 파괴했습니다.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썩어버리라고 무덤에 장사 지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무덤을 커다란 돌로 막고 인봉하여 아무도 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방인인 우리가 그를 죽였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분노를 잠재우시려고 아들은 내어 주시고 우리에게 화해를 청하셨습니다.
사도가 고백하기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0~2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미워하고 분노로 죽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임으로 우리와 화목케 하려고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 용서를 받게 하려고 아들을 주신 것으로 알았는데 이제 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 하시려고 아들을 내어주시고 우리더러 분노를 쏟아 죽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듣고 계시는 줄 이해하시나요?
화목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우리에게 청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데,
하나님께서 그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그토록 원하셔서,
때가차매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더러 아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화해하자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지었는데 이방인에게 화해를 청하셔서 구원을 약속하셨으니 이도 역시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예정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래참고 기다리셨다가, 하나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회개하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를 물어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의 친구와 이웃 그리고 형제와 부모, 그리고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속히 전해야겠습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에 우리가 아는 형제 자매들에게 속히 전해서 그 수에 이르도록 해야 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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