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영혼의 상태는 우리에게 있어서의 영혼의 상태와 같지 않습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께서 작정에 의해 태어난 사람이며,
둘째는 그의 영혼의 지성에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인 지식을 조명하시고,
셋째로는 그의 지성은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함의한 지식을 생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창조는 처음 사람을 지으심으로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그로 인하여 태어날 후손들을 계획하셨으며 후손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섭리하시는 일을 마치시는 것까지 창조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 2절에 “하나님께서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라고 하신 것이 창조의 모든 일이 끝나고 하나님을 창조된 이 세상을 벗어나 멀리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선상에 놓인 아직 나타나지 않은 일들이 시간의 정함에 따라 나타나게 될 계획도 하나님의 창조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아담 안에서 후손의 태어날 모든 사람들을 계획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날 사람으로 계획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작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2, 그가 창세전에 이미 계획에 의해 이 땅에 태어나도록 작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됨으로 다윗 그도 역시 그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지 못한 상태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아담의 후손의 영혼은 진리의 지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다윗 이전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확인된 사실이었습니다. 곧 아담의 타락은 작정된 하나님 아들들의 영혼에 심각한 부패를 가진 영혼의 어두움과 무지 상태로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결국 다윗도 무지와 어두운 상태를 가진 영혼을 가지고 태어남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고 하나님을 알 수도 없는 비참한 존재로 태어난 것입니다.그래서 그는 사람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인하여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아직 사람으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따로 구별하셔서 택하심으로 은혜를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다윗에게 나타난 두 가지 뚜렸한 구별된 인식이 있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시는 임재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 구별된 자기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임재의식은 주관적인 인식에서 객관적 사실에서 드러냈고, 둘째로는 자기 자신으로서는 인식될 수 없는 이상적 지식들이 자기 안에서 지혜나 지식으로 인식되고 자신이 이 지식대로 행하는 자기 행위를 스스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스스로 신적 감화와 같은 인식을 항상 가지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이상적인 삶은 평범함 이상의 삶으로 하나님과 함께하심을 드러내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영혼의 지성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생성하도록 조명해주시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3, 성령의 내주하시는 조명이란? 타락하기 이전 사람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고, 형상 안에는 본유지식이 있었습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창조에 관하여, 사람에 관한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사람은 지식으로 인식하고 의식하며 행동하는데, 이 지식에 따라 사람이 판단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지식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지식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 지식으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이 인식할 수 있고 육체에 작용되어 행동하게 하는 자기지식을 생성하고 영혼의 감성에서 지각되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지식을 가질 때 피조물 자체로 지식을 생성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이 조명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은 사람이 자기인식이 가능한 자기지식을 생성하도록 조명하도록 주어진 지식인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할 때 하나님 형상이 깨어지게 되자 바로 이 본유지식이 사라져 버림으로 영혼 안에서 찬란하게 빛을 밝혀주는 조명이 사라졌고 어두움이 밀려 온 것입니다. 바로 이 상태가 영혼의 지성에 밀려온 무지이고, 이로 인하여 사람이 생성한 모든 지식에 필수적인 결함과 무지가 함의되어 있는 왜곡된 거짓 지식을 갖고 그 지식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대 다윗은 그의 영혼에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시므로 진리를 인식하고 진리대로 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영혼의 지성은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을 아는 은혜의 빛을 함의한 지식을 생성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입으로나 글로 표현하는 모든 언어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지식이 함의 되어 있어 그를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자손이기 때문에 타락의 속성을 벗고 완전하게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가 기록한 많은 시편들에서 볼 수 있듯이 타락한 아담의 자손에게 은혜를 드리우시므로 죄인에게 비취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죄의 삶과 은혜의 삶속에서 갈등하는 사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 51편을 통해서 죄와 은혜의 삶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타락한 사람의 본성이 행하는 악이 어떻게 기회를 타고 사람을 정복하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의 영혼에는 두 종류의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죄의 본질인 왜곡되고 거짓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과 성령의 조명에 의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이 함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육신의 생각과 성령의 생각(롬8:6, 갈5:17, 육신의 소욕, 성령의 소욕)이라고 했습니다. 전자를 일컬어 육신대로 사는 삶을, 후자를 일컬어 영을 따라 행하는 자들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가 영혼의 지성에 새겨진 지식으로 행한다는 것을 알기까지 우리영혼은 많은 거짓 지식과 싸움을 해왔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참 지식이 이르러 그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주된 인식을 하도록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거짓되고 왜곡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이 우리의 전인에 인식되고 생물체를 자극하여 느낌을 갖도록 하거나 행동하게 할 때 사람은 거짓의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는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원함”은 마음에 반영된 지식이 행위로 드러내려는 마음의 작용으로 의지를 말합니다. 사도의 말에 의하면 “선을 행하기 원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영혼의 지성이 한 지식을 전인인 마음에 반영하여 지식대로 행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선이었습니다.
사람은 구조상 어떤 의지를 가지려 할 때는 마음에 지각된 지식이 반영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의지는 어떤 대상이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지식이 반영되었을 때 그 지식대로 행하려는 것이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선을 행하고자 한 것은 사도의 지성이 생성한 선이라는 지식이 마음에 반영되어 행위로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자기 지성의 지식에서 반영된 선이라는 지식에서 숨겨진 또 다른 지식을 보았는데 그것이 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오해할 수 있어 좀 더 설명하자면, 마음에 반영되어 있는 상태에서 숨겨진 또 다른 지식을 본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고 난 이후에 결과적으로 볼 때 악이 드러나는 것을 본 것입니다. 결국 이런 말입니다.
“나는 선을 행했는데, 그 선 속에 악이 함께 있어서 그 악을 행하였다”라는 말입니다.
결국 나는 선을 행하고자 선을 행하지만 선 안에 숨겨진 악이 선한 행위와 함께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결코 자기의 의지로 악을 행하지 않도록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자기 지식에 있는 결함과 무지를 볼 수 있게 하고 악을 행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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