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다윗은 창세전에 아담 안에서 작정에 의해 태어났으나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사람이며 그의 영혼은 어두움이 드리워진 체 진리를 알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자기 형제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신이 감동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3:13).
‘하나님의 신이 감동 되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그의 영혼에서 조명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기 이전에 어떤 상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아버지 이새에게는 여러 아들들이 있었으나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형들을 제외하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이는 다윗의 영혼에는 이미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외모로 볼 때 형들은 모두 충분히 왕이 될 만한 각각의 능력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고 다윗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던 것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다다르고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 같은 내용들을 사실로 언급하려 할 때 우리는 항상 가인과 아벨을 살펴봅니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여부를 분명히 드러낸 증거는 제사에 관한 언급인데, 가인은 자기지식을 의지하여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반면 아벨은 자기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대로 제사를 드린 것이, 가인의 행위는 자기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고, 아벨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영혼에 있거나 성령에 의해 조명되고 있는 것을 보신 것이 분명합니다.
어린 다윗이 양치고 있을 때 그에게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 안에서 일반인과 동일한 지성적 작용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구별할 방법은 없습니다. 아마도 형들과의 다른 점들은 있었을지라도 독특성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생각밖에 구별되는 어떤 점을 발견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특이한 점으로는 그의 형들과 대화를 보면 다윗의 생각과 형들의 생각에서 뚜렷한 구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골리앗을 대치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풍전등화와 같고 전쟁에 나가 싸우는 군인들은 추풍낙엽이었습니다.
군인들은 골리앗에게만 걸리지 않으면 살아남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든지 골리앗을 피하여 빠른 속도로 도망하는 일뿐입니다. 형들도 역시 골리앗에게 걸리지 않은 것이 운 좋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골리앗 앞에 나아가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이스라엘을 조롱했고, 하나님까지 조롱하며 이스라엘을 비웃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전장에 나가있는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려고 어린 다윗을 양치는 현장에서 불러 여러 가지 먹을 것을 챙겨주고 살피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전장까지 달려온 다윗은 형들의 안부를 확인하였고, 형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블레셋 진영에서 소리치는 골리앗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골리앗의 조롱하는 고함소리가 다윗에게 들려오자 그의 영혼의 지성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령께서 조명해 주고 있었고, 이미 생성한 지식들도 조명해 주므로 그의 판단이 거짓되고 왜곡된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의 분명한 구별이 드러납니다.
성령에 감동된 사람은 그의 영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령, 혹은 이미 생성한 자기지식의 조명을 받으므로 진리 중심으로 판단된 지식을 갖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고함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가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고 조명 받게 됩니다. 이것을 골리앗의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 즉 참과 거짓과의 대립이고, 사람은 이와 같은 지식의 대립에서 인식하고 느낌으로 사람의 상태가 드러납니다.
골리앗의 고함소리에 이스라엘 군인들은 공포를 느끼고 두려워 떨었으나, 다윗에게는 거짓되고 왜곡된 골리앗의 소리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대적하는 것을 인식한 것입니다. 다윗의 영혼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다윗을 감동하는 성령은 골리앗의 소리에 분노의 지식으로 인식되고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사람의 판단과 느낌은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의 판단과 느낌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말하던 형들은 골리앗의 고함소리에 공포를 느끼지만, 다윗은 그 고함소리를 하나님을 모독하는 소리로 들었습니다. 다윗의 이런 행동은 일반 사람들에게 교만함으로 보일 수 있고 성령 감동을 받지 못한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상태에서 신비적이며 초자연적인 이상이 사람에게 작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의식을 초월한 신적 감화에 의한 행동으로 신비적인 체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화는 사람의 의식을 결코 떠나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여러 신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신적인 사건으로 인해 신비적인 일들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귀신이나 사단이 사람을 유혹하여 넘어뜨리거나 혹은 비인격적인 일들을 자행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강력하게 대적하는 악행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는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격적 감화와 인식에 의한 감동으로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적인 지나친 행동을 가미한 신앙에는 기독교의 진정한 진보를 저해하는 행위가 됩니다.
우리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온전하게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할 때 보이지 아니하는 어떤 신적 감동이나 이성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접촉이나 신적역사를 신뢰하는 교묘한 신비주의적인 경향으로 비툴어져 나아가게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미신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진리로부터 왜곡된 경향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지극히 인격적이며, 온전한 지성의 작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진 사람이 행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에 심겨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진 그리스도인은 그 생각에 있어서 비 그리스도인과 다릅니다.
다윗이 그의 형들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며 형들로부터 교만하다는 평을 받은 것(삼상17:28)이 그의 형들에게는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지성에 작용하고 있었던 것(성령의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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