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의 악행이 크고 깊을수록 사람이 느끼는 농도는 더 커집니다. 그러므로 악을 행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데 이 사랑의 행위는 선으로부터 나오는 반응으로서의 행위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에게 불쌍 긍휼 그리고 피조물을 향한 크고 놀라운 보호가 하나님의 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행위로서 감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악을 행하지만 그 악을 인식하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사람이 악을 악으로 보는 것은 그들이 범죄 함으로 악을 인식할 수 있는 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악은 사람이 자기지식으로 생성한 것인데 그 본질이 바로 무질서와 부조화로서 거짓되고 왜곡된 지식이 행위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따라 태어나도록 선택되지 않은 모든 이방인들(엡2:11~12)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진리대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따라 존재 하기로 작정되어진 사람과 죄로 말미암아 허용된 이방인이 세상에 분명히 구별되어 나타나고 성경이 이를 역사적으로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데, 분명한 자기 인식을 가지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진리의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진리대로 인도를 받지 못해서 판단하는 모든 지식이 혼돈스럽고 인생에 문제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지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자기 안에 있는 자기 지식으로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거나 혹은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는데 그 지식들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만족을 가질 만한 인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창3:22)”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는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을 가지셨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 악을 말씀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악을 가지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있는 악을 “미리 아셨다”고 말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악은 자기지식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가진 악과 같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악이 없으므로 당신안에 악을 인식하실 수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선과 악을 알 수 있는 지식이 하나님께 있어서 사람이 행한 악을 악으로 인식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안에 악이 있는 것이므로 악의 시작은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되고, 모든 악은 하나님으로 왔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말에 이해나 표현하는데 있어서 다소 부족하기가 이를 데 없으나, 하나님께는 악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은 그 시작이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고집스럽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중앙에 두신 선악의 나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명하셨을 때는 “이미 하나님 안에 악의 개념을 가지고 계시고 악을 판단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라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심스럽게 말하기는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시는 능력으로 미리 아셨다고 말하되 악의 지식을 가지셨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악은 어떻게 사람에게 있고, 그 정체는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악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없는 악이 창조세계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더욱 아닙니다.
성경을 억지로 풀면 악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보게 됩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동산에 중앙에 두신 것이 악을 두신 것으로 잘못 이해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이미 악을 알고 계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언급하지만 하나님께는 악이 없고 선 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에 세상은 선합니다.
바로 그 선에서 선이 나타나지 않고 악이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인식하실 때 선하게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선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고 그것을 악이라고 칭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은 막연히 선의 반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창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선하게 지으셨으되 악은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악이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선하게 지음을 받은 피조물에게서 악이 나온 것이며 그러므로 악의 근원은 피조물로부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잘못 만드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도자가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정직하게 저들이 많은 꾀를 낸 것이라(전 7:28)”라고 말한 것을 보면 선하게 지음을 받았으며 결코 창조에 실패하신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에서 악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악이란 무엇입니까?
악은 일반적으로 피조물인 사람의 행위를 말하는데 사람의 행위는 영혼의 지성에 있는 지식을 행위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악은 행위이고 행위는 영혼에 있는 지식이 육체의 생리적 반응으로 나타난 행위이므로 선한 지식은 선한 행위를 악한 지식은 악한 행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악은 악한 지식을 행위로 드러내는 것인바, 선한 지식으로는 악을 행할 수 없고, 선한 지식만 가지신 하나님은 악을 행하실 수 없으며, 선한 지식에는 결코 악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피조물인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는 것은 자기안에 악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악한 지식은 선이라 할 수 없는, 선에 적합하지 못한 지식으로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지식이 선하지만, 그 지식이 선에 이르지 못한 지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지식의 조명을 받았을 때는 선한 지식을 가질 수 있었으나, 사람들이 타락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되자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본유지식의 조명을 받지 아니하고, 이미 가진 자기지식의 조명으로 지식을 가지게 되지만 선재하는 지식에 함의 되지 않은 무지와 결함이 새롭게 가진 지식에 함의되어 불완전하고 왜곡된 자기지식을 갖고 이 지식으로 행위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지식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고 있는 것은 완전한 지식으로부터 조명을 받아 가진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에 의해 조명을 받을 때 완전한 자기지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하게 되자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됨으로 이미 가진 자기지식으로만 지식을 가지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과 같은 완전한 지식의 조명을 받지 못하므로 불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불완전한 지식을 선에 이르지 못한 무질서와 부조화인 지식으로 죄의 본 질이라고 하고 이 지식대로 행하는 것을 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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