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말하고 있는 주제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가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를 향하여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있는 진리의 동산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 진리의 동산에서 우리가 발견한 하나님의 의로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행위를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우리는 진리의 동산에 들어가는 복음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장본인이 자신임을 알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통곡하였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문안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고 다만 문을 열기 위해 밀어젖힌 것 뿐인데, 우리보다 먼저 들어간 수많은 성도들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분명한 지식을 인식하고 자신의 행위를 저주하며,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온전하게 서서 들어가지 못하고 움크려 기어가며 자기의 되를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문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셨고 진리의 동산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그 엄청난 행위 때문에 더욱 오그라드는 죄에 중압감으로 온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한발을 앞으로 내딛고 들어가 보십시오.
시편 73편을 기록한 기자의 경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제사장 가문의 아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수종드는 것보다 세상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서 세상을 나갔었습니다.
성전 안에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베고프고 굶주리며 고통을 당하며 억압 속에서 힘들고 지친 인생 속에서 거의 쓰러져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그들은 기름진 음식과 화려한 옷과 넓고 궁중 같은 거택과 죽을 때에도 고난이 없고 힘이 강건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악인들이 항상 편안하고 재물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성전의 어두운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지겨운 세마포를 입고 살아온 삶,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항상 손을 씻어 무죄함을 자신의 자랑으로 여기며 살아론 삶이 실로 허사로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참에 성전을 나와 세상에서 살 생각을 가지고 성전에 돌아가서 자기 짐을 들고 나오려고 다시 성전 문을 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의 영혼에 스쳐 지나가는 지각되는 지식이 있었는데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그 한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 사람들의 종말이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종말에 있습니다.
이제 복음의 문을 열고 들어선 우리에게 인생의 종말이 감각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편기자가 경험한 것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의 삶이 결과적으로 인생의 종말에 처해지는 비극을 파하여 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의의 태양이 떠오르는 진리의 동산에 발을 내 딛고 있으니 우리의 영혼에 지각되는 지식들은 세상에서 접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손에 들린 쇠못을 박고 있는 망치,
주님의 십자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종말,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영혼에서 일어난 변화를 지각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복음에 나타난 의,
그 태양의 빛을 받으려고 들어선 이 복음의 문 앞에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지혜와 지식들이 피조물인 우리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사람은 결코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이었고, 이 방법은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지혜가 있고 마음이 깨끗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읽은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의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의 예대로 아직 그 의에 대해 지각을 가질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증거들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수많은 앞선 선배들이 이 복음의 문을 통과하여 동산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문의 양옆에 수많은 선배들 중에는 자기들의 죄가 너무 중하여 도저히 서서 들어갈 수 없어 무릎으로 걷고 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추악한 죄를 회개하며 한발 한발 진리의 동산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정오의 태양빛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모든 푸른 초목에 빛의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처럼 동산에 비취는 빛은 맑고 청결하여 만리 라도 손으로 만질 듯이 맑고 깨끗하게 시야에 들어옵니다.
진리의 동산은 우리의 눈앞에 거치는 것이 없습니다.
향기도 다르고 콧속에 들어오는 공기 또한 달랐습니다.
미끄러지듯이 들어오는 숨은 영혼에 까지 느껴지는 상큼함이었고 한번 들이 마시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같은 생명의 만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영원한 생수로부터 발하여지는 생명을 주는 숨 자체였습니다.
죽음이 생명에 삼킨바 된 자체,
한번 들이 마심으로 죽음이 사라지고 생명이 자리를 들고 내안에 앉은 것입니다.
복음의 문을 사이에 두고 세상과 진리의 동산과의 차이가 이처럼 달랐습니다.
성전 문을 넘는 순간 영혼이 낸 지식은 세상의 죽음이었고 이것이 종말이라는 것을 지각하게 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 있었고 그가 길을 걸을 때마다 그 채워진 말씀이 그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 기자가 성전 문을 넘지 않았다면 결코 세상의 종말을 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복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생명에 삼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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