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롬3:21) 4,

생명있는 신앙 2013. 11. 21. 04:30

하나님의 의에 관하여 이미 로마서를 시작한 이후부터 말해왔습니다. 믿음과 칭의 이 주제는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말하는 핵심 주제 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로운 일인데,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의에 관하여는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16:10)”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율법의 마침과 하나님의 새로운 일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사도의 사고에 의하면 율법의 마침은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은 이제 그 역할을 다했고, 다시는 사람을 정죄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도로 하여금 유대교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사도는 그리스도로부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요나의 사명을 받은 순간까지 율법의 절대적인 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들은 말씀이 그의 영혼에 새겨지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조명하여 사도의 영혼에서 지각되도록 하자 사도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율법의 끝이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여는 또 하나의 시작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세상이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로 말미암아 태어난 이방인인 우리들은 너무도 섭섭하고 아쉬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죄의 결과로 태어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그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죄를 더하였고,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에서 뒤틀어진 질서들이 원상태로 돌아감으로 계획에 속하지 않은 우리들은 피조세계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의 마침은 이방인의 세계의 종말의 시작이 됩니다.

이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질서로 재편되고 아담의 원죄를 씻김 받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나라가 이땅에 세워짐으로 이방인들의 죄의 본질이 극명하게 구별되어 세상은 선과 악, 곧 죄로부터 분명히 구별된 두 나라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고 계획에 속하지 않은 우리의 영혼의 무질서한 지성에서 나오는 모든 지식들은 세상과 하나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심판받을 죄의 본질들뿐이기 때문에 우리가 버림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들만 드러내는 삶을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실지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오히려 이방인들과 화목 하는 구실이 되게 했다고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배는 서신에서 분명하게 말했던 것입니다. (2) (3:25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

우리는 알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보내셨으나 하나님의 아들인 이스라엘 손으로 그리스도를 이방인에게 내어주어 이방인으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게 한 것은 이방인에게 죄를 더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을 일으켜 죄의 열매들을 낳아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멸망과 심판에 처하게 한 죄에 대한 화목을 위해 그리스도를 죽이도록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그것도 모르고 죄를 더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죄를 더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곧 우리와 화목하시려는 죄를 대신하여 아들을 내어주시는 큰 사랑을 베푸신 것이었고, 이런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한없으신 사랑을 보여주셨으며,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셔서 부활하게 하시고는 우리에게 은혜의 팔을 벌려 전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11:28)”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지옥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너희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그 책임을 그의 아들을 내어 주셔서 죽게 하심으로 정리하셨습니다.”

그 대속은 다른 이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욕을 일으켜 잉태하여 태어난 바로 우리에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우리가 양을 죽이는 것과 같이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관계없이 우리를 태어나게 하여 장차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존재로 태어나게 한 그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여 죽여 다시는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죽이는 것이며,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자기의 죄를 보고 그 죄를 죽이기 위해 자기를 죽여야 하는 그 일을 대신하여 짐승의 피를 드리는 행위로 대속제물을 통해 자기의 죄를 용서 받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의미를 통하여 죄를 대속하는 제물로 짐승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불순종의 모든 죄를 범한 것에 대한 사죄의 대속으로 드리는 제물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을 일으켜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신들을 낳아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보내어지도록 태어나게한 죄의 열매가 되게한 죄에 대한 분노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죽이는 미움과 분노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여 제물로 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분노를 쏟을 제물로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가인에게는 아벨을 내어 주었고,

여리고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용사들을 내어주셨으며,

또한 마침내 온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친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왜 우리를 이 세상에 있게 했습니까?” 라고 원망과 분노하는 외침으로 죄이 대한 이글거리는 불덩어리처럼 온세상을 녹여버린 분노를 쏟아내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와 화목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전체의 사상이고 죄에 대한 완전하게 마무리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까지 우리가 제사를 드리면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제사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바쳐지는 피엿던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아벨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아벨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자기를 낳았다는 것을 알았고, 그 죄는 자기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형이든지 아니면 누나이든지 그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인과 다른 영혼의 구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형 가인에게 내어주고 형의 분노를 잠재워 화목하기를 원하였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되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형에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것을 성취하시기 위해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양의 생명을 빼앗아 죽이므로 자기를 벌써 죽였고, 자기는 가인과 화목하기 위해 내어준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내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내어주심,

이 의미는 화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2:14)”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의를 말하려 하다가 믿음을 드러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으면 희미하게 요구되는 믿음에 관한 필요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되어지는 모든 말들은 믿음이 아니고는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라고 개념을 말씀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미 죄, 의 믿음에 관하여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 이미 말하여진 분명한 진리가 성경의 중심 사상임을 알게 됩니다.  

 

* 오늘 이장을 마치려 했는데 부득이 내일 한시간 더 하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