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려(롬3:26) 3,

생명있는 신앙 2013. 12. 15. 08:04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는 결코 참된 지식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안에 참된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믿음을 드러낼 때 그 믿음이 결코 참일 수 없습니다. 참된 나무에서 참된 열매를 맺고, 거짓나무가 거짓의 열매를 맺는 것이 순리입니다.

우리의 상태는 거짓이고 우리 안에 인식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지식이 거짓뿐입니다.

진리를 비추어도 그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선으로 판단하여 볼 때 거짓이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거짓과 진리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말하자면 우리 영혼의 지성에 있는 모든 지식들은 무지와 결함으로 왜곡되어 거짓된 지식만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지성에 진리가 들어오면 거짓된 지식들이 진리를 조명하여 거짓으로 판단하여 이해하도록 할 뿐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을 때 가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두 귀로 아니 영혼의 소통함으로 분명히 들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영혼에 들려졌을 때, 말씀하신 존재에 대한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는 자기지식으로 조명하여 이해할 것인데, 그 자기지식에는 말씀하신 존재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은 말씀하신 하나님을 제 멋대로 이해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거짓된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얻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성경이 가인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반면 아벨을 통해서는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아벨의 영혼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순을 발견합니다.

구약만 읽은 사람은 이 모순에서 결코 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제사를 드린 반면, 가인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믿음으로 드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 영혼의 지성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통해 냉정하게 우리를 비교해 보아야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가인의 영혼 안에서는 거짓이 작용하여 거짓된 지식만 생성하여 인식함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왜곡된 지식을 생성할 수 밖에 없다고 했고, 반면, 아벨은 그가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작용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구별된 것입니까?

그것은 가인과 아벨은 동일한 타락으로 말미암안 정욕의 아들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그들에게 일어난 정욕은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행위를 거스르는 죄의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타락하지 않았어도 정욕은 일어났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는 약속의 명령을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정욕을 일으켜 아들 딸들을 생산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요한복음 1:13에 하나님의 자녀들의 조건에 관하여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정욕이 아닌 다른 뜻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말씀대로라면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람에게 나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아들을 삼으실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미 난 사람을 새롭게 만드시는 것이 말씀의 뜻이라면 타락도 하나님의 뜻이 되어 버리는 이 교리가 하나님의 선에 부합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욕정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속한 아담의 후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적당한 때에 후손을 낳을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 욕정이지만 타락한 사람이 빠져버린 정욕이 아닙니다. 이 정욕이 선한 욕정이 있고 악한 욕정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타락으로 말미암안 하나님의 선의 기준을 상실한 사람이 정욕을 자기만족의 도구로 이용하여 하나님의 작정이외의 아들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에는 창조 이전에 아담 안에서 태어나도록 작정되어진 계획에 속한 사람과, 이 계획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구별되는데 성경은 이것을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구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에게 있어서 이 구별을 어떻게 확인 할 수 있습니까?

두말 할 것도 없이 그들의 행위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으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아벨이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행위를 한 것이고, 가인은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행위를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가인과 아벨은 태어날 때 부터 분명히 구별된 상태로 태어나서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 모두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아담의 타락은 그 순간부터 그들의 지성이 어두워 졌고 모든 판단이 흐려지고 진리에서 벗어난 왜곡된 지식만을 가지고 그 왜곡된 지식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되었습니다. 그래서 판단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에 합당하지 못한 질서없고 조화롭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타락의 순간부터 결코 선한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성에 어두움이 뒤덮어 모든 지식들을 어두움으로 혼합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욕정도 무질서하고 조화롭지 못하게 사용하였고, 이런 선하지 않은 정욕으로 이방인과 하나님의 작정된 사람이 같이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결국 이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질서하고 조화롭지 못한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아들들도, 하나님의 계획에는 없는 죄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것을 허락하심으로 태어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비참한 이방인들도 동일한 죄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구별되는 것은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이 두 사람을 분명히 구별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후에야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가인과 아벨은 출생의 근원이 다릅니다.

그들에게 나타난 행위가 그것을 증명하는데 가인이 아벨과 동일한 정욕의 열매이지만 그의 지성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한반면 아벨도 동일한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그는 자기행위가 아니고 자기의 지성을 밝혀주시는 성령의 조명이 있었다는 것을 너무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4:6)”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8:15)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