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려(롬3:26) 4,

생명있는 신앙 2013. 12. 16. 04:36

믿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믿는다고 하는 그 믿음은 우리의 타락한 지성의 산물이라면 그 믿음을 참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지성에서는 결코 온전한 열매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참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참된 지식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벨 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성령께서 조명해주시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영혼에도 성령의 조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동일한 조건으로 태어났으면서 서로 다른 지식을 가진 것은 그들의 지성 안에서 그들로 하여금 행동할 수 있는 자기지식을 생성하게 하는 작용이 달랐던 것입니다. 가인은 예전부터 가진 자기지식의 조명으로 믿음에 대한 자기지식을 가진 반면, 아벨은 성령께서 조명하여 주심으로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가졌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은 동일한 조건의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 영혼의 지성에서 일어나는 작용으로서 조명해주는 지식에 따라 사람에게 드러나는 행위가 달라진 것입니다. 

가인의 믿음은 자기에게 있어서 참일지라도 본질에 있어서는 왜곡되고 거짓된 믿음이지만, 아벨은 성령께서 조명해주시는 믿음이기 때문에 참된 믿을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타락된 본성에서 나오는 모든 믿음은 결코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가인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타락된 지성으로부터 나오는 믿음이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을 진리대로 인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로서 우리는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을 조명해 주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 안에서 조명해 주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를 믿음이 먼저인가 아니면 성령의 조명이 먼저인가? 라는 순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당연히 성령께서 먼저 우리의 영혼을 조명하여 우리로 하여금 참된 믿음을 갖게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필연적인 일이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가인과 아벨에게 있어서는 아벨에게만 성령께서 조명해주시므로 아벨로 하여금 하나님을 진리대로 인식하도록 했습니다. 반면 가인에게는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공통적으로 대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편애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것이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그 선은 결코 무질서하거나 모순되며 혼돈스런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즉 하나님의 선은 질서롭고 조화로운 것입니다. ‘질서롭다는 것은 혼란이나 모순이 되지 않은 것을 말하고, 조화로운 것은 어울림에 적당한 것을 말합니다. 가인과 아벨에게 있어서 질서는 그들의 출생 근원이 모순되지 않고 혼란스럽지 않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대로 나타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출생의 근원은 이미 모순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정욕을 일으켜 그들을 잉태하여 낳았기 때문에 그들의 출생은 이미 모순되고 질서롭지 못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순인것은 그들이 타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대한 지식의 조명을 받지 못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있어서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기 행동을 억제하지 못한 욕정으로 가인을 낳은 것입니다. 만약 창조에 관한 지식의 조명을 받은 상태에서였다면 가인의 출생은 전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후손을 생산하는 욕구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질서에 따라 행동함으로 정욕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창조 계획의 순서에 따라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 필요한 정욕으로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의 지성에서는 절제하는 지식을 발하여 충분히 욕정을 다스릴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출생은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은 정욕에서 비롯되었고, 하나님께서 그의 존재를 아담 안에서 계획으로 말미암은 것이 사람의 범죄후 정욕으로 말미암아 허락하심으로 존재하게 된 사람인 것입니다.

아담안에 계획된 존재인 이스라엘, 계획이 아닌 허락으로 말미암은 이방인, 곧 하나님의 아들들의 가족과 이방인의 가족이 가인과 아벨로부터 분명히 구별되어 있습니다사도는 이를 이삭으로 말미암은 약속의 아들과 동일한 아버지에게서 낳은 종의 아들 이스마엘을 구별되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설령 성령께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실 지라도 하나님의 선이 그 결과를 결코 동일하게 드러내시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으로 드러나는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러내는 믿음이 우리 안에 참된 지식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본래 타락의 본성인 거짓에서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와 인식작용은 영혼의 지성에 있는 지식으로부터입니다.

그 사람의 어떠함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지식의 종류는 말합니다.

참된 지식을 가졌다면 그 사람은 참된 사람입니다. 반면에 거짓된 지식을 가졌다면 그 사람은 거짓입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은 지식에 있습니다. 참된 지식에서 참된 행동이 나오고 거짓된 지식에거 거짓된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세인들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이 모인 모든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 마다 제 것으로 하나니.....(8:44)” 라고 신랄하게 비난 하시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마귀자식

무엇을 말합니까?

왜 우리의 아버지와 조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눈에 마귀로 보였습니까?

진리이신 하나님의 판단 앞에 우리는 조용히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상 까지도 마귀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에는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아닌 거짓된 상태의 사람이 믿음을 드러냈다면 그 믿음은 깨끗한가요?

마귀자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 참인가요?

비록 우리가 스스로 타락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지로는 우리의 타락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논리적인 토론을 전개한다면 우리의 타락에 대한 지나친 정죄에 대해서 분노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하시는 그 칭의와, 그 근거를 믿음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하는 그 믿음은 우리의 타락과 아무런 연관성을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주신다고 하자,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이 소용없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마귀자식이 의를 행한 것이 됩니다. 오늘날 개혁교회에서는 마귀자식에게 의를 행하라고 외쳐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자식, 죄만 행하는 사람에게 의를 행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딘가 모순이 아닌가요?

 

오늘도 우리는 믿음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대면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직을 하나님 앞에 드렸으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우리의 모순을 살펴볼 겨를도 없으며 의미 없는 희생을 드리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살펴 볼 겨를도 없이 보낸 하루였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을까요?

저는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가인과 아벨을 말하여 왔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벨의 제사는 받아들였습니다.

가인은 자기생각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대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는 역시 아벨과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배를 드렸을까요?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

우리가 잊고 있지 않았습니까?

가인과 아벨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대비해 보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가인과 같은 이방인입니다.

약속에 대해서는 외인이요,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창조 계획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욕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허락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은 오실 수 없는 비참에 처해진 저주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지옥을 채우기 위해 허락된 존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