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고난주간

부활의 아침(2014)

생명있는 신앙 2014. 4. 20. 08:36

2014년 부활의 아침

 

싸늘한 추위에 얼어버릴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으며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당한 우리의 아들 딸들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오늘 그들이 모두 주님의 품안에서 부활의 아침을 함께 맞이하였으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혹 살아 있는 이가 있다면 주님의 손길로 숨을 멈추지 말고 기다려 구원을 받아 온 국민이 기뻐하는 또 하나의 부활을 간절히 간절히 기원합니다제발 국가는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국민들의 의혹을 감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를 의지할 수 있는 나라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왜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바다에서 엄청난 사건이 종종 터지는 가요?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절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 때문에 슬픔을 맞이한 자에게나 기쁨을 맞이한 자에게도 동일하게 부활의 아침이 밝아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을 일으켜 우리를 낳았고 결국은 우리가 지옥에 가고 이 세상에서 죄의 생활, 외에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삶이라고는 조금도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우리에게 그 어떤 손길 혹은 마음조차 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인 우리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리를 낳고 무책임하게 버리고 지옥의 영원한 고통속에 빠져 감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을 대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미움과 분노와 증오가 우리의 영혼을 근원으로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는 우리의 본성은 미움 시기 질투 탐욕 수근 거리는 것들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방인의 영혼에서는 이런 것들 외에 다른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영혼의 불행과 미래의 비참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스라엘이 한 사람을 이방인에게 넘겼습니다.

자기의 사람을 넘겼으니 그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방인은 그에게 사정 두지 않고 비난과 고문을 가하여 살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채찍질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등에 지우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 했고, 고통에 고통을 더하겨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 피 흘리며, 쓰러져 가면서 골고다 까지 오르게하고는 굶주린 사자가 짐승의 목덜미를 쓰러뜨린 송곳이로 몸통을 물어뜯어 먹는 것과 같이 증오와 분을 쏟아냈습니다. 

손과 발에 못 박혀 십자가에 매어 달 때는 고통을 이길 수 없는 아픔의 소리를 지르지만 감정도 없이 오직 십자가 못 박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렇게 못 박힌 하나님의 아들은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호소하시고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예수의 시체를 장사할 무덤을 제공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그곳에 장사 지내었습니다.

뭔가 끝이 났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난 그 무언가, 사건이 하나 종지부를 찍었고, 우리와 관심을 밖의 그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나타난 온갖 패악들과 하나님을 향한 사람들의 불순종인류의 비참에 대하여 아무 방법도 없고, 답을 찾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일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나 지혜로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속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으로 태어나 죄밖에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죄의 세상으로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죄의 삶을 살고난 후 우리에게 부여된 고통의 삶에 대해서 그 어떤 조치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에 주어지는 인생의 비참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갖지 못한체 죄의 삶을 살다가 저주에 떠밀려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미래를 전혀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분노하고 증오를 갖고 있는지 정확한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영혼이 미움과 분노와 증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존재를 저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에 대한 행위를 극도로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들을 죽인 후 무덤에 장사지내고도 우리가 한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일의 전모를 알고 계신 분은 오직 한분 이 일을 주관하신 하나님 한 분 뿐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천국을 건설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죄를 범하여 이 세상을 죄의 세상이 되게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그들이 죄의 세상에 살고 죄를 함께 범하여 전심으로 죄밖에 행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국을 건설해야 하고 그들이 이 세상에 속하여 죄를 더하고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져 멸망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세상으로부터 건져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그들을 구별하여 건저내기 위해 보내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은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이방인에게 내어주었고, 이방인은 이스라엘이 내어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을 무덤에 묻어 장사함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것입니다.

이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무덤에 묻혀지고 그 아들이 하실 일이 이 세상에서 성취하시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백성에게 미움을 당하여 배척당했고, 이방인에게는 철저히 미움과 분노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죄로 인하여 자기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을  알지 못한 어두움에 빠져 있었고, 이방인은 죄를 범하여 정욕으로 자기들을 낳은 하나님의 아들을 잔인하게 죽여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이세상 사람들의 죄가 원인이 되어 희생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예수를 죽게했고, 죄가 예수를 죽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다이루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가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 때문에 이세상에 오셨고, 죄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방인의 분노와 미움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이후 이 세상은 왜곡되고 거짓으로 가득채워진 세상이 건설되어 이방인들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거짓이고 왜곡된 지식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을 심으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 씨앗은 자신이 스스로 되셨고 스스로 이 세상에 심겨지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일을 하신 것이고 그 일을 다 마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제 더 이상 정욕의 아들들을 낳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삶을 살고 진리의 말씀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심겨진 씨앗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연합된 새로운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진리를 기준으로 살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고 그에게 접붙인 자들이 될 것입니다.

예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접붙임을 받은 사람이 될 것이고 그들로 의해 천국이 건설 되어질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 예수께서는 지난 역사를 완전히 끝마치시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이세상의 종말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이 영원히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이 아니고 머지않아 완전한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날에 예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실 것이고 그 땅은 이미 우리가 말해온 진리의 지식에 의해 건설되어진 하나님 나라의 땅에 임하실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구름을 타고 오신 예수께서 이 땅, 곧 아직 종말을 고하지 않은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은 당신이 죽으심으로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고, 그 종말은 서서히 진행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세우신 천국에 임하실 것입니다.

그 천국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의 지식으로 세운 그 나라를 말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영접할 것입니다.

범죄의 땅이 아닌 그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천국의 시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께서는 무덤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으로 이 세상도 끝이 났고, 이방인의 분노와 미움도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방인들의 영혼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는 분노와 증오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분노를 예수 십자가에 다 박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수도 하나님을 직접 죽임으로 끝냈습니다.

증오도 미움도 분노도 이제는 이방인의 영혼에서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잠잠해졌고 세상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무덤에 계시니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 소망없는 시간만 흐를 뿐입니다.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되는지 철학적 생각을 가진 사람은 충분히 짐작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풀어지고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섭리가 끝나므로 완전한 무를 향한 진력이 진행되어질 것입니다.

이 창조 세계가 하나님의 관심을 떠나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 수 있는 순간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적막만 흐르는 밤을 맞이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무덤에 계시는 창조 세계의 혼돈이 시작되는 조용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 까지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죽음을 당하시고 죽으셔서 무덤에 장사지내신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끝난 세상과 하나님의 보호가 없는 세상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픔을 이기시고, 슬픔을 이어 가슴을 조이고 계실 수 없었습니다.

창조된 세상을 다시 살리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실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무슨일을 한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2천년전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때 여러분이 태어나지도 않았다고 변명하실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망치를 들고 예수님의 손에 못을 박았고,

채찍으로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님을 내리치는 장본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원수처럼 여기고 증오하며 분을 토하며 미워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태어난 것을 증오하고 지옥에 가게된 운명 때문에 분노했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영혼이 그랬었습니다.

무덤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셨고 여러분의 존재를 허락하셨던 분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에게로 돌아간다"라고 사도가 분명히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죽음과 함께 이 세상도 함께 죽음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죽으신 성자 하나님을 향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셨고,

다시 생명이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분은 생명자체 이시기 때문에 죽으실 수 없는 분이지만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죽으셨고, 성령께서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하나님을 살리셨습니다.

다시사신 하나님은 이제 또 다른 창조를 시행하셨습니다.

아들을 일으키시고 그 아들로 말미암아 천국을 건설하시는 새로운 창조였습니다.

아버지의 숨결과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여 아들 하나님을 일으키시고 무덤을 열고 세상을 향하여 나오셨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두움 속에 하나님은 무덤에서 나오셨고,

세상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이 시간 무덤을 향하여 올라온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무덤 문은 열렸고 그 안에 둔 예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들의 슬픔은 더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서 나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여인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느냐

 

오늘 교회는 죽은 예수만을 기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은 예수를 두 번죽이는 우를 범하고도 자기들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큰 범죄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육적인 감정에 치우쳐 부활하신 예수님과 또한 그 부활이 주는 의미를 왜곡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하신일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일이 새나라를 건설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유대의 당국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오늘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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