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장에서 율법의 의미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간략하게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본래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었던 최초 사람에게 주어졌고, 사람의 행위를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지식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형상이의 역할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식이 있었고 사람으로 행위의 규범이 되게 하셨고, 그 지식의 조명으로 사람의 지식을 생성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지식으로 활동하고 지식에 의해서만 행위가 나타나기 때문에 지식은 사람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질 수 없습니다.
지식은 선재한 지식의 조명이 아니고는 결코 사람에게서 생성되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지식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늑대 소년이라는 정글북의 모글리 현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종종 듣습니다.
이들처럼 우리도 늑대의 보호 아래 자라고 성장했다면 모글리와 같은 삶을 살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자연적 존재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음을 받았다”라는 피조물이라는 정의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자기 지성으로 스스로 지음을 받았다고 깨우치고 지식을 얻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사람은 창조자의 지식의 범위를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그 창조를 완전한 실패입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그 범위 이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 정, 의 의 인격적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동물과 같이 감정과 감각에 의한 존재라거나 천사들과 같이 지적인 존재로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마치 천사와 동물을 합쳐놓은 존재로 지으셨지만 더 나아가 지식을 생성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식을 생성한다는 의미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재한적인 한계를 두시고 지식을 생성하거나 가질 수 있으며 그 지식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을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지성을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에게 이런 의식을 주시고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발견해 나아가도록 이끄십니다. 그럼으로 여러분 잠시라도 이런 구도자의 시간을 갖고 여러분의 영혼의 지성에 관하여 살펴본다면 놀라운 여러분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제가 지금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이점입니다.
율법은 본래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지성에서 사람을 위하여 생성되어졌고, 하나님의 형상 안에 담겨져 사람의 영혼속 지성에 심어두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선재하는 지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사람이 비록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을 하나님의 형상 안에 가지고 있을 지라도 그 지식을 그대로 가지의 지성에 적용하여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 곧 구별 때문입니다.
구별이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이 없이도 스스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지실 수 있으나, 사람은 스스로 지식을 생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감각과 선재하는 지식의 반영에 의해서만 지식을 생성하여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 스스로 무한한 지식을 자기의 의지와 생각으로 생성할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사람은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지성에서는 한없는 미지의 지식들을 끌어낼 수 있는 존재처럼 착각하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제적인 모글리 현상을 통해 사람이라는 존재를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은 선재하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그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어떤 조건이 주어져도 그 조건에 대한 스스로 자기지식을 가지지 못합니다.
사람이 늑대에게서 보호를 받고 성장하면서 결국은 늑대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을 그가 지식을 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사람의 환경에 적응 시키려고 했으나 그들이 본래 늑대의 환경으로부터 뒤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영혼에 지식이 없고, 동물과 같이 감각적 행동을 하는 존재로서 이미 성장함으로 그의 지성에는 어떤 지식도 감각된 환경과 객체에 대한 지식으로 조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구별로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조건이 없어도 자신의 지성에서 지식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지식은 선에 기준되기 때문에 어떤 지식도 진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선이란? 언제나 말씀을 드리는 것과 같이 질서롭고 조화로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은 진리뿐입니다.
반면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지식을 생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으신 분이 지식을 주셔야만 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며 생령이 되게 하셨을 때,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으로 행동하는 만능 존재로 만드신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혹자들은 하나님께서 지식을 주셨다면 그 지식으로 사람이 범죄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타락했기 때문에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처럼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에 대한 책임을 가진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궁극적으로 사람의 죄책에 대한 ‘징벌은 부당하다’라고 주장하기 까지 합니다.
제가 여기에서 하나님과 사람의 구별이라는 말과 하나님은 아무런 조건이 없이도 스스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지실 수 있고, 사람은 그렇지 못한 구별을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입니다.
결국 스스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지신 하나님의 지식을 사람이 그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사람이 해야됩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을 그대로 인식하여 행동한다면 사람은 곧 또 다른 하나님으로서 육체를 가진 존재가 됩니다.
사단은 최초 사람 하와에게 저와 여러분이 결코 넘을 수 없는 영혼의 한계에 대해서 말했고 하와는 그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타락하고 말았는데 이것이 곧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식은 곧 영입니다.
여러분의 영은 여러분의 지식입니다.
여러분의 지식이 올바르면 여러분의 영도 올바르고 그 영에 따라 활동하는 영혼도 올바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삼위인 성령과 구별되는 말입니다.
삼위 하나님은 각 위대로 지식을 내시는 분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각위대로 지식에 대하여 서로 의존적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은 서로 각 위대로 지식을 내십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 서로에게 조명되어집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신 지식은 아들에게 조명되어지고, 아들이 내신 지식은 아버지에게 조명되어집니다. 이런 중간에서 조명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이 성령은 사람에게 보냄을 받으셔서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지식을 조명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사람이 지식을 지각하고 행위로 옮기도록 가질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지성이 지식을 생성하여야 하는데, 하나님처럼 아무조건이 없는 상태에서 지식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객관적인 사실과 실체에 대한 감각을 선재하는 지식이 조명하여야만 지식을 생성할 수 있고, 이렇게 얻은 지식을 지각할 때 행위로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에 의해 필요한 지식들을 아무 조건도 없이 무에서 스스로 창조하여 지식을 내십니다. 반면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에 의해서 그 지식이 조명해줄 때만 지식을 생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의 지성에서 생성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을 그대로 사람이 인식하여 지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이 지식을 받을 때 반드시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인하여 사람이 인식하고 지각할 수 있는 자기지식을 생성하여야 합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을 직접 인식하여 지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돌비에 새겨졌거나 성문으로 기록된 성경이라 할지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이 그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성령의 조명하심이 아니면 결코 진리대로 인식하거나 지각할 수 없고 그 말씀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고, 사람은 이 율법의 지식은 직접적으로 지각하여 인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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