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서든지 하나님과 같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사람과 같은 코드를 가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코드와 사람의 코드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창조적인 반면 사람은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비 창조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의 다른 점을 거소를 비유하고, 창조와 피조물로 구분함으로 생각이 같지 않음(사55:8)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고 자기의 지성에서 지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경을 읽어도 성경이 말하는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말씀을 들으면 영혼의 지성에서는 그 말씀을 지각하기 위해 자기 안에 있는 이 미 있는 지식이 조명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지식은 모두가 거짓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전혀 맞지 않은 코드를 가진 왜곡된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조명하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을 왜곡하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율법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이해하는가? 그것은 그들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있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이 타락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복음이 사람의 영혼에 심겨져 있다면 그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을 조명하여 왜곡되지 않은 지식으로 지각하도록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도 떨어져 계시지 않고 항상 같이 계실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작은 소리도 다 들으시고, 마음으로 울부짖는 우리의 고통도 다 아십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나님은 항상 함께 계시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벗어나 수십억 광년의 거리에 있는 별이나 태양계에도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우리의 작은 고통과 기쁨과 즐거움을 아신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며, 지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작은 영혼 안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조금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셔도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인처럼 자기의 지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진리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왜곡된 지식을 갖는 것입니다.
율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최초 사람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지성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히 행할 길을 지식으로 미리 주심으로 그 지식이 사람의 지성에서 조명하여 마땅히 행할 길에 대한 지식을 지각하여 행동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받았다고 해서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인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후사!
13~14절에서 말하는 후사는 곧 세상의 주인공을 말합니다. 이 주인공은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긍휼을 베푸시고 후사들을 지명하셨는데 그들이 누구인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 아들들은 이미 말씀을 드린바와 같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었습니다.
최초 사람 아담이 타락 후 가인과 아벨을 낳은 것처럼,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도 역시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인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약속의 아들, 창조시 계획에 속한 아들에게서 또 하나의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 아들은 가인이고, 에서입니다. 이 아들이 저 아들을 미워하는데 그들의 영혼의 깊숙한 곳에서 서로 미워하며 원수가 됩니다.
가인과 아벨이 원수가 되는 이유를 아십니까?
에서와 야곱의 원수 관계를 아십니까?
그들의 영혼의 지성에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벨과 야곱의 영혼 지성에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이 복음을 통하여 가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반면 가인과 에서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이는 수많은 신학적인 동의가 함의된 지식으로부터 확신된 인식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선, 성령의 역사, 버림받은 영혼, 하나님의 창조계획으로부터의 가인과 아벨, 하나님의 전지전능과의 관계 이런 무수히 많은 신학들과의 관계에서 가인과 에서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였고, 아벨과 야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반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세상을 사는 것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는 이스라엘이 모두 하나님 아들의 가족이 아니고 육적 이스라엘이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에 에서와 야곱을 낳은 것처럼,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은 두 부류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하나는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속한 아들인 반면 다른 하나는 정욕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욕의 아들은 이방인과 같지만 이스라엘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가족 일원으로 불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가 말하는 후사에 관하여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이 말한바 창조 계획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후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후사의 조건으로부터 탈락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려고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이 사람의 타락까지 완전히 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이 여전히 타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이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셔서 주신 이삭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로부터 야곱에 이르고 모세시대 이스라엘에게 이르렀고 이때 율법을 주셔서 이 율법을 주셨지만 율법을 받고 지켜 행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 안에는 택자와 불택자가 함께 어우러져 이스라엘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율법을 삶의 근본으로 알고 율법을 준수하며 살지만 두부류의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이스라엘을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결한 하나님의 아들에 속한 후사는 율법을 받고 사는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속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율법이 어떤 역할을 합니까?
앞에서 말씀을 드린바와 같이 이스라엘로 율법의 행위대로 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은 진노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에게는 진노가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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