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처음 지식과 타락 이후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은 의지를 행하실수 있기 때문에 만물이 존재하도록 능력을 행하실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식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 그 영혼은 아무것도 없는 빈 서판이었고, 그들이 눈을 열고 세상을 보았을 때 지식이 없어서 만물을 인식할 수 없었습니다.
영혼이 없는 육체가 죽은 것 같이, 지식이 없는 영혼은 지각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당연히 지식으로 지각하여 인식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시고 계셨기 때문에 당연히 지식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처음 넣어주신 지식은 사람이 지각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그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이라서 피조물인 사람이 지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지식은 사람이 객관적으로 감각되어진 것들에 대하여 조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의 지식을 생성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나타난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늑대 소년에 관한 실화를 이해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증명리하도 하듯이 정글북의 모글리 현상에 관한 소설을 기록한 사람이 있어서 더욱 분명하게 이해되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자기지식을 갖지 못한 존재에 관한 이해를 도왔습니다. 즉 자기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동물과 다름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자주 말씀을 드렸고 자주 반복해서 언급하는 말이지만 사람은 지식을 활동하지만 자기스스로 지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에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을 주셨는데 이를 본유지식이라고 하고 이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지식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 지식을 지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지각할 수 있으려면 자기지성이 지식을 생성하는 지식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도표를 설명하면,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고 육체가 객체를 감각하면 그 표상이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고 이를 하나님의 형상이 조명하면 지성은 그 조명에 의해 자기 지식을 생성하고 이를 지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이 이렇게 지성에 지식을 가지고 깨어나게 되자 관계를 가지시고 한 가지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는 피조물로 하여금 자신을 인식하하게 하므로 주객관적인 관계가 상호 교통되어지도록 했습니다. 이때 피조물인 사람에게 하나님을 인식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물론 하나님의 형상이었고 그 형상에서도 특히 사람으로 하여금 관계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생성하게 하는 본유지식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본유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고, 이 지식이 사람의 지성에 심겨져 있지만 사람이 객관적인 감각을 가질 때 이 지식에 의해 지각하여 인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유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적인 지각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유지식이 감각된 표상을 조명하여 사람의 자기지식을 생성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전인으로 객관적인 감각을 갖지만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사람은 그 만남을 지각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자기 앞에 대면하고 있는 존재를 감각했지만 그 감각된 존재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을 생성하지 못함으로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지만 그 보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식의 역할은 후천적인 것이지만 반드시 선재하는 지식의 조명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를 지식이 있을 때 객관적인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 사람에게 변화가 왔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이 깨어 지식을 가진 활동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아담에게 자신을 나타내셔서 인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에 의하여 생성된 사람의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대화하므로 소통의 관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순종을 요구하시는 선악과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하나님과 소통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씀에 순종할 의무가 주어졌으며 사람은 자기에게 명령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순종하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로마서 4장 15절을 이처럼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며 지루하게 끌어온 원인과 결과들이 지금 드리려는 이 말씀의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사람과의 소통에 관하여 놀라운 발견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엄청난 은혜 안에 무한한 기쁨을 누리는 영광을 가졌고 그 영광으로 말미암안 나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였는데, 오늘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사람의 소통과 관계에 관하여 은혜의 바다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존재의 가치와 삶의 양식이 다르고 무한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지음을 받고 유한한 존재이며 생의 흔적을 영원히 남길 수 없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안개와 같은 인생에 매달려 있는 인간이 서로 다른 시공의 관계를 뛰어넘어 의사소통을 하며 마음의 뜻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갖고 명령하며 복종하고, 요구하고 응답하며, 서로의 필요에 응답할 수도 있는 무한의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은 감사를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무한정 복종을 요구하시지 않고 선에 조명된 인격이라는 조건에 합당한 응답하는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도바울이 표현하는 바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말을 함으로 하나님께서 무한정 피조물인 사람에게 가까이 오신 것을 표현하십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과 소통하시고 사람의 행위가 당신의 뜻에 합당치 않으므로 진노하신다는 것은 역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의 고백이 얼마나 휼륭한지 이해가 됩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데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편 8:4)\
하나님!
내가 무엇이관데 내가 주의 이름을 등에 지고 세상을 향하여 서게하시고,
내가 무엇이관데 하나님의 뜻을 내 영혼에 담으시나이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여 몸부림치며,
내 영혼이 매일 슬퍼하여 주야에 눈물이 나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오주여 나의 하나님!
내가 여기 있음이라는 이 말에 나는 당신께 영광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있는 것,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실지로 당신으로 말미암았고,
내가 비록 죄의 열매이며 하나님의 아들과 관계없는 존재였을지라도 나를 위하여 화목하게 하시려고 피를 흘리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내 두 무릎이 힘이 빠지고 당신 앞에 용서를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무모하고 패악한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나는 당신을 몰랐고, 이유 없이 미워하였으며, 잔인함을 드러내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당신은 내게 순한 양같이 죽어 주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에게 죽으심으로 내가 나를 저주하게 하시나이까?
당신은 나를 완전히 망가뜨림이시여.
죄된 나를 망가뜨림이 고통이나 미움이나 징책이 아니라
당신의 무한한 사랑이 나를 완전히 부숴 버리시나이다.
아버지!
내가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까?
죄인을 얻으려고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당신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내의 영혼이 당신을 향하여 고백하는 것을 들으십시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로 고백하며 알게 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라면, 내가 만난 내가죽인 하나님의 아들은 당신을 향하여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나에게 죽음을 당하신 그 아들과 형제가 되게 하셨습니다.
제가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알고 느끼고 있는 이것을 이웃에 있는 나의 형제, 죄인들에게 전하게 하십시오.
특히 이스라엘에게 전하게 하시고 그들의 영혼에 새기는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단 하루라도 좋습니다.
저들이 내가 전하는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영혼에 심겨지는 성령하나님의 조명하심이 함께하시는 그 시간이 정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등에지고 세상을 향하여 서는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아버지!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만물을 지으시며,
나에게 모든 것을 가져가신 당신은 진정 하나님이십니다.
24 장로들이 보좌에 둘러 자기의 영광의 면류관을 영광의 보좌앞에 던지며 천지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하고 엎드려 경배하는 그 영광의 자리 끝에서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지라도 그 소리만 들어도 한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이관데
죄의 열매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실수로 정욕을 일으며 있게된 버림받은 존재로 태어나 이 더러운 입에 당신의 이름을 거론하는 실수를 범하지만 나를 물끄름히 보시고 웃으시는 하나님을 나는 원한이 없습니다
이 죄인 당신의 먼 눈발치에 있습니다.
내귀는 당신이 발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더욱 집중하고 있고
나의 눈은 안력이 쇠하여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지라도 멀리 끝에 뵈이는 당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경계를 정한 그 곳에서 당신의 아들이라 불리움을 받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영광입니다.
내가 당신을 아버지라 부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내가 다시 부르는 이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실 당신께 입을 열어 소리를 발합니다.
세상이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아도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 것이며
저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나의 죄와 정욕으로 말미암은 저들을 위해 살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이 없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세상 끝에 있는 존재들이지만, 저들에게 주의 이름을 전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알게하고 싶습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우리를 향하여 진노를 드러내실지라도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우리가 죽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노라도 우리에게 가까이 해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때리시는 마음이라도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맞을 지라도 우리는 아버지 앞에 있을 것입니다.
설령 아버지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실지라도 우리는 죽음을 무릎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죽으면 마땅히 죽을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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