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앙

죄 죽임에 관하여(골3:9)

생명있는 신앙 2015. 6. 29. 22:48

지금까지 교회는 죄에 대하여 명확한 정의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죄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죄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고 허공을 찌르는 검투사

처럼 죄와 투쟁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명한 모든 신학의 본이 되신 스승인 어거스틴은 죄를 "선의 결핍, 혹은 빗나간 화살이라고 정의했고, 칼빈 선생도 죄의 정체를 하나님께 대한 아담이 하나님께 대하여 자기 의식으로 불순종한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아담이 받은 것 이상을 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주신 위대하고 풍성한 은혜를 파렴치하게 경멸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처음 사람이 사탄에게 귀를 열어주었기  때문에 죽음이 들어  것과 같이 9:21), 오늘날 우리가 같은 창으로 복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 앞에 구원이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베르나르두스의 말을 옳다고 인정합니다.(기독교강요 2,1,4)

우리는 칼빈 선생이 인용한 베르나르두스의 말에서 죄의 본질을 발견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대로 죄는 아담의 귀를 통해서 들어온 말로부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죄는 사람에게 들어왔습니다. 이에 반하여 구원도 사도가 로마서 10:17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죄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단의 말이 귀로 들어가면  말의 행위를 하고 진리의 말씀이 들어가면 진리의 행위를 합니다. 무슨 말을 듣든지 사람은   귀에 들려온 말씀이 행위를 드러냅니다. 거짓을 듣는 사람은 거짓된 행위만 합니다. 결코 거짓을 듣고 진리의 행위를   없습니다.  진리를 들으면 진리의 행위를 합니다. 만약 진리를  귀로 듣고도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귀로 분명히 들었으나  진리를 밖으로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분명히 말한 것과 같이 성령의 사역이 아니고는 결코 예수를 주시라 시인할  없고고전 12:3) 예수를 주로 시인하지 않으면10:32, 12:8) 구원을 받을  없다고 성경이 분명히  박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까지 읽고도 죄의 본질 이해하지 못한다면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렵습니다.  

죄의 본질은 사단이 하와의 귀에 넣어준 ,  지식이었고, 이 지식은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말을 받지 않았다면 결코  지식의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반대로 어떤 방법이 될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정욕에서 솟구쳐 죄를 범하게  것이라고 까지 나아가 말하려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완전하게 지으셨고 사람 스스로는 결코 죄를 범할  없는 사람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람은 탁월하고 완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의해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 독립적인 인격으로  때는 죄를 짓거나 악한 행동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단의 입에서 나온   지식이 하와의  귀에 분명하게 들렸고, 하와는  말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사단의 지식이 작용하여 지식의 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죄는 사단의 입에서 사람의  귀로 들어간 지식자체인 것입니다.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하고 사람을 사로잡아 자기의 종이 되게 했습니다. 사람 안에 침투한 사단의 말은 지식  자체이고, 구원을 주는 복음도 하나님의 지식  자체입니다. 사람을 선하게 살게하는 것도 선한 지식이고 악하게 살게하는 것도 악한 지식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지식을 결코 행동으로 드러내는 일은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만 듣게 되면 진리의 사람이 되고 사단의 말만 듣게 되면 사단의 사람이 됩니다. 결국 사람은 무엇을 듣든지  들은대로 행하는 존재로서 지적인 존재이고  지식이 바로 영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발견한 것은 아주 터무니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식과 죄와의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이것에서 우리는 죄죽임이라는 문제를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과연 불순종을 죄라고 단언하고 사단의 말을 듣고 죄를 범하고 구원의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른다고 베르나르두스의 말을 인용한 칼빈 선생의  죽임에 관한 의도가 무엇인지 살펴 보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도움이  것입니다. 

 

우리는 유명한 청교도 설교자  오웬이나, 이를 배우고 따르는 신학자들이나 자칭 청교도 신학의 후예들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죽임에 관한 논고들을 발표한 것을 많이 접할  있습니다.  

그들의 글을 읽게 되면 매우 혼란스러운 점들을 발견할  있습니다. 

첫째로  글들에는 죄의 본질이 충분히 정의되지 않고, 무엇이 죄인지를 말하지 않습니다이것은 매우 위험한 보편적 개념의  다루고 있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로는 칼빈 선생도 옳다고 말한 베르나르두스의 사탄에게 열어준  주장을 받아들이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 사람이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았는데, 사단에게 귀를 열고  말을 받아들였을  그의 지성에서 받아들인  지식이 작용하여  사람으로  지식의 행동을 하게 했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지식의 작용에 의해  지식대로 행동하는 사람과, 진리의 지식의 작용에 의해  지식대로 행동하는 사람에 대한 명확한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기 안에 있는  마음에 관하여 언급하고 이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거짓 지식과 복음의 진리 지식이 서로 갈등하는 내적인 마음을 토로한 것입니다. 

 

사람은 지식으로 활동하고 자기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사단이  지식은 두말할 것도 없이 거짓 지식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사단의 지식으로 진리를 다루려고 하지만 진리는 왜곡시켜 거짓 것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죄를 죽이는 일이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의 지식의 사람이 아니고는 결코 죄를 보거나 다룰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부분 오류들은 어렸을 때 부터 알아온 지식들로 진리를 이해하려고 하지만 진리를 이해하려는 지식이 거짓되었기  때문에 가인이 하나님을 만나고도 자기의 생각대로 왜곡되게  것과 같이 진리를 왜곡되게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진리로 보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지만, 진리가 거짓을 보고는 결코 기쁨을 얻을  없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온 진리의 지식이 우리 안에서 우리  사람을 보면  사람이  거짓지식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우리자신을 한탄하며  거짓된 지식의 사람을 회개하고  지식이 우리에게서 작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더욱 진리를 사랑하게 됩니다. 반면 우리안에 진리의 지식이 부족하여 아직 진리의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거짓된 지식으로 자기 안에 들어오는 진리를 몰아내거나 왜곡되게 해석해서 진리가 결코 발을 붙이지 못하게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 이때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거짓과 진리와의 투쟁으로 인하여 갈등이 일어나고 결국은 사람의 본성이 거짓이기  때문에 거짓의 승리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기스스로 결코 죄를 대항하거나 이길  없습니다. 대항하는 거짓인 죄 자신이 자기를 대항하는 싸움은 무의미 합니다.  

진리의 지식이 넘쳐나도록 채워지지 않고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거짓의 활동을 잠재울  없습니다. 오직 한분 성령의 도우심만 충분히 가능합니다

물론 이것을 성화의 과정 안에서 일어나는  죽임이라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죄의 본질은 내안에 있는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거짓된 지식,  복음으로 말미암지 않은 나를 살게 하는 모든 지식이 죄인 것입니다.  지식을 나에게서 몰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직 복음의 지식이 장성하여 분량에 이르기 전에는 언제 죄의 지식으로  죄를 몰아내려 하기 때문에 죄가 죄를 결코 몰아낼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직 복음 지식이 사람안에 장성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지와 결함을 가진 지식을  동일한 무지와 결함을 가진 지식으로 몰아내려고 할 것이  때문에 이는 이율 배반적인 상황으로 죄가 죄를 몰아내는  같은 속임을 행할 것이고 스스로 자기가 자기의 죄를 몰아내지 못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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