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편
하나님의 아들
이 시편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이웃 나라들의 공격에 대한 상황에서 유일신론의 관점으로부터 고백되어진 노래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시로 보는데 어떤 이는 삼상 7장 8~16절을 기초로 하여 다윗의 후손왕들이 등극할 때 노래하는 등극시라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시이고 노래이기 때문에 적절한 해석도 여럿이 있을 것이지만 본문의 의미를 살펴 볼 때 등극시로 보는 것은 약간 비약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를 어떤 입장에서 기록하였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 이 노래를 주로 불렀는지에 관한 역사적 근거를 확인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부분 설교자들은 본문의 의미에서 근거들을 찾으려 하니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시편의 구조는 4단락으로 되어있습니다.
1단락은 1절~3절,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대적하는 세상의 왕들,
2단락은 4절~6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을 세우심,
3단락은 7절~9절, 이스라엘 왕에 대한 하나님의 엄위,
4단락은 10절~12절, 세상 군왕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모든 단락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적하는 세상의 왕들아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외치시는 노래인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시편기자가 말하려 하는 것은 세상의 군왕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적하여 일어서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노래한 것입니다.
이 시의 기자 다윗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일어선 이웃나라의 왕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 시는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를 나타내는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꼭 그렇게 볼 수 없다 하더라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하는 이방나라의 공격에 대한 시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시편기자의 관점에서 볼 때 공격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어떤 이유에서 인지 매우 멸시를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존심을 잃었고 이방과 같이 왕이 없다는 것으로 힘 마져 잃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원했고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기름 부어 세우셨습니다.
시편기자는 이것을 보고 영광의 노래를 읊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 5:39에서 기록한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증언한 말씀을 본 것같이 구약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람이 해석한 내용으로 그리스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면, 시편기자가 성령의 감동에 의해 조명된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세상의 군왕과 관원들의 표현이 관심이 됩니다.
시편기자는 이들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부터 어떤 권위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호소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지배권이 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스라엘과 여호와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은 곧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묘사함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자기들보다 우월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왜 세상의 왕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적대시 합니까?
이방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에베소서 2장에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은 이방인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입니다.
이 장에 나타난 이방인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원수지간이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하는 도가 지나쳐 언제나 평화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관계를 말끔히 제거하시는 사건이 나타났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였습니다.
물론 로마서 9장~11장에 나타난 이방인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잘 나타나지만 에베소교회에 보낸 서신에는 아주 단정적인 언어를 사용함으로 이방인의 정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글을 읽을 때 크게 실망하고 실망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대상(엡2:3)이었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 대한 바울 사도의 표현은 살아 있는 자체가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이방인,
살아서 아무 유익이 없는 정말 버러지와 같은 천한 존재였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까지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라고 말하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요한사도의 말을 근거로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에 대하여 표현하신 것은 더 실망적입니다.
요한복음 8:44, 거짓의 자녀,
마태복음 15:27 개들의 자녀,
등의 표현은 구원의 가치가 없는 존재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당하는가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바 대로 우리의 정체성과 관계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이방인이며, 하나님과 관계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말대로 전혀 소망이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의 자녀로 만드셨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질을 하나님의 창조 실패로 돌리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당신이 멸시를 당하시는 실수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노의 자녀가 된 참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만물을 지으실 때 이 세상에 존재할 모든 사람을 한 사람 안에 완전한 계획을 두시고 최초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최초 사람이 타락하게 되었고, 이들이 죄로 말미암아 정욕을 일으켜 하나님의 계획에 속하지 않은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죄의 열매이고 정욕의 자식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과 죄의 열매인 정욕의 아들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하나님의 선이 구별합니다.
그 조건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심겨지는 영혼과 심겨지지 않은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 그 영혼에 하나님의 지식이 심겨집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자기 안에 지식이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여 하나님을 자기지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왜곡되게 이해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종의 아들과 약속의 아들로 명확하게 구별하였고, 로마서 11장에서는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구별하였습니다.
이 사람의 대표자는 가인과 아벨로, 가인을 이방인의 조상이라고 하고 아벨을 신앙인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에 관한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하도 여러번 들어서 이제는 귀에 딱지가 붙을 지경일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한발 더 깊게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선에 관한 말씀을 드리기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정욕의 열매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시편의 의미를 거울을 보듯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앞에서 아담 안에 계획된 사람과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태어난 잉여의 자식에 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잉여의 자식이란 낳아도 되고, 낳지 않아도 되는 자식을 말합니다.
이 자식에 관하여는 아브라함에게 아주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이스마엘입니다.
사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려는 사래의 열심히 빚어낸 자식입니다.
이 자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래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켜 보려는 열심이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낳게 한 아들입니다.
이아들의 특징은 어떤 경우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른다는 것은 하나님을 잘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열매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혹시 알았다 하더라도 왜곡되게 경배하거나 잘못 이해합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에 제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지 않고 제 마음대로 드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죄의 열매들의 차이점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지적 차이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구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사람을 낳았는데,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경외할 줄도 모르고 영화롭게 할 줄도 몰라서 천국을 무질서하게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온통 시끄러운 곳이 되어 관리할 수 없는 혼돈된 세상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천국을 가면 천국을 뒤엎어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자기들이 천국가서 헤게모니 싸움을 일으켜 천국의 주인이 되려고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매우 난처한 입장이 되십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을 관리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겠습니까?
잘 살펴보세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자기들끼리 모아놓으면 천국이나 지옥이든지 온통 소란스럽게 할 것은 분명하니까, 부득불 이들을 따로 모아 그들의 영혼이 지적활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영혼에 가진 모든 왜곡되고 거짓된 지식이 활성 되지 못하게 하려면, 가장 쉽게 이해하면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러면 고통을 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어떤 분이 왜 고통을 주느냐? 차라리 없애 버리지!
제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잘 모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완전하고 독립적이며, 영원성을 가지고 지적으로 자기인식을 가진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한번 태어난 사람의 영혼은 절대 없애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혼 안에 거짓되고 왜곡된 지식만 가득 들어 있는 지옥에 들어온 그들에게 고통을 주어 그 지식들이 활성화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지옥의 고통입니다.
사람이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면 얼마나 고통을 주어야 하는가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런 고통을 영원토록 있는 곳이 지옥인 것입니다.
영혼이 느끼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생각을 못하고 얼마동안이 아닌 영원토록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써 지옥이 조용해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과 몇일 만에 저와 함께 깊은 영혼의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천국과 지옥의 여행을 하면서 천국이 어떤 곳이고 지옥이 어떤 곳인지 제가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부터 새벽기도를 통해 말씀을 드리는 내용이 점차 천국과 지옥의 본토를 향하여 들어가고 있고, 이것은 이미 지난주에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영혼의 고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로 말미암아 정욕을 일으켜 이방인을 낳았으니, 이방인의 영혼은 자기가 영원한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혼과 육체의 소통의 부재로 몸부림치는 영혼의 고통에 대한 두려운 공포를 육체가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영혼은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처럼 생기면 무조건 미워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표를 드러내면 잔인한 분노를 드러내서 살려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대적하고 분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영혼에 예수를 아는 지식을 가진즉,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되고 세상은 우리를 원수로 삼아 죽이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담대하다고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 집사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어갔습니다.
그가 죽어가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옵소서(사도행전 7장),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시편기자의 말대로라면 왕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군왕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입을 맞추고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리하면 너희와 화복할 것이다.(엡2:14~16)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세상에 나아갈 때 항상 주의 하셔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여러분과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저들이 여러분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팔복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을 주고 거절하지 말라.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러대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하라.
이것은 너희의 죄가 저들을 낳았고, 저들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고통의 지옥으로 가는데, 지옥으로 가는 저들에게 미안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가 저들을 섬길 때는 죽기까지 섬기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여러분들이 친히 낳은 아들들을 섬기되 죽기가지 섬겨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의 지식이 그들의 영혼에 새겨지게 해야 합니다.
더욱 여러분과 한 몸인 배우자들에게 더욱 그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배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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