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3:16-21)
본문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건의 장소와 역사.
.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한 초기의 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직 제자로 부름을 받지 못한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와서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에 관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면 예수께서는 여러 가지의 일들을 행하신 것으로 볼수 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기록하지 못한 여러 가지의 사건들보다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도 요한의 언급에 따른다면 제자들이 기록한 일부분의 사건으로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2. 로마 총독 빌라도는 26년에 부임하여 10년간 예루살렘을 통치하였다. 빌라도가 부임하자마자 유대로하여금 로마의 통치권 안에 완전히 귀속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부작용들이 나타났고 그의 뜻대로 성취하지 못했다.
사건현장탐방
성경은 니고데모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그의 인격과 그리고 성격등이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성격이나 지적인 수준등을 알 수 없으나 그가 이스라엘의 관원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바리새인에 속하였던 사람이다.
바리새인의 철학을 연구하면 그의 사상을 짐작할 수 있다. 유대인으로서 바리새파에 입교한다는 것은 신학적 영향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의미를 생각해보자.
여기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이세상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곳에는 에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사람들이란 하나도 없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말씀하시고 계신다.
내용 분해
(1) 믿는자 16-17
(2) 믿지 않는자.18-21
본문 요약
하나님께서 독생자인 아들을 인간의 세상에 보내신 것은 타락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원을 얻을 자는 누구인가. 오직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는자들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내셨다. 이 사실을 믿으면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사람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사도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때 자기 개념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즉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성령이 임했을때부터 비로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성령이 임한후 하나님의 아들을 알게된 그들에게 이 말씀은 의미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신학적 연구
1. 공통본문연구
요한1서 5:1
요일2:29
요일 3:9
요일5:18
2. 역사적 배경연구
1) 본문의 시기 / 본문의 시기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초기로 추측한다. 그러나 본문 앞에 기록된 2:장에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저자는 순서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같다. 앞장의 기록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말기였다면, 본문의 기록은 니고데모를 제자로 부르게 된 동기를 미루어 초기의 사역인 것 같다. 그러나 니고데모의 말에 비추어 본다면 이미 예수께서 상당히 유명해져 있었고 여러 가지의 이적과 기적을 행하신 때로 나타난다. 니고데모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표적”(3:2)을 언급하는 것으로 미루어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추측할 수 있다.
2) 저자의 시기 / 저자는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서 밧모섬으로 추방당했다가 풀려난 이후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글을 보낸 것이다.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가 할 수 없는 복음 전하는 일을 글로 대신하려는 의도인지는 모른다. 이런 의도가 잇었다면 복음서가 한편으로 치우쳐 유대인의 비 신앙적 행동에 대한 비판적 주장을 강하게 띄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당시의 독자들이 어떤 상황하에 처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버림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보아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의 어떤 영향에 많은 곤혹을 치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교회가 유대인들의 영향에 시끄러워졌을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때는 유대인들의 핍박이 다소 완화된 때로 볼 수 있다.
3. 저자의 사상적 배경연구
저자는 하나님 나라를 확고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저자는 다른 사도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스도와 하나님나라를 마음속에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한 구절에서 저자의 의도를 모두 살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씀하여진 하나님나라의 의미를 저자가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저자는 유대인과의 대립적 관계에 있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유대적인 모순을 밝히려는 강력한 의도가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저자는 1장에서 그리스도의 출생신분과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언급은 단순한 지식이나 지혜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증된 지식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도중 천지 창조의 신비함을 직접 듣듯이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과 자기 민족인 유대인들의 오류를 주님의 가르침으로 통해서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독자들은 저자가 하나님의 증거를 통해서 확신한 이 증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증거를 접하는 것이다.
본문은 저자의 창작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사도 요한은 60년전에 승천하신 예수께서 자기와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니 성령께서 저자의 의식을 일깨워 이 말씀이 생각 나도록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으로 미루어 저자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의 개념을 알수 있다. 저자는 예수님과 동행하던 때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으로 알지 못했다. 아마도 그의 어머니께서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도록한 것으로 보면 예수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줄을 알았다. 그래서 로마에서 해방시키고 민족을 구하는 메시아로 안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과 전혀 다른 생각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도 3년 동안이나 함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적이 아닐수 없다. 사람들 끼리는 이해 개념이 달라서는 한 순간도 함께 있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예수님께서는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전혀 의사 소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화가 되는 것처럼 지냈던 것이다(일상 생활까지 조화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4. 본문의 의도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여러 신학자들은 본문을 성경중의 성경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가장 잘 표현된 본문이라고 말한다.
본문은 분명히 성경가운데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증거이다. 게다가 본문이 저자의 느낌이나 판단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라는데 더욱 중요한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세상으로 보내셨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하늘에서 온 사람뿐이다.
[영생을 얻게하려하심이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려하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신일을 믿는 자에게만 영생이 주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가? 이것은 여러 가지의 의미가 내포 될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지 않고 계속해서 범죄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두 번째 구원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어진다. 심령이 가난한 자란 자신의 상태를 알고 어찌 할 수 없어서 구원을 청하는자를 말한다.
세 번째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의 사역은 일방적이다.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과 일바적으로 구원하신 것이다.
네 번째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사람에게 미리 알려지고 예견되어졌다.
다섯 번째 사람에게는 영생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하신 뜻에 따른(창조의 계획과 관계됨) 원하시는 요구조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전 15장20-28, 35-58 참조).
[하나님이 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오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때는 아담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내신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므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미 용서를 받은 것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인간은 무지하다. 무지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에 대해서 믿기를 원하신다. 인간이 받아들일 것은 자신을 알고 자신을 위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무지한 인간은 이런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이라는 이름 석자를 원수처럼 여긴다.
[정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믿지 아니함으로 정죄를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두 번째 정죄를 받는다. 첫째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은 것이요.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말미암은 죄를 용서하시고 또 하나님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바울은 이 사상으로 가득차 있음을 볼수 있다. (롬 5:14, 고후15:45 참조)
[자기 행위가 악하기악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행위가 악해서 빛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사람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아시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훤히 알고 계셨다.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고 그를 알고 계셨다.
그 사람속에는 악한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중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보면 청중들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다. 이런 점들을 일깨워주면 누구든지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진리를 쫒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니고데모는 이 말씀을 듣고 있는동안 기분이썩 좋았을 것이다. 자신이 진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진리를 찾으려고 고생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니고데모가 진리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편견에 치우진 극히 우매한 사람이다. 그는 어두움속에 빠져 있는 불쌍한 사람이다.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함이라]
무엇이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일까? 사람이 진리를 향한 열심일까? 아니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말씀하신 것일까?
우리는 말씀을 아무렇게나, 성경의 의미와는 전혀 관계없이 적용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을 듣는다. 그것이 오류이면서도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처럼 떠들어댄다.
이얼령, 비얼령,
5. 성령의 의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한가지 일을 하셨다. 그 일을 믿기만 하면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된다.
2.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하심
성경이 말하는데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우너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믿기만하면 된다. 그러나 믿는 것도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나 믿을 수 없다.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하신일을 제대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다. 자기의 의지와 판단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지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믿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이 있었다. 우리는 이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
2. 하나님의 주권
구원에 이르는 자도 하나님꼐서 선택하신다. 모두가 구원에 이르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구원의 필요성을 감지하지 않는다. 쾌락에 빠져있기를 더 원한다. 우상 숭배하기를 더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도 아담으로 말미암은 죄를 용서하셨다. 그들은 이미 용서 받은 자들이다. 그들이 지금 그리스도께 와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엄청난 일이 그들에게 일어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벌써 아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용서 하셨으나 어두움에 빠져 방황하는 미련한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보혜사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구원을 얻게하신 것이다.
3. 적용
'요한복음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마리아여인 (요 4:1-19) (0) | 2007.03.13 |
---|---|
인간의 정 (요 3:22-30) (0) | 2007.03.13 |
거듭남 (요 3:1-15) (0) | 2007.03.13 |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심 (요 2:23-25) (0) | 2007.03.13 |
성전을 정결케하시다.(요 2:12-22) (0) | 2007.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