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강해1

십계명이란?

생명있는 신앙 2009. 4. 2. 09:16

1. 계명에 관한 서문 (출애굽기 20:1-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1.1 본문과 성경 신학적 연구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으려고 요구되는 내용을 개괄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에 직면하지 않고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 위대하신 그분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한 이유와 그리고 위대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배우기로 한다. 나는 이 연구를 개혁주의 신학자의 성경신학의 아버지라 하는 G. Vos박사가 말하는 계시사적 방법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1) 계시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데”는 주절이고 그 다음은 종속절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모든 말씀”은 다음 구절 내용부터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규율로 주신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면 계시의 중심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이지만, 본문 중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계시가 적용되지 않았다. 본문이 말하는 계시는 모세에게 직접 1차로 적용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간접으로 2차적용되고 있다. 이 말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전달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계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접 적용된 것이 전혀 아니다. 본문의 배경을 살펴 보면 계시가 있는 곳에 백성들은 서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재차 선포할 때에 하나님의 계시는 그들에게 나타났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고, 그들은 음성으로 하나님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는 이스라엘에게 직접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하게 관심을 가지고 조심해야 할 한가지가 있는데, 이스라엘에게는 계시가 있기 이전에 구속이 이미 적용되고 있었다.

 

2) 계시의 특별 적용(선지자에게 적용됨)

이 계시는 신약 시대의 새 언약의 계시와는 전혀 다르다. 이 계시는 신약 시대의 언약과 같이 아주 실제적이고 육적이며 사실적이면서, 구원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고 구원을 약속 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언약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에게 성령이 임하시지 않았고, 또 그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본 것이 아니다. 신약시대 교회에 입교한 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은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시고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주시는 점에 있어서만 계시의 적용이 가능한 반면, 구약 시대에는 그들의 육체의 눈으로나 혹은 귀로 적용 받는다는 점에서 신약시대와 구약 시대이 계시의 적용이 다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실제로 나타나셨으며, 영광의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알리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사람의 육신의 눈에 나타나 보이셨다. 이런 과정가운데 십계명은 완전히 육적이며, 인간의 외적인 표징에서 분명히 확인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주어진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믿음을 위해서 계시가 진행되었다.( 20:20; 4:10; 6:2; 12:12). 이 계시는 이스라엘에게 목적과 의무를 수반한다. 목적에는 믿음을 전제하지 않았다. 계시의 결과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목격하고 알았고, 음성을 들었던 그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사실을 믿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것을 버릴 수도 있다. 분명히 그들에게 보이셨고 확인케 하셨기 때문에 계시의 결과를 소홀히 여기거나 버리거나 멸시하여 무시한대 대한 책임은 철저히 자신들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3) 계시의 성문화 과정 (계시에 대한 확신)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을 지키겠다고 응답하였고(출애굽기 24:4), 모세가 이를 문서로 기록하여 언약하고 피를 뿌려서 인증하였다. 그러므로 모세의 기록은 언약을 위해서 기록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기록하였고, 그 기록의 내용이 피를 뿌려 확증함으로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분명히 언약을 맺은 것이다.

 

4) 계시의 보편 적용(신자에게 적용됨과 확신)

 

언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조건이다. 언약을 맺은 당사자는 반드시 지킬 것을 약속하되 생명이 되는 “피로” 언약을 맺었다. 이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여 언약을 맺은 것이다. 이 언약이 이들의 것만은 아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백성들이 그렇게 언약하였기 때문이다.

 

설교연구

이 말씀은 “나는 너를 창조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해도 틀린 말씀은 아니다. 그러나 창조한 하나님보다, 지금 역사하신 주인이심을 선언하신다. 이것은 구속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에게 말씀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구속을 말한다. 하나님의 구속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게 나타났으며,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났고, 홍해를 건넜으며, 위험에서 건짐을 받았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에게 나타났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나의 백성이라고 선언하시고 보호하셨다.

시내 산의 계시는 구속의 확신을 주는 것이고, 믿음을 위한 계시이지 하나님의 계시가 갑자기 그들에게 주어진 최초의 계시가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너를 창조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보다는 “나는 너의 구속자”이심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실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자연적인 방법에 의해서 구원을 받았다. 초자연적인 방법은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의 종 노릇하면서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의 간섭이 그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내가 너를 구원했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 축복하였다.

“내가 너를 인도하여 내가 원하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일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를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한 자가 바로 너희 앞에서 말씀하시는 자 여호와니라”.

는 선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인간 창조를 언급하는 말씀보다는 그들이 당시 체험하고 있는 이적과 기적의 초자연적 역사 현장 가운데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자가 자신임을 나타내는 것이 가장 신뢰할 말씀이다.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였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이 고난을 받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약속을 받았고, 그들이 약속 가운데 구속의 성취의 생생한 증인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생활 전반에 걸쳐서 역사하신 분이시다. 또 하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셔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고 주인이심을 선포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분명히 계시하심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시다. 그분은 하늘에서 말씀하셨고, 능력을 행하셨으며,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시고, 자신이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을 위해서 능력을 행하시기도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있어서 극히 초보적인 지식에 불과하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것을 전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나타내심으로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으신 것을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 모든 말씀으로”

신명기 5:1-6 에는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말하면서 십계명을 다시 교훈하기 시작한다. 이때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을 듣게 된 사람들은 출애굽기의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아들과 손자들이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이것을 다시 말하는 모세의 말은 “이 모든 말씀으로”라고 하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무엇을 들었는지 잘 분별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역사하시는 증거 그대로 남아 두려움에 휩싸여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을 미루어 짐작하기를 이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말씀이 모세의 입에 그대로 남아 있는대 이것을 다시 백성들에게 말하면서 이 모든 말씀으로라고 하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관계에서 언약에 관한 내용들을 전달해주고 있다. 모세는 엄정한 중립을 지키며 백성들의 의도를 묻고 백성들이 동의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언약을 전달하려고 한다. 이 계명은 어떤이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세계 속에 한 국가의 터전을 세우는 근거로서의 법률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형성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스라엘은 이 계명의 말씀을 지켜 행하므로 자신이 하나님과 진실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과 약속이며 하나님의 의지를 인간이 수납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지켜 행할 율법이다. 이 율법의 내용을 가리켜 이 모든 말씀으로라고 말하는 모세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해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20:2),“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 삼으신(신명기 4:20)”능력자의 신분을 말씀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구속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관계를 맺으시기를 원하시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실 수 있고 요구하실 수 있다.

 

율법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의 일을 한다. 먼저는, 율법은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준다. 두번 째, 율법은 우리 인간에게 참된 본성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대하는 바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에 알 맞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셋째, 율법은 우리에게 구원의 방법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이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삶을 영위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시작하는 셈이다.

흔히들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해서 애굽을 ‘세상’이라 하고, 교회를 하나님의 왕국이라고 비유한다. 지금까지 연약한 신앙인들을 어린 아이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비유와 모형으로 우리를 인도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해석에서 우리는 한걸음 발전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의 삶이 과연 어떠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교회에서 생활을 하는 것과 세상의 삶이 서로 엄격히 구별되고 제한된 사회인가?

교회라는 사회는 우주적인 구분을 갖는 사회인가?

세상과 교회가 서로 관계하면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세상 생활과 교회생활을 구별하면서 살수 있는가?

그러나 성경은 ??모든 세계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다시 말한다면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한 기업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업 중에 또한 기업을 구분하사 이 기업들로 특별한 역사를 이루게 하셨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총은, 버림밭은데서 취하심을 입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담의 범죄로 인해 버림 받음으로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마땅히 영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시 취하심을 입은 것인데, 이것을 하나님의 개인적 소유로 삼으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였고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것의 종이였다. 우리 자신은 마귀의 종이고 마귀는 우리를 자기의 종으로 삼고 있었다. 마귀가 우리의 주인이였다면 마귀는 항상 우리에게 명령을 할 것이고 하나님처럼 우리에게 말을하므로 하나님과 대적하여 싸우겠지만, 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말을 하거나 계명을 주거나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마귀는 허무이기 때문이다. 허무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또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 자신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누구에게 속고 있는가? 그것은 철저하게 자신에게 속고 있다. 다시말한다면 인간은 자신에게 속아서 애굽을 세상의 큰 왕국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속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라는 보이는 왕국은 사람을 속일 수 있으며 우리는 애굽이라는 나라가 없으면 사람이 살지 못하는 줄로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나라에 더 충성하게 되고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않고 또한 재산을 아끼지 않는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를 “애굽 땅”(19:36)종 되었던 곳에서 라고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애굽땅은 지역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나라라는 개념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애굽은 우리가 보기에 실질적인 나라였다. 오직 자기의 나라중에 어떤 나라는 버림을 받은 백성이 있는 곳,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부르신 백성으로만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교회와 국가를 구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지로 이러한 구분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다.

 

2, 왜 십계명을 배우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그분만 바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자신을 제시하시고 그 자신의 권리가 다른 곳으로 양도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 계명을 불신자들이 오해하는 가장 다양한 것들 중에 하나로서 하나님이라는 신은 독선가이며 이기주의자라로 비난을 한다. 이유는 이세상에는 많은 신들이 있는데 오직 자기만을 믿으라고 하는 것은 독선이라는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할 당시 애굽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다. 그중에 큰 신은 그들에게 복을 주는 농경신으로 ??바로??였고, 그 외에 나일강을 범람케 하는 나일강의 신이 있는가 하면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신도 있다. 그리고 모세와 대적해서 싸웠던 10가지의 신도 있었고 그 외에 무수히 많은 신들이 있었다. 이 모든 신들중에 바로를 제일 큰 신으로 섬기고 있으면서 바로 외에 다른 신들도 숭배의 대상이 되고 때나 기후 혹은 재앙이라고 판단 될때에 각종신들에게 제사와 경배를 드리는 多神敎的 信仰 生活을하고 있다.

이와같이 많은 중에 큰 능력을 가진 신들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여호와 신은 자기만 섬기라고하자 하나님은 이기적이요 아주 독선적인 신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불신자들이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들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러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다신교적인 사고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우를 범하는 것을 볼때 우리가 이 십계명의 의미를 올바로 연구하여 성경이 말하는 의미를 바르게 발견해야 할 책임을 통감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수로 쓰신 이 십계명이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역활을 하고 있으며, 어덯게 하나님을 바로섬기게 하는각 알아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지런히 성경을 연구하고 또한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드러내 주는 놀라운 역사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십계명강해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계명 3계명2  (0) 2009.04.03
십계명 3계명1  (0) 2009.04.03
십계명 3계명  (0) 2009.04.03
십계명 2계명  (0) 2009.04.02
십계명 1계명  (0) 2009.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