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6.

생명있는 신앙 2010. 8. 8. 11:28

전편에서 이어서

  영혼의 치유

인간은 타락하여 영혼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치명적인 상처입니다.

육체를 비유하자면 영혼이 입은 치명적인 상처는 조직과 시스템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영혼 안에 있는 모든 질서는 철저히 삐뚤어져 있으며,

지성과 감성이 각각 제 멋대로 움직이고 판단하며,

의지는 난폭하기 이를 대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영혼을 용서함으로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고 용서 이전에 반드시 진단과 처방이 우선입니다. 

진단은 환자와 의사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입니다.

환자는 자기의 상태를 설명하고 의사는 그 상태를 살피고 조사해서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며,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치료 방법을 처방하여 환자로 하여금 완전한 상태의 몸으로 돌아가도록 시술을 하거나 약을 처방합니다.

만약 환자를 진단하는 의사가 아무런 지식을 가지지 않은 돌팔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돈에만 눈이 어두워 엉터리 진단을 하고 엉터리 처방을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사는 조건과 지식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고 사명을 가지고 환자를 올바로 진단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영혼을 치료하기 위한 가장 우선된 행동은 의사를 만나는 것입니다. 진단을 받기 위해서 만나야 하는데 의사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육체를 고치는 의사는 병원을 개원하고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여 환자로 하여금 병원으로 찾아오도록 합니다. 그러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가 누구인지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비뚤어진 지성으로 의사가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고, 감정으로 느껴 의사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의지가 감성의 판단에 따라 의사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진단을 의뢰할 수 없습니다.

영혼은 의사를 찾아서 만나는 일부터 하지 못합니다. 의사를 만나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영혼의 심각한 상태를 의식하는 사람조차 없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떠났고,

어두움에 처해 있으며,

무질서하고 혼돈스런 상태이며,

의식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치명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가장 쉬운 비유로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입니다.

최초 사람이 지음을 받았을 때 그 상태에서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치명적인 상태로 바꿔져 버린 것입니다. 사도는 이런 상태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 롬 3:23)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정신을 지니지 못한 영혼이 자신의 영혼을 치료하기 위해 영혼의 의사를 만나고 찾는 일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상처를 입은 것과 무질서한 상태가 된 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를 가르쳐 준 것이 성경입니다.

사람이 성경을 만나면 “당신의 영혼은 타락 했으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타락했으며 육적이며, 영적인 상태의 어두움에 처해 있으며 무지하며 영적 소경이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영적인 상태에 무지하며 소경으로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은 전혀 자기의 상태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지성이 자기의 영혼의 삐뚤어짐을 분간하지 못하고 감성이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으로 치료하려는 의지가 영혼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나 인간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우주적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영혼의 치명적인 상태를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어도 그들의 영혼의 상처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이셨으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치명적인 상처를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의지가 선한 하나님을 보고 기뻐하였으나 감정이 삐뚤어지고 지식이 뒤틀려 하나님을 즉시 배반하고 떠나버린 배교의 행동을 보입니다. 그 배교가 시내산에서 보았던 하나님을 왜곡되게 만들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영혼은 반드시 치료해야만 합니다.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시며 사람을 보시던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마침내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하시기 위해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무수히 나아갔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 성실함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단을 만들고 그것에 제물을 바치며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한 기적적인 일들이 사람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사람의 생각에서 나타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하셔서 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2000년 동안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 제사를 드리며 제물을 바쳤지만, 그들의 영혼은 치료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결코 자기의 영혼의 치료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사람의 상태를 “마음이 어두워서 깨닫지 못함이니라(사 44:18)” 라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신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영혼을 치료해야 한다거나 혹은 사람이 최초에 지으심에서 이탈하여 하나님을 떠나 버렸다는 것을 알기에는 부족하고 결코 자기 지혜로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오셔서 치료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장 먼저 이 세상에 선포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였습니다.

비뚤어진 영혼의 상태를 바로 잡고, 난폭한 의지를 침착하게 하고 시시 때대로 히죽히죽 웃어대거나 아니면 시끄럽게 울어대는 조절이 불가능한 감성을 온전하게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예수님도 가장 먼저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이 사람의 영혼의 상태를 죽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와서 들으라 그리하면 네 영혼이 살리라.(사55:3)”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함께 주도적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영혼을 지으셨고 그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시고, 영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계시므로 그분의 판단은 정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영혼의 의지는 선한 것을 가장 좋아 합니다.

아직 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선한 말씀이 의지에 다가온 것입니다. 의지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붙잡았습니다. 의지가 선한 말씀을 붙잡고 감정이 회개의 필요성을 나타내기도 전에 지성이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판단합니다. 타락 이후 사람의 영혼이 바른 사이클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지성이 “회개”라는 의미를 판단하면 사람의 영혼은 순식간에 지금까지 활동하던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자기의 활동을 점검하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자기의 시스템을 점검하고는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오류들을 수정하려 들 것입니다. 이때 자기의 상처를 발견하고 그 상처로 인해 자기가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도 영혼들에 대한 다른 구분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떤 영혼은 주님의 말씀에 의해 즉시 반응하여 명령을 이해하고 깨닫고 궁구하여 실천하려는 의지를 가지는 반면 어떤 영혼은 전혀 무관심하여 의지가 선을 향하여 매력을 느끼고 온 영혼으로 반응을 하려고 해도 감정이 움직여주지 않으므로 영혼이 온전한 사이클로 운영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자는 영혼이 자기의 존재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을 따라 살려고 하는 아주 선한 의지를 찾아가지만 후자는 영혼이 온전한 상태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여 서로 충돌하여 자신의 상태조차 온전하게 안정을 취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의식하지 않은 게으른 상태로 머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런 상태를 성령의 주도적인 역할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다 내게 올 것이요(요 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수 없으니(요6:4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사역을 위해 성령께서 함께 하시므로 역사하시는데 성령께서는 진리의 말씀과 반드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의 영혼이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적용하심으로 말미암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역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나 영혼이 치료를 받게 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게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3:6,7)”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나는 것,”

이것이 영혼의 치료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교리적으로 중생을 의미하는데 중생하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영혼의 인식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혼의 인식작용이라는 것은 영혼이 어두움에서 깨어나 빛의 비췸을 입고 지성은 비로서 자기 영혼의 상태를 보게 되고 자기 영혼이 비참에 처해 있으며 상태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의지는 본래 선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항상 선을 지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감정에서 느끼는 비참으로 인해 더럽고 추한 자신을 보고 자신이 결코 선한 목적을 따라 살지 않았음을 통곡하고 감정은 견딜 수 없는 아픔과 부끄러움으로 몸부림을 치고 지성으로 자기의 삶이 옳지 않았음을 판단하고 창조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고 의지에게 길을 제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충격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그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배반과 범죄의 고통을 드린 것을 후회하고 결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결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서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큰일을 지성으로 알게 되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이 대속은 주님의 고난과 고통의 아픔을 몸으로 느끼는 것 같은 아픔을 경험하고 그 십자가가 자기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한 영혼의 결과라는 사실에 더 한번 통곡을 하고 비로서 자신이 어떻게 큰 죄에서 용서를 받게 되었는지는 알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의 영혼의 치료이고 이 치료는 거듭난 영혼에게 끊임없이 반복되어 더욱 새로워지고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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