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질서
하나님께서는 생명 있는 모든 존재에게 회개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떠난 존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만 필요합니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은 이 세상에 유한한 시간동안 존재하고, 허무로 돌아가는 그 자리에 또 다른 새로운 생명체가 자리를 잡고 그도 역시 허무로 돌아가고 어떤 시기에는 새로운 종이 그 자리에 있게 되지만 그도 역시 허무로 돌아갑니다.
마치 이 세상은 불교가 말하는 윤회설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윤회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인간의 이성이 조합한 생각에 불과합니다.
피조물이 반복하여 존재하고 존재한 종이 아닌 다른 종이 반복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질서를 유지하며 정한 시간 동안 있다가 허무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협의적인 면으로만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 크고 광활한 우주의 계속되는 운행과 태양을 중심으로 하여 그의 빛을 받아 생명체가 존재하는 세계와 또는 지구속의 활동하는 에너지의 움직임의 미세한 결과들에 따라 이 땅위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수명과 존재의 상태는 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2010년 8월 9일 오늘 지구촌 한구석은 홍수로 인해 많은 재앙이 일어났고 지난해 2010년 1월12일에 일어난 아이티의 지진, 2009년도 중국의 지진, 인도지역이 지진활동과 쓰나미 멕시코만의 원유 유출등의 사고들은 사람들의 생존환경의 미세한 변화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예전에는 사람이 거처하는 환경이 변하여 환경적응에 어려운 식물들이 자기의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보게 되고 북극의 얼음이 녹아 온난화를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섭취하는 음식이 달라졌고 동식물들이 자라는 환경이 이동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환경의 변화는 지구상에 사람이 많이 거하고 산업이 발달함으로 인한 공해 배출의 결과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만,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이 창조의 질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 지구상의 생명체 개체의 수가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지으신 완전하신 창조의 계획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립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 세상에 잠시 존재하다가 허무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들의 회개는 결과적으로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에게 회개하도록 가르치지 않으셨고 사람에게만 회개하라고 하셨으며, 피조물들의 의식에 속에 하나님에 관한 두려움을 심어 놓으심으로 감각적으로 하나님을 느끼거나 인식함으로 두려워 떨게 하였으며, 존재하는 동안 선한 생명이 유지 되도록 하셨습니다. 선한 생명이 유지 되도록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으심에 합당한 목적대로 이 땅에서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판단에 의하면 피조물들이 결코 선하게만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선악을 분별하지 않고 오로지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악을 서슴치 않고 흡혈귀보다 더 잔혹한 행위를 일삼기도 합니다. 신학자들이나 일부 사람들은 본래 모든 피조물들을 선하게 지었으나 그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판단이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제외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동물이고 식물이고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존재를 위해 약육강식의 혐오스런 질서를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도 역시 마판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육체가 아무런 식물을 섭취함이 없이 스스로 장시간 동안 생명을 유지하여 존재하도록 지으신 것은 아닙니다, 식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생명체는 생명이 끊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식물을 양식으로 주었습니다. 양식은 생명체를 유지라는 요소가 됩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존재를 위해서 필연적으로 양식을 섭취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어 양식을 삼아 정산 시간 동안 생명을 유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한 피조물들의 수를 조절하시는 섭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피조물들이 존재를 위한 양식을 섭취하는 방법에서 보여진 혐오스런 장면이나 아니면 피비린내 나는 혈투에서 보여지는 소름끼치는 장면들을 볼 때 그런 행위는 악으로 규정하는 우리의 판단이 결국 선과 악을 구별하는 타락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선과 악의 기준을 자기의 기준에서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목적은 아량곳 하지 않고 자기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구별함으로 자연에 나타난 모든 질서를 혐오스럽게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의 생명 유지를 위한 활동으로서의 끔찍한 장면이나 혐오스런 행위에 대해 죄책을 묻지 않으시고 그들의 악행을 묵인하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영원히 존재하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잠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영원히 무로 돌아가는 결국은 허무한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회개하라 하시지 않으시고 심판을 내리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동물들이나 식물들, 아니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사람을 보거나 느끼고 인식하게 될 때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두려워하고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육적인 존재 이상의 영혼에 거처하고 있으며 영혼의 빛이 육체에 비침으로 육체에 찬란하게 나타나고 피조 세계에 편만하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배가 되어 모든 자연과 피조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지만 사람이 머무는 곳에는 그 빛이 더하여 하나님 영광의 찬란한 빛을 비추어 무한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피조세계에 비취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 누구도 그것을 목격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 볼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심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이 사람으로 완성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 영광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자신의 영광을 피조세계에 흘러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세계가 결국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찬란한 영광을 비취는 빛의 세계가 되어 무한한 즐거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창조의 완성입니다. 모든 피조세계는 이런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이끌려 우주와 세계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무한한 즐거움이 무참히 깨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물으시고 사람을 재외한 모든 피조물들을 심판하시지 않는 데는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혼을 부여하신 것으로 구분하여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혼을 부여 하셨으나 사람을 재외한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영혼을 부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영혼을 부여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 넣으심으로 모든 존재의 으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이렇게 긴 시간을 할애하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깨어진 우리의 영혼을 살피고 무질서하지 않은 상태로 회복 되어야 하는 영혼 치료의 필요성과, 시내산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태,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서 배교적인 신앙으로 세속화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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