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13)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3, 마음 :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렘17:9)”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 3:10~16,18, 시36:1)”
성경은 마음을 사람의 전체로 표현하고 마음이 어떠하면 사람 그 자체가 어떠하다는 것을 나태냅니다. 곧 사람을 대표하는 것은 마음이며 마음이 부패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사람의 상태와 성격 그리고 사람의 질을 나타내는 전인을 대표하는 기관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심각할 정도로 충격적인 표현으로 심판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악을 내 뿜는 기관이며 마음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악독한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부패의 공장이며 독가스를 내 뿜는 썩어가는 하수구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마음은 영혼의 의지와 육체의 의지가 결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 결합은 두 인격의 결합에서 육체와 영혼이 가진 각각의 지, 정, 의가 결합한 것입니다.
육체의 지와 영혼의 지의 결합은 영혼의 지성에,
육체의 정과 영혼의 정은 육체의 감성에,
육체의 의와 영혼의 의는 마음을 형성하고 마음은 의지를 담는 그릇이 됩니다.
신비한 것은 이 둘이 합하지 않으면 생령 곧 사람이 되지 않으며 이 둘이 합하여 있으면 온전한 사람으로 참 사람이 되는데 사람 안에서의 의지가 일어나거나 갖가지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질서롭게 운영되었을 때 가장 아름답고 탁월한 모습을 보이고 현재와 같이 영혼이 죽은 상태에서 육체의 의지로만 내 뿜는 마음이 추하고 더러움 마음인 정욕의 덩어리들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 이후 사람의 영혼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므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해서 또한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소경인 상태가 된 것을 영혼이 죽어 있는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영혼은 불멸의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멸절되어 없어진 것이 아니므로 사람으로 태어나지만 타락 이후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을 “육체가 되었다(창 6:3)”라고 하나님이 말씀 하셨고, 주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오(요3:6)” 라고 한 것입니다. 영혼은 죽은 상태 곧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사람의 구성을 이루기 위해 육체와 결합되어 태어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 의미 이상의 존재의 운동 경향을 영혼이라고 말합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그 유명한 ‘영혼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영혼을 현실태라고 정의하면서 현실태라는 의미는 그가 예를 들기는 ‘눈을 생물로 보고 시력을 영혼이라고 한 의견에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영혼에 관하여, περι ψγχηζ 유원기,궁리,2005,2,1).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물의 의미를 넘어 심지어 공간의 운동력까지도 영혼의 작용으로 보는데 이런 주장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을 향하여 직접 말씀하시기를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창 8:21”라고 하셨습니다. 이 의미는 사람이 육체가 된 이후 사람의 행동을 말씀하신 것이 분명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생물 의미 이상의 영혼까지 포함하여 육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혼의 기능을 상실하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죽어있는 상태라 할지라도 일단 육체와 결합하므로 사람으로서 생명체가 되고, 어머니 태에서 육으로 태어나지만 영혼이 기능을 못하는 상태있고 이렇게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형상은 깨어진 상태이며, 하나님에 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무지(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한 상태로서 영혼의 지성은 아무런 지식도 남아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에 관해서, 세상에 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텅빈 지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눈을 열고 세상에 나왔을때 눈에 보이는 사물들과 배치된 사물들간의 공간, 존재하는 사물들을 시간의 배열에 대하여 조금도 인식할 수 있는 이해가 없습니다. 아무런 의식없이 바라다 보기만 할 뿐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조차도 모르는 그야 말로 생물에 불과한 움직이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을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식입니다. 지식은 객관적인 모든 객체에 대한 감각된 정보가 표상화되어 사람의 지성에 반영되면 그것들을 조명해주므로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생성하게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직접 지식을 생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지식은 사람안에 선재해 있고, 그 지식이 사람이 눈을 열고 보고 느끼고 만지며 감각한 모든 객체에 대한 표상들을 조명해줄 때 그것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선재하는 지식이 조명해주므로 비로서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이 없으면 사람은 그저 생물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우연하게 생후를 무인도에서 성장하고 자랐습니다.
그 사람은 대륙의 문명이나 혹은 사회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어느정도 성장하여 장성한 사람이든지 아니면 소년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있는 섬 옆을 지나는 무수히 많은 배들이 있었다고 가정하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섬을 지나는 배들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구원을 요청했을 까요?
만약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조그마한 인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공포감, 두려움, 불안, 사물의 비교 의식 정도 만큼은 마음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마음이 곧 육체의 눈으로 들어오는 의식적으로 반영된 정보에 의해 지성은 지식으로 인하여 판단이 일어나고 마음에 반영하므로 마음은 의지이므로 지성이 의지를 일으키도록 마음에 판단된 정보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성에 아무것도 없는 텅비어 있는 상태로 태어난 사람은 지성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으므로 아무런 의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타락한 사람의 마음에서는 심각할 정도로 세상을 더럽히는 악독한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태어날 때에는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던 마음이 어떻게 악을 쏟아내놓고 온통 세상을 더럽히는 악을 생산하는 공장이 되는가요?
사람들은 흔히들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세상은 더럽고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더러움을 일컬어 세속주의라고 하고 경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속한 것을 세속주의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더럽고 추악하며 선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없으며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주님께서는 선택한 제자들에게 당부하기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하셔서 제자들을 세상에 대하여 맞서 세우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맞서 살게 될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요 17:11)”
주님은 교회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였는데 21세기에 이른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는 세상에 속하여 세상과 함께 서로의 어깨를 걸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자신이 세상의 더러운 물을 뒤집어 쓰고 세상과 함께 축제를 벌이고 있는 상태를 진단하지 못하는 중대한 질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뒤집어쓴 세속주의라는 추하고 더러운 것이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교회를 집어삼키고 한통속이 되게하는 것입니까?
세속주의와 사람의 마음은 어떤 관계가 있어서 마음에서 세속주의를 말하는 것입니까? 하고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을까 해서 부득이 설명을 추가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마귀와 사단인 세속주의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타락 이후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최초에 지은 참 사람이 아니라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납니다. 영혼은 정신을 잃은 상태이며 지성은 비어있습니다.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아담을 처음 창조하였을 때 하나님의 형상이 빛을 발산하고 있어서 아담의 육체에는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꺼졌고 빛을 잃었으며 육체는 어두운 상태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은 불량품에 해당합니다. 이 제품을 판매할 수 없고 시장에 내 놓을 수 없습니다. 다시 재 가공 하거나 아니면 반드시 잘못된 부품을 띁어내고 망가지지 않은 부속품을 갈아끼워 재 가공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릴 수 밖에없습니다. 이 처럼 사람은 심각한 불량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 불량 상태를 진단해 보니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인해 생명이 끊어진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6천년 동안 만들어져왔습니다. 이 불량품들이 쏟아내는 상상할 수 없는 악취나는 패기물이 있습니다. 각종 오물과 먹고 버린 썩은 음식물,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각종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만들어내고 어지럽힌 자연 파괴물, 온통 세상을 똥물로 뒤 덮게한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하수물들, 정말 입에 담기조차 힘든 온갖 더러운 폐수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회를 탄생 시키고 그 사회에 줄을 연결하여 지속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사람이 이 사회와 연결되어 에너지를 조금씩 공급하고 있는데 그 에너지가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고 사회는 이 에너지를 공급 받음으로 더욱 성장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상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지식은 사회의 에너지가 되며 사회는 이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더욱 성장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람의 마음에서 무엇이 나오며 그 것이 사회에 힘이 되도록 에너지가 되게하는 것입니까?
사람이 타락하여 육체가 되었습니다.
육체라함은 생물의 범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가운데 이 내용은 아마도 자주 반복되어 질 것입니다. 육체의 범위는 사람의 구성으로서 육체는 지,정,의, 인격을 내재한체 만들어졌습니다. 이 인격체와 영혼의 인격체의 결합이 사람의 각 구성 지성과 의지, 감성을 형성합니다. 지성은 육체의 지성과 영혼의 지성이 혼합하여 영혼의 주된 지성을 담당하는데 영혼의 지성 부분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결합된 육체의 지성부분이 영혼의 지성부분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본래 영혼의 지성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고 그 형상은 빛을 발하여 마음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반영된 지식에 판단을 주어 사람으로서 바르게 판단하여 창조의 목적에 따라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빛을 잃고 어두워져 있으므로 영혼의 지성은 어두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지성에 지식이 반영되면 그것을 판단할 지식이 없는 무지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판단할 근거를 가지지 못하여 혼란스럽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에 판단을 반영하지 못함으로 의지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 분내는 마음, 각종 의미의 마음이 지성의 판단에 의해서 마음에 반영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사람의 영혼은 육체의 감각에 의해 얻은 지식들을 지성에 둡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하는 어두운 지식입니다. 이 지식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감각을 통하여 느끼며, 책을 읽음으로 지성에 지식을 새겨 두게 되는데 이것이 마음을 통하여 반영된 지식을 판단하여 마음에 다시 반영시켜 의지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본래 사람의 영혼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창조 지식과 천상 생활을 동경하는 지식들이 새겨져 있어서 육체의 감각으로부터 마음에 들어오는 지식을 하나님과 관계하여 판단하여 마음에 반영함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뜻대로 판단하여 참된 의지를 마음에서 일으켜 세상에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그것과는 반대로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어 죽어있는 영혼에서 지성의 판단으로 반영된 마음에서 일어난 지식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곧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비추고 아름답게하는 것은 교회에 진리가 충만하게 넘치고 강단으로부터 생수가 넘쳐 흘러 모든 성도들을 적시고 성도들의 마음에 성령이 거하시고 영혼의 지성에서는 하나님의 진리가 새겨져 있으므로 마음으로부터 반영된 지식을 진리로 판단한 후 마음에 반영함으로 참 지식의 의지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 마음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한 없는 기쁨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고 이 광채가 교회에 가득하여 교회를 보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즐거움이 되시는 것입니다. 수많은 교회의 성도들이 바로 이것을 보았고 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생명을 아낌없이 내주었으며 주님의 영광이 이 땅에 아름답게 드러나도록 일평생을 헌신하는 기도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선지자, 사도, 주의 제자들, 종교개혁자들, 교회의 교사, 그리고 주를 아는 성도들이 바로 이것이 이 땅 위에 아름답게 펼쳐지도록 그토록 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죽어 육체로 사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은 육체로 모든 사물을 공간과 시간의 순서로 배열한 지식을 마음으로부터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자 지성에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의 기능이 상실됨으로 인하여 육체로부터 얻었던 지식에 의해 판단을 하고 그것을 마음에 다시 반영 시키고 동시에 감성에 반영함으로 육체의 욕구를 얻기 위해 의지를 일으켜 세상에 드러나게 합니다. 크든지 작든지 모든 의지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개개인의 생활에 나타나고 그 생활은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이렇게 한 사람의 의지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모든 사람들의 사상으로 연합해 전체 사회의 사상이 형성됩니다. 이 사상은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여 사람을 지배하고 이 사상에 의해 사람은 스스로 억압을 받고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사상에 자기의 마음으로부터 나와 세상에 세력을 이룬 사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모든 사상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이 세력에 의해 세속화가 형성되며 암닭이 병아리를 날개아래 품음과 같이 세속화의 품속으로 사람을 넣어 세력을 형성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와 세상에 있고 세상은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공급받고 사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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