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사람과 말씀
최초 흙으로 빚어지고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혼을 불어 넣으셔서 살게하셨다. 이렇게 지음받은 사람은 아직 그의 영혼에 어떤 정보도 새겨지지 않았다.
숨은 쉬고 육체의 기능은 하고 있으나 사람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채 이다.
사람은 눈을 뜨고 사물과 자기가 서 있는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고 인식하거나 의식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을 가지지 않은 모든 감각적 존재들은 생물학적 이며 감각적 존재로서 자기의 환경을 의식하는 감각이 있다. 영혼에 정보가 없는 최초 사람은 감각적 존재들과 다름이 없다.
영혼안에 어떤 정보도 새겨지지 않는다면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고,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감각적 존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보란?
일종의 Data, 곧 의식화에 필요한 지적 정보를 의미한다. computer 의 활동운영은 정보들의 유기적 반응으로 한다. 0,과 1 이라는 기본정보가 (0,1), (1,0), (1,1), (0,0)에서 표현되어 이것들의 무한 정열을 통해 하나의 정보가 생성되고, 생성된 그 정보들의 유기적 작용에 의해 의식이 발생한다.
최초사람 영혼의 지성에 정보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의식을 가지지 못한 생태일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1:26~27)
처음 사람의 두귀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렸다고 해서 의식적으로 이해하거나 인식하여 반응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어떤 정보도 없기 때문에 의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이 의식하려면 그 영혼의 지성에 아주 소수라도 정보가 있어야하고, 그 정보로 인하여 육체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인식하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아직 사람은 의식이 없었다.
지음받은 사람이 완전하게 되는 것은 의식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에 지식 정보를 새기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고, 하나님의 형상은
최초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처음 음성으로 말씀을 들은 것이다.
그이전 까지 그 무엇으로부터도 음성이나 말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육체의 두귀에 들려졌고 표상화되어 영혼의 지성에 반영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형상안에 있는 본유지식이 표상을 조명하게되자 영혼의 지성은 조명을 받은 정보대로 지식코드를 생성하여 저장하고 곧바도 코드대로 지각을 갖게됩니다. 이것이 지음을 받은 사람이 처음으로 영혼의 지성에 기록되어진 지식이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안에 있는 본유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식이기 때문에 사람의 지성이 인식하거나 지각하지 못합니다. 만약 이를 인식한다면 그 인식은 사람의 인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인식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식할 수 없고, 반드시 감각에 의해 표상화되고 하나님의 형상안에 있는 본유지식에 의해 조명을 받아 지성이 생성하여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각이 일어날 때 영혼은 형용할 수 없는 충만함을 갖게 됩니다. 이 충만함이 육체의 감성에 반영되어짐으로 마음에서 전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감각한 느낌을 드러냅니다. 마음을 통해 드러낸 이 반응을 육체는 행위를 드러냄으로 하나님을 느끼는 감각에 대한 충만함은, 시편의 노래나, 찬양, 혹은 감사 등으로 표현되어지게 됩니다.
최초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단 한마디의 말씀이 사람을 향하여 발하여졌고, 귀를 통하여 감성의 작용에 의해 표상되고, 그 표상이 지성에 반영 되었을 때, 지성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본유적 지식의 빛이 밝혀지고, 하나님에 관하여 창조에 관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의 존재까지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지식이 생성되어 감성에서 지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음을 받은 후 비로소 존재로서 활성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어 그 말씀에 대한 지식을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자기지식으로 생성하여 전인에서 지각함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고도의 정치를 이용하여 작동되게 만들어진 기계에 마스터키를 삽입시켜 활동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의 지성 안에 있는 지식이 있지만 활성 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무용지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본유적 지식이라 할지라도 그 지식이 활성 되기 위해서는 작용적인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 원인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감각되고 표상화 되어 본유적 지식에 밝혀져서 사람의 지식으로 생성되고 그 지식이 지각되었을 때 사람이 비로서 생명체로서 활동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처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그 사람이 처음 들은 말씀이며,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 잠자는 것처럼 움직임이지 않고 있었는데, 에너지가 유입되어 불꽃이 튀기고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과 같이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는 자의적 존재로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본유적 지식을 활성화시키는 작용적 원인이고, 이 원인에 의해서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이 생성되고, 이 지식은 영혼의 감성에 감각되어 지각된후 전인에 반영됨으로 감각되고 반응으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생명체 활동의 원인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지음 받은 사람을 일어나 활동하도록 깨워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며 사람들에게 빛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지라도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적 기능이 없다면 사람은 언어로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혼의 지성에 있는 본유적 지식이 생명이며,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같이 사람에게 말 할 수 있게 하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교제와 관계 수단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사람으로 그 말씀을 이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느 피조물이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영혼에 새기고 말씀에 따라 행동 할수 있는 생명체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물을 말씀으로 불러 내셨을 지라도 그 말씀을 이해하고 들을 수 있는 지각을 가진 존재는 오직 사람뿐이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셨고 말씀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지능을 그의 영혼에 주신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28)”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천지를 지으신 말씀과 같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말씀은 만물을 불러내는 창조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을 생동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이렇게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성취를 조건으로 하는 필수 조건적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명령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이 땅 위에 번성하게 된 것이며 모든 사람은 그 누구라도 스스로 자연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명령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이 축복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물론하며, 그들이 범죄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범죄에 빠졌을 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지식은 감각을 통해 사람의 영혼에 반영되고 반영된 지식을 밝혀주는 본유적 지식에 의해 영혼의 감성에서 감각되는 지식을 생성하고 이 지식에 의해 감각을 가짐으로 지각작용을 하게 되고 지각작용이 영혼의 감성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감각기관에 느낌을 갖도록 작용 인자를 일으켜 육체에서 비로서 반응을 갖게 됩니다. 영혼의 감성에서 일어난 지각이 육체의 감각에 느껴지는 이 감각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알다/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언어와 말씀
말씀은 지식을 담은 실체입니다. 말씀의 실체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담겨졌으나 시공간에 속하지 않은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조건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점유되어 지식과 의지가 전달되는 피조물들이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전자의 말씀은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으나 대략적으로 창조적이며 생명 자체로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불러내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발하시자 피조물이 말씀대로 존재의 형체를 가지고 시간과 공간 안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사람의 눈에 감각 되거나 감각 되지 아니한 모든 피조물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발하여지면 만물들이 말씀이 의미하는 대로 생성되어지는데(Creation), 생성된 그 피조물을 붙들고 생명을 위지하도록 말씀으로 붙드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붙드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다고 (히브리서 1:3) 사도가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들이 표현하는 언어와 다른 창조적이며 생명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피조물에게 있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셨고, 사도는 이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고, 이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천지를 있게 하신 말씀이고, 하나님의 지식이며,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 말씀이셨습니다. 그 말씀이 최초에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선포되었는데 “생육하고 번성하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로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들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이 어떤 상태로 존재하도록 명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빛이 있으라” 고 명하시자 어두움을 몰아내는 찬란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만물이 그가 명하시매 이루어졌습니다.
후자는 관계 표현을 위하여 뜻과 의미를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말씀에 담겨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듯이 말씀에 지식을 담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창조의 말씀과 같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며 의지를 전달하시기 위해 또한 말씀하시고, 지음을 받은 사람이 사람에게 뜻을 전달하고, 서로간 의사를 표현하며 교제하기위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언어라고 다르게 표현하지만 언어와 말씀의 의미는 같은 것입니다. 이 언어는 지식을 “담았다/함유하고 있다” 할 수 있으나 언어 자체가 지식과 일치하지 않으며 분명히 구별되고 지식을 담은 자루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식을 함유하고 있지 않은 단순한 언어도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된 사물이나 감각되지 않은 사물이 모두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이 언어는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입니다. 이 수단으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교제하시고, 사람이 사람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도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 말씀이 드러납니다. 만물을 불러내시는 창조적인 말씀과 피조물과 관계하시는 Communication 으로서의 말씀입니다.
처음 지음을 받은 사람은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은 혼자였고 그와 교제를 하거나 언어를 통해 서로 대화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의 사고를 깊게 하여 지성을 넓혀 이해의 폭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사람은 마땅히 언어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관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 갖 태어난 어린아이도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려면 수년이 걸립니다. 또한 언어에 관한 지식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처음 지음을 받은 사람이 순간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언어를 구사하며 지식을 말할 수 있는 존재 였을까요? 물론 처음 사람은 완벽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처음 지음을 받은 순간부터 완벽하게 성인과 같은 사고와 감각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과정을 겪은 다음 감각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식을 부여 받았음으로 처음 순간부터 자연적으로 언어를 구사하거나 지식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까지 가졌다고 믿는 것은 지나친 주장입니다. 혹 지식을 언어로 표현하는 시간은 오래지 않았을 지라도 어떤 과정에 있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영에 의해 도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말을 하고 지식을 지각하는 지성적 작용의 탁월함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셔서 뜻을 주시거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별도로 하시거나, 선악과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행위언약을 주시는 것은 불필요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별도로 말씀을 하시는 내용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별도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창조적인 말씀을 적용시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지음을 받았을 때 사람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피조물에게 선언하시는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어떤 조건적인 변화가 있어도 이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말라” 말씀은 창조적인 말씀과 다른 것입니다. 이 말씀은 피조물인 사람에게 수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지만 창조적인 말씀과 다른 것은 그 말씀에 대하여 의지적인 행위 결과를 사람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위임된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에 붙들려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부여된 그 말씀을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에게 부여 되었다는 것은 언어가 사람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언어는 지식을 전달하고 지식은 의지를 일으키며 행동하게 합니다. 말씀이 없이는 사람은 행동할 수 없고, 말씀이 없는 사람이 행동을 한다 하더라도 그 행동은 안전하지 못한 불안한 행동인 것입니다. 마치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의 행동을 웃음으로 보아 넘기고 마음에 두지 않은 것처럼 지식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의 행동은 지극히 동물적인 행동 이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최초 사람이 언어를 시작한 것은 행위언약이 그들에게 부여 되었을 때입니다. 그 말씀을 들은 최초 사람은 하나님과 말씀을 육체의 오감을 통해 감각하여 표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로서 사람이 자기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으며 그의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을 감각하게 되었고, 세상을 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과 세상을 교통하며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며 감각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됨으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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