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하나님의 뜻안에서(롬1:10)

생명있는 신앙 2013. 3. 13. 07:11

하나님의 뜻 안에서(1:10) 0313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1:10)

사도는 이미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자기라는 존재의 위치에 대해서도 깊이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는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수년 동안 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를 다니면서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튼튼히 세워왔습니다. 그는 지금 제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 교회에서 있으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 같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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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한 사람의 뜨거운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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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람을 붙여 주셔야만 하고, 또한 한마음으로 주를 향한 사랑이 있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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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바울의 복음전도에 수많은 사람들이 협력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며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하여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며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에 세우는 일에 생명을 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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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그의 복음 전도에는 항상 평탄한 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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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닥친 수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고 그 어려운 일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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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는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고 복음을 위해서만 자신의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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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예루살렘에서 제 3차 전도 여행을 출발했을 때 안디옥을 지나 북부 갈라디아를 거쳐, 아시아 지역을 두루 돌며 에베소에 도착했었는데, 그곳에서는 아볼로의 제자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볼로의 제자들에게 성령강림의 체험을 주시고 오순절 다락방에서 있었던 방언의 역사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와 함께 뒤를 따라오는 불편한 소식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은 북 갈라디아 지역으로부터 바울의 사도성과 바울이 전한 복음에 관하여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의 비난과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서 다시 유대주의 신앙으로 돌아간 것에 대한 소식이 들려 온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갈라지거나 깨어지고, 이방인들이 어렵게 얻은 신앙마저 흔들려 교회를 등지는 일까지 벌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지난 2차 전도 여행 때 세웠던 고린도 교회마저 파벌과 비 윤리적인 행동들이 문제로 대두되고 사도의 사도성에 관한 문제까지 뒤엉키어 교회의 모습은 땅에 추락하고 있었으며 바울 사도의 방문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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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복음전도와 교회 확장은 보이는 결과만큼이나 많은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어느 주위를 돌아보아도 모두가 문제 투성이었고, 어떤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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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우선 갈라디아 교회에 서신을 보내 자기가 전한 복음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전통과 유대와의 혼합주의 사상으로 공격받은 교회에 복음의 가치를 다시 설명했고, 곧이어 고린도에 서신을 보내 파벌과 사도에 대한 신뢰 없음, 그리고 성도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인한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하여 서신을 보내 구원과  복음에 관하여 확고한 지식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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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이 세운 모든 교회들에 나타난 혼란스런 상황은 소위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사람들이 나타나 율법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할례를 배격하며,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새로운 복음의 질서를 말하는 바울을 비난하는 전통주의자들의 공격에 속수 무책으로 쓰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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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후일에 자신이 로마에 가는 것을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교회의 문제들이 정리된 후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 서신을 보내 그들의 신앙을 견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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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로마서를 보내게 되었는데 이 로마서는 갈라디아 서신과 매우 흡사한 교리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서신보다 더 상세한 이신칭의 내용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 두 서신의 저작 시기가 거의 일치한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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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자신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가는 좋은 길을 얻기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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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이면 바울이 로마에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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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후일에 보면 사도는 죄인의 몸으로 영어가 되어 로마를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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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자세에 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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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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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 전해져야 하는 긴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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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방인들의 수에 비해 구원을 받을 사람들의 수는 아주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수가 바다모래같이 많을 지라도 이 복음은 속히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생애는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을 실천하였고 그 복음이 긴박하고 신속히 전해져야 하는 것을 보여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의 정욕으로 죄의 열매로 태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작정으로 말미암아 이세상에 태어났으나 이방인들은 허락에 의해 태어났으므로 동일한 죄의 열매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탄생의 조건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들인 작정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에게 오신 것이지 허락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사람들에게 오신 것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몫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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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을 구원하려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였으며 십자가에 죽여 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말미암아 구원이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사람들이나 허락에 의한 이방인들에게나 할 것 없이 영접하는 자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고, 사도의 말과 같이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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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이 복음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라 하셨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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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 구별었으나 이제는 하나가 되었고, 누구나 조건은 동일하게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믿고 세례를 받는 자에게 주어졌으며,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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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누구이든지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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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이후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그 부담이 우리의 영혼에 항상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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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 안에서 우리를 부추키는 복음전하는 일은 여기에 전개되는 이 글들을 읽게되면 그 가치에 대해서 점차 이해 되어질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아멘
2013,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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