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10) 0314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1:10)
사도는 로마로 복음을 전하려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아 아직 아시아 지역에서 할일이 너무 많은 것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지역에서의 교회들이 편안하고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며 편한 마음으로 로마를 향하여 나아갈 길을 원한 것입니다. 실지로 당시 상황은 갈라디아와 고린도교회들이 심각한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할례를 부활하고 이방인들의 구원에 관하여 회의적이면서 반드시 할례를 통한 구원을 정통성이라고 가르치고, 사도의 사도권에 관하여 혼란을 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이해하고 있는 복음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전혀 차별이 없어졌고, 전통을 강조하는 히브리적인 유대주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뜻과는 전혀 반대되는 가르침들이었습니다.
사도는 이런 주장들이 속히 로마로 전해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로마와 세계 끝 서바나까지 가서 온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의 최종 목적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 가는 좋은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사도에게는 복음을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명을 사도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알아야 하는 자신의 준비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도의 삶 속에 감추어져 있는 복음전하는 자의 삶이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 삶은 사도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는 그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사도는 자기의 삶을 통해 분명히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8:34, 16:24, 눅 9:23)” 누가복음 14:27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자고 나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산산 수훈의 말씀이 기억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에 이 말씀을 뜰을 때 그들의 위치와 환경이 세상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성취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전혀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반열에 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가 무엇인지 알고, 그 죄에 대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스스로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여된 모든 일들에 대해서 이해하시고 계셨고, 죄를 지으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신해서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으로서 생각을 가지시고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자기의 몸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이것 하나만은 너무도 분명히 자각하신 주님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며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정욕이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영원히 지옥으로 버림받은 세상 이방인들을 낳았습니다. 저들은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가 저들을 낳고 저들을 영원한 저주의 나락에 떨어지게 했습니다. 저들의 영혼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나 실지 저들이 육체로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죽을 때 비로서 자신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영원히 지옥 갈 사람들을 생산하는 엄청난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난 하나님의 창조 계획으로 부터 허락된 저들의 영혼은 얼마나 분노하겠습니까?
이생을 마치고 죽어 지옥으로 들어간 저 영혼의 분노를 보셨습니까?
그 분노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득이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고통에 두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부여된 영원한 고통입니다.
이 세상에 미움, 시기, 질투, 탐욕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것들은 바로 하나님 아들들의 영혼이 아니라 정욕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죄의 열매들의 영혼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의 울부짖음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분노를 말입니다.
“왜 정욕을 일으켜 우리를 낳았느냐?
“너희가 이렇게 낳아 결국은 지옥으로 가는 존재가 아니냐?”
사도는 이 비밀을 알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하여 분노하는 정욕으로 말미암은 죄의 열매인 영혼들,
영원한 지옥으로 치닫고 있는 수많은 허락에 의해 태어난 정욕의 열매들,
“너희는 그때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들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눈을 뜨고 우리의 신분을 정확하게 알고 나면,
우리의 출생에 몸서리가 쳐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왜 그토록 하나님을 싫어했고, 하나님의 아들들을 미워했는지 이제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과 철저히 원수 된 자였던 것입니다.
이제 사도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그 의미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도 기쁘고 온 세상에 기쁨이 임하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환영하지 않는 것을 알 것입니다.
자기들을 존재하게 했다는 이유 때문에 미워하고 분노하는 그들의 영혼에서 나오는 미움과 분노를 알 것입니다. 이렇게 미움이 세상에 있고, 분노가 있으며, 싸움과 죽임이 있는 것입니다.
가인의 분노는 바로 가인의 영혼이 자기를 존재하게 한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속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의 반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아벨을 보내셨습니다.
가인의 분노를 아벨에게 쏟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또 정욕을 일으켜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은 후손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하나님의 작정의 아들보다 죄의 정욕의 아들들이 다 많이 낳게 되었고 그의 후손들이 바로 우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사도의 말대로 하나님과 정욕의 아들들과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의 의미입니다. 아멘 2013,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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