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 1:9)
지금까지의 서신을 살펴보면 사도는 완전히 복음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사도의 생각과 사상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작은 예수와 같습니다.
사도는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니,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의 중심인 로마로 가는 것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 기도 시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자신이 생존해 있는 동언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재림하실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복음을 널리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도가 로마로 가려고 하는 그 뜻은 자기의 명예나 혹은 사도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복음으로 시작하고 복음의 열매를 맺는 결과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자기의 영혼에 새겨지기 이전에는 자기지식의 조명에 의한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지식은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거짓된 지식이기 때문에 삶의 근원에서 목적까지 거짓된 것 뿐입니다.
다메색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을때 성령께서 그의 영혼의 지성에 들어있는 복음들을 조명하자 복음은 빛을 받고 즉시 사도의 영혼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인 사상의 지식인 복음들은 자아에 작용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각과 사상을 지각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도의 생각은 복음에 의하여 얻어진 지식들이고, 사상은 자기본성이었던 옛된 자아가 배제된체 복음만 유기적으로 사고의 결과를 얻도록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의 사고에는 옛 바리새인으로서의 지식들은 배제되고 있습니다.
그 지식들은 어두움뿐이고 진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의이며 진리라고 믿었던 그 생명 없는 유대적 사고는 비참한 인생을 살게하고 세상으로부터의 욕망만 체우도록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울의 옛사람은 유대의 전통과 사람의 유전을 따르는 것이었고(골2:8),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아 복음에 의한 거듭난 사람이 됨으로 진리의 사람이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고, 그 진리의 사람이 이전의 자기지식들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단순하게 비교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그날부터 그에게 말씀하신 그 말씀이 영혼의 지성에 새겨지고 그 말씀에 의해 아브라함을 이끌어 아브라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며 살게하는 전적인 수동적인 삶을 사는 삶과 본래 자기본성의 지식에 의해 살아가는 자기의 삶으로서의 두 사람의 삶을 살고 있던 것과 같습니다.
복음을 받은 모든 사람이 모두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은 사람의 영혼에 직접 지식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의 영혼에서 하나님의 말이 작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에 의해 활동하는 존재가 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결과가 되고 그 말씀으로 직접 행동한다면 그 행위는 하나님의 행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사람으로 행위를 하게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들어오면 사람은 그 들어온 말씀으로 인하여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자기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대로 인식하도록 지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본성의 모든 지식은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왜곡된 지식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거짓입니다.
거짓으로 조직된 지식을 가진 사람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사람은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말씀을 인지하려고 할것입니다. 이는 진리를 거짓으로 조명하여 인지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복음을 들으면 그 복음을 자기 생각 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왜곡되고 거짓된 복음을 인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에 들어오면 이를 조명하여주는 지식이 필요한데 주님께서는 이를 성령께서 역할을 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26)1
그러나 자기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자기를 이끌어 온전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을 인식하기 까지는 자기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생성된 자기지식이 인격적인 지각을 가질 수 있는 충분하게 성장할 때만 가능합니다.
결국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영혼에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는 선재하는 지식이 영혼의 지성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거짓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명하여 자기지식을 결코 생성하지 못함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가인처럼 자기 멋대로 지식을 생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을 뿌려 그 말씀이 사람의 영혼에 심겨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복음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 분명한 정의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의 영혼에 심겨집니다.
사람이 복음외치거나 말할 때 복음은 진리이므로 성령께서 그 복음을 사람의 영혼에 심어주십니다. 영혼에 심겨진 복음은 영혼 안에서 사람이 듣고 이해하고 이미 가진 하나님에 관한 지식들을 조명하여 바르기 진리로 이해되는 지식을 생성하게 합니다. 복음은 사람의 영혼 안에서 빛을 내고 그 빛에 의해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됩니다. 옛 사람, 곧 복음이 심겨지지 않은 사람은 자기 안에 들어온 (두 귀로 들리거나 눈으로 본) 복음을 자기지식으로 조명하여 이해합니다.
이처럼 복음이 심겨진 사람과 심겨지지 않은 사람과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질적인 차이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옛 사람과 새사람으로 구별되는 것을 그 사람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이 심겨져 있는지로 구별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칭 복음 안에서 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안에 복음이 새겨져 있는 사람과 새겨지지 않는 사람과 차이점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입니다.
그것은 가인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자기지식으로 이해하고,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해하고 인식합니다. 그런데 살펴보면 가인은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였을 뿐이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하여 큰 오해를 가지지 않고 말씀대로 이해하여 서로 대화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영혼에 하나님의 복음이 새겨지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복음을 듣고 자기지식으로 이해하며, 정상적인 신앙인처럼 이해하고, 잘못 이해되는 것은 바로잡아 수정하면서, 복음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가 지기합니다. 그래서 자기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고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충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심겨져 있지 않습니다. 마치 가인과 신약시대에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께 제사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종교적인 예의를 다 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는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정말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결코 구분할 수 없습니다.
사도가 복음 안에서 라고 말할 때에는 당시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 있어서 분명한 구별이 이스라엘 곧 유대와 이방인으로 분명한 구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 사람, 곧 유대의 백성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혈통이나 육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들이니라(요 1:13),로 바뀌었고,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결코 차별이 없어졌으며(골 3:11).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가 다 죄 아래 있고(롬3:9), 모두가 오직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된 것 입니다(갈 3:28).
이제는 유대의 율법도, 유대인의 선택도, 아브라함이라는 자손도, 복음 아래에서는 의미가 없어졌고, 모두가 이방인과 같은 죄인일 뿐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있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까지 유대인이라는 우월적인 사고방식으로 이방인을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마음에 우월 의식은 사라지고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제는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이방에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선교사적인 사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이 일을 위해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힘을 입어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러모으는 사명을 감당하려는 것입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된 무리가운데에서 기업을 얻게 하기 위해서(행 26:18) 부름을 받은 사도로서 오직 자기의 모든 삶이 복음중심으로 하게 된 것입니다.
아멘
2013, 03, 11
-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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