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교사요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롬 2:20)

생명있는 신앙 2013. 5. 21. 07:42

교사요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2:20)

 

사도의 생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못 해석함으로 오만해졌고 진리대로 인식하지 못한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경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일에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오류에 빠지게 된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으로서 자신 안에서 일어난 어두워 있었던 영혼을 인식했었기 때문에 자기가 가르침을 받고 율법에 관한 지식을 가진 옛 삶과 자기안에서 일어난 내적인 변화를 통해 율법의 의미를 깨우친 것이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얻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사도와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다른 사도들과 같이 직접적인 육적인 만남이 아니라 부활하신 영의 상태에 계신 그리스도를 만났음으로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만남은 사도에게만의 주관적일 수도 있었으나, 그 만남을 통해서 삶의 변화를 보인 것을 통해 그 만남은 자기만의 만남이 아니라 자기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와의 객관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보이는 특별한 증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남 이후 그는 예전의 바리새인이었을 때의 삶과 전혀 달랐습니다. 

특히 그의 지식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도가 그리스도를 만난 다메색 도상에서의 체험을 신비한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삶의 변화가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을 해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들이 성령의 조명에 의해 성경의 말씀을 인식하고 진리를 발견한 지식과 아니면 자기지식으로 인식하는 것 사이의 구별을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다메색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과 이후 성경에 대한 관점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진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한 진리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을 포기해야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 사도에게 있어서 분명한것은 자기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공부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자기를 바꾸는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최초의 사람의 아들 가인과 아벨을 들어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통한 교훈에서 아벨의 제사는 받아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아주시지 않은 점을 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을 구별해 왔습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의 영혼 안에서 지식을 생성하도록 조명하는 지식이 자기지식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지 구별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로 제사가 받아들여지거나 아니면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 나타나는 결과로 알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인식하는 지식들이 성령의 조명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지식의 조명으로인지 어떻게 구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 두 부류의 사람이 서로 섞이고 함께 봉사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교회는 개종한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신앙 교육을 하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람이 교육함으로 신자들로 하여금 신앙교육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은 교육이 자기지식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처럼 교육이 되고 사람들이 교육을 받은 대로 변화된다면 성령의 조명이 교사를 통해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그 교회는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이나 사도가 원하는 것은 택함을 받은 사람이나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이나 한결같이 진리의 가르침을 받고 한 울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사후에 천국에 이르러 그리스도를 아는 충만한 지식 만큼의 만족을 누리를 영생을 누릴 것이고,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아 타락한 오류의 지식을 조금이라도 자기의 영혼에 가지지 않음으로 사후에 오류의 지식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고통이 가볍게 됨으로 영혼의 고통이 가볍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사도가 자기 영혼의 구원을 버리고서라도 혈육이 구원되기를 바라는 것 처럼(9:3) 할 수만 있으면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려는 간절한 소망이 서로에게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공통적인 관심이 교회 안에서 높은 소망이 되어 이 세상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치를 분명히 진리로 교육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도가 다메색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알았던 지식은 전혀 다른 관점의 배타적인 유대적 지식의 중심에 율법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다같이 교사이고 선생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르치는 교재가 율법이며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우리 영혼에서 진리의 조명을 받은 지식으로 교육을 하는 사람인지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가 말에 따라 스스로 교사로, 선생으로 믿지만 그가 가르치는 지식이 자기의 열심인 지식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떨어지게 하는 비극적인 지식이 되고 말것을 사도가 분명히 목격하고 경험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