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롬3:3)
사도는 유대인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은총과 할례의 징표가 이방인과의 뚜렷한 구별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들에게 있어어 할례와 율법이 더 유익하다고 볼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뜻으로 “나음이 무엇이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분명한 구별이 있는데 그것은 율법이나 할례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을 더 큰 구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계획으로부터 특별한 구별이 있을지라도, 그 구별은 하나님의 작정에 있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직접 적용하는데 있어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곧 유대인은 이방인보다 나은 점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율법이라는 안경을 쓰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들여다 볼 것 같으면 그들에게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율법이 말하는 죄 아래 가두어 지고 율법의 지배로부터 간섭을 벗어나 자유를 얻을 사람은 아무도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특별한 구별은 율법이 유대인에게는 성문으로 율법이 주어졌으나 이방인에게는 양심 안에 그 율법이 감추어져 있다는 점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주제를 율법으로부터 믿음으로 바꾼 것 같으나 실제로는 “의”를 주제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사도는 “의”를 말하기 위해 사람의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성취할 수 있느냐에 관한 말을 서두로 있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믿음은 무엇입니까?
사도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 것이 아니냐? 이방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으나 자기들이 받은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독점으로 누리는 것을 보장하느냐? 그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아 구별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지로는 그들도 죄 아래 있고, 이방인도 죄 아래 있는 것은 율법이 말한바 동일한 죄 아래 있는 것이지 유대인에게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이고 이방인에게는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 해서 다른 죄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다 동일한 죄 아래 있으나 이방인에게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고 이스라엘에게는 그것이 명백히 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과 은혜의 율법은 그들에게 나타난 것과 나타나지 않은 것을 구별할 뿐이지 그것이 독점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말하느냐 그것은 믿음이다." 그런데 그 믿음과 율법의 행위에 있어서 다른 점이 무엇이냐? 라는 생각에서 말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는 믿음의 사람들과 믿지 않은 사람들로 또 다시 구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뉘어진 것과 같이 지금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으로 또 다시 구별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예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어진 것과 같이 이제는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데 이것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라고 말하는 사도의 사상에는 “그들이 믿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 있느냐”하는 듯이 말합니다.
사람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런 사람들이 없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사람의 범죄가 모든 사람을 죄인 되게 한 결과로 인해 죄가 정욕을 일으키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작정이 아닌 허락된 사람들이 태어나게 되는데 이들은 하나께서 허락하신으로 아시지만 작정의 아들과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상으로 창조시작 이전에 완전하고 결함이 없는 창조계획을 가지셨습니다. 이 계획은 완전합니다. 아무도 개입되지 않은 오직 하나님만의 계획이시기 때문에 결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계획안에 있는 허락은 하나님께 있어서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된 피조물들로 말미암은 결과적인 것으로 사람이 자율로 행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하나님의 묵시적 동의를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죄는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인 사람이 자기의 의지로 선택하고, 그 결과로 정욕을 냈고, 정욕으로 사람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낳은 정욕의 열매들 곧 죄의 열매는 잉여의 산물인 것입니다.
사도에게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죄의 관점에서 구별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 그들을 구별하는 분명한 표징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으로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구별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더욱 그 구별은 분명하게 드러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더욱 그 구별이 분명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 죄인이라는 점에서 아무런 구별을 갖고 있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에 대해서 그들이 그 은혜를 무시하고 믿니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되느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았다고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무의미 해지고 사람에게 무용하게 되느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판단에 의해 가치를 상실할 수 있는 것인지 말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은혜가 아무 소용이 없이 사라져 버리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내게 된다”라는 사도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믿지 않는다거나 유대인이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의미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의를 강력하게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도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그들이 율법을 온전히 행하지 않고 오히려 율법을 자기들의 신분을 보장하는 표로 소유하고 있는 것과, 오늘 날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소유한 것을 유대인이 율법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곧 사람들이 믿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보이실 그날에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크게 슬퍼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볼 수 있는 영안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 앞에 두려워 떨고 ‘우리의 의’가 ‘하나님의 의’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즉시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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