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 지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3:4)
이제 우리는 사도의 말로 돌아가 로마인에게 보낸 서신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도는 유대인과 율법에 관하여 말하다가 유대인은 특별한 구별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믿음에 관하여 화제를 바꾸는 것 같습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바 하나님의 의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미 설명한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고 율법을 주면서 구별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들의 편리한대로 생각했고 결국은 사도 자신이 경험했듯이 하나님의 율법마저도 왜곡되게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사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으로 그들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분명히 확인하고, 죄를 깨달아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에서 율법을 몽학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 적용하고 있었고, 선조들을 통하여 자기들을 특별히 구별한 선택의 표증이라고 믿었으며,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분명한 증거들이 자기들의 몸에 있는 할례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믿음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믿든지 믿지 않든지 그들에게는 이미 율법이 주어져 있고, 하나님의 선택이 그들에게 보장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사람이 전통적으로 유전되어오고 있기 때문에 자의로 벗어날 수도 없는 보장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이상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떠나시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믿음을 요구하거나 믿어야 한다는 어떤 요구는 전혀 무가치한 것입니다. 사도는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잘 모르고 있었고, 이방인은 자기들에게 율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실지로 그들의 양심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새겨져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구별이 무의미하고, 유대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비극적인 상태에 처하게 되었을 지라도 그것이 유대인들에게만 특별히 취급받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원인이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믿음을 갖지 못한데서 오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다 해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일이 무가치하게 되느냐? 즉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에 대해서 세상에 드러나는 그 가치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 지라도 하나님의 하신일은 결코 세상에서 무가치하게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데 사람이 받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일이 무가치 해진다면 모든 결과적인 일들은 사람의 믿음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열심히 일을 하셨지만 사람이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일이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하고 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사도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사람의 수용 여부에 따라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받지 않았을 지라도 하나님의 일은 그 빛을 잃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수히 많은 헛일을 하신 것이 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사람이 받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헛된 일을 하신 것으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판단이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완전하심에 대한 모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행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께서 선택의 실수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과 이 방인들의 양심에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져 있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은 본래 사람에게 있어야 하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처음부터 주신 지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사람 안에 있는 그 율법을 드러나게 주신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타락된 상태에서 양심에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이 처음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타락에 대비하여 별도로 구상하여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대한 조화롭지 못한 지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하게 지으셨다는 것은 전지하심으로 인해 사람에게 일어날 모든 일을 아시고 그 행위에 대한 결과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아시기 때문에 창조하실 때 이미 그 모든 것을 계획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사람을 향하여 주신 율법은 그들의 선함이나 미쳐 알지 못하셨던 결과에 대하여 새롭게 주신 것이 아님으로 이미 사람 안에 있었던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에 있었던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타락으로 잃어버린 이 지식들을 다시 드러나게 주심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본래 창조대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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