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로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롬3:4)”
이제 우리는 다시금 죄에 관하여 언급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언급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의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의 위대한 유산인 웨스터민스터신앙고백서는 칭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로 값없이 의롭게 하시되 저들에게 의를 부여 하신 것이 아니라 저들의 죄를 사하시고 저들의 인격을 의로운 것으로 인정하시고 용납하심으로 값없이 의롭게 하신다. 이러한 것은 그들 안에서 이루어졌거나 그들에 의해 행하여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행하여졌고, 믿음 그 자체나 믿는 행위 또는 그 의의 다른 복음적인 복종이 저들에게 그들의 의로써 전가된 것이 아니라 저들에게 그리스도의 믿음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은사이다. (웨스터민스터 11장1)”
우리가 이 칭의에 동의하고 선배 신앙인들과 함께 고백을 함에 있어서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이 신앙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우리 가슴에 느끼는 감각을 가져야만 합니다. 단순히 매주간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처럼 외워지기만 하는 고백이라면 벌써 신앙은 형식적인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매주 예배시 낭독하는 사도신경이 그들이 외우고 낭독한 그 의미가 그들의 가슴에 어떤 감각을 주고 있는가?
매우 의심스러운 실정입니다.
과연 사도신경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마음에 느끼는 뜨거움으로 함께하며 낭독한다면 세상은 이보다 훨씬 깨끗해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가 옳지 못하다는 지식을 우리 영혼이 생성하여 우리자신에게 인식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지극히 정직합니다.
영혼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지음을 받은 대로 작용합니다.
피조물이란 아무리 한계를 뛰어넘어 존재의 탁월함을 말하려 해도 피조물이라는 그 한계를 결코 넘어갈 수 없습니다.
피조물이란 제한적이고 주어진 조건대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피조물의 재한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지식 자체를 가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피조물이라는 지식이 영혼에 들어와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자기 안에 피조물이라는 들어온 지식을 인정할만한 선재하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왜하느냐 하면?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식을 간접 경험으로 영혼의 지성에 새겨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고 감각한 일들을 선재하는 지식의 조명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공부가 없다면 우리는 지식을 더 확장하지 못하고 우리가 경험한 그 지식도 인식하지 못하는 일들이 아주 많을 것이고 그 지식이 없으므로 반드시 필요한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평범한 사람의 지식과 행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지식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작용하는 그 순간 우리를 깨닫게 하는 지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은 자기가 가진 지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지각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그 지식이 있어서 우리를 언제나 조명하여 우리로 깨닫고 알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지각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평범하고도 분명한 영혼이 지식을 생성하는 데는 선재하는 지식이 필요하고 선재하는 지식에 의해 생성되는 지식대로 지각하고 육체로 행동한다는 이 지식이 피조물에게 주어진 규칙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 가운데 우리는 “지식대로 지각하고 육체로 행동한다.”는 이 의미에 대해서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 말은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영혼이 생성한 지식대로 행동을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코 사람은 자연적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하도록 그 규칙이 분명히 적용되어진 존재입니다.
사람의 행위는 그 영혼이 생성한 지식의 결과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규정합니다.
그것의 정답은 사람의 영혼에서 생성한 지식이 옳지 않고, 사람은 그 지식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판단을 받은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 죄인인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 할 어떤 것은 사람에게 주셨는데 사람이 그것을 그 받은 대로 행하지 않고 다르게 행하였다는 말입니다. 즉 사람에게 A를 주었는데 B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A로 행동하도록 어떤 조건을 주셨을 때는 피조물에게만 주어진 규칙입니다. 이런 규칙을 벗어나면 피조물은 혼란스런 상태가 되어 피조물의 구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음을 받은 존재는 지음을 받은 존재로서 창조자의 의도에 따라 작용하고 존재하는 것이 창조자가 판단하는 선입니다. 이 선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고, 악은 죄가 행위로 드러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무엇입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사람으로 행동하게 하는 영혼이 생성한 지식입니다. 선한 나무가 선한 지식을 내고 선한 지식이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죄와 의에 대해서 오랫동안 살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 결론에 이를 만한 답을 모두 가지고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 이 지식으로 인해 우리 자신을 선한 피조물로 바꿔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집중적인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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