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사람은 다 거짓되되 4. *롬 3:4

생명있는 신앙 2013. 6. 22. 05:46

어제에 이어서 계속합니다 .............

 

자 여기에서 한발자국만 더 함께 동행합시다.라고.........

우리 전인이 인식하지 못한 영혼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두가지 서로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영혼은 아담 안에서 작정된 아들로, 다른 아들은 작정되지 않은 아들로, 아담의 첫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영혼을 보면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람 세계에서의 우리 정체성을 너무도 분명히 보게 되고, 사람의 세계에 나뉘어진 두 존재가 결코 평안이 있을 수 없는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자신이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가인과 같은 유기자들의 자녀라는 사실에 치를 떨고 슬퍼하며, 다른 하나는 창조시 계획에 의해 태어나도록 작정된 아들인 아담 안에서 함께 죄를 범한 것에 대해서 치를 떠는 것입니다. 게다가 작정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영혼 자신이 원하지 않지만 죄를 범하고 난후로 육체의 정욕을 억누루지 못하여 사람들을 잉태하고 자신들이 책임지지도 못하고 지옥으로 버려지는 비극적인 존재로 태어난 그 영혼들이 쏟아내는 진노와 분을 감당해야하는 두려운 일을 알고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태어난 정욕의 아들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관적인 절망 앞에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미움을 드러냄으로 세상에 미움을 내는 근원이 되고, 분노를 일으켜 작은 시비로도 사람을 죽이는 일을 서슴치 않고 행하는 양심 없는 행동을 가인 처럼 합니다. 이와 같은 영혼의 울부짖음이 미움, 원망, 시기, 질투, 탐욕, 살인, 등등의 끔찍한 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아들들 사이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영혼의 진노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영혼이 가진 지각을 육체가 알지 못하도록 육체와 소통하지 못하게 하셔서 사람으로 육체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때 언급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나의 영의 정체에 대해서 아직도 신학자들은 분명한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이것을 분명히 말씀 드릴 날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그 육체에 흐르는 전율로 우리의 심장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지체하지 못하고 감사의 삶을 향하여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로서 사람이라는 정체를 바르게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지금 우리의 영혼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가장먼저 정욕을 일으켜 가인을 낳은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세상을 지으실 때 아담의 후예로 작정하여 존재하게하신 그 아들이 정욕을 일으켜 낳은 정욕의 아들입니다. 아주 분명한 진리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좋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정욕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태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만드신 그 지옥이 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미움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사랑만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한번 보십시오. 시기 질투 원망, 이 없는 그 사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회는 천국입니다. 사랑만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만 사는 세상,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미움과 원망과 온갖 저주가 있는 세상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그 주인공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낳은 아들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무엇을 직시하고 있습니까?

육체는 베고픔과 안식과 자기 보호에 관심이 있는 반면 영혼은 미래에 처하는 영원한 세상에서의 자기의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 무시무시하고 고통스런 세상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영혼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미움과 분노뿐입니다.

지금 우리의 영혼은 울부짖고 있습니다.

들여다보이는 시간 너머의 세상을 보고 몸서리치고 있습니다.

영혼은 그곳에서 당하는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기의 영혼은 지식을 내거나 혹은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은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지식이요, 생각뿐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식이 없고, 설령 하나님께서 지식을 주셨어도 그 지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인처럼 그는 하나님을 앞에서 만났고 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진리의 지식을 갖지 못함으로 하나님을 하나님대로 알지 못한 것 같이 진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원한 세상에서 진리가 아닌 그 어떤 지식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 어떤 지식도 영원한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고통 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은 이것을 알고 있으나 이것을 육체의 사람에게 명확하게 알려주고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혼과 육체가 소통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에 있을 지옥을 알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우리의 영혼은 육체가 하는 일들은 미래에 영혼의 고통을 가감하는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선악의 일입니다. 선을 행하며 살면 그래도 그 고통의 무게는 가볍습니다. 반면 악을 행하면 그 악행에 대한 지식이 영원의 세계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그만큼의 고통이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잠재우고 지식이 사람에게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지식을 생성하는 기관이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악행의 지식이 나오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고통은 당연히 무거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은 자기의 육체가 행하는 행위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지속적으로 악을 행할 경우 영혼은 육체를 제어하기 위해 강력한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양심의 소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악을 판단하는 양심의 소리는 어떻게 전인에 반영되어 지각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이상 더 나아가서 우리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조화로운 신학의 질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영혼의 산책을 더하려고 합니다.
영혼의 호소인 양심의 소리가 우리의 전인에 반영된다는 것은 사람의 구조를 다시한번 살펴보면서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영혼은 지성을 담당하고 육체는 감성을, 의지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표하는 전인을 구성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전인인 마음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육체와 영혼의 결함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결합이 깨어짐으로 마음이 사라져 버리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버립니다.

한 사람이 한평생 세상을 살았습니다.

공부를 했고 세상과 관계하며 세상 지식을 가졌었습니다.

사람이 죽어버리자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흔적이라고는 흙으로 돌아가버린 것 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가 알았던 진리와 비 진리의 지식들도 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없어졌나요?

아닙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영원에 속한 존재와 시간에 속한 두 개의 존재가 결합하여 하나의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 것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는 구령에 앞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그 목적을 알면 너무 많은 유익한 것들만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노력이 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을 두셨습니다. 그 형상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지식으로 사람이 자기지식을 가지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이 지식이 무엇인가 곧 하나님의 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6:63)”라고 하셨습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 우리는 로마서 3:4에서 신학의 조화를 분명히 인식하고 넘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칭의를 그 깊고 광할한 세계를 여행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