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51

주의 인자를(시 51:1)

생명있는 신앙 2013. 7. 28. 10:03
끝으로!

오랫동안 우리는 지식에 관하여 말해 왔습니다.
거듭난 지성 안에 있는 지식들, 거듭나지 않은 지성에 있는 지식 이 지식들이 사람을 행동하게 합니다.

그러면 이 지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사람이 인격적인 존재라고 할 때 인격을 기능을 말합니다.

인격에는 감정과 지성, 그리고 마음에 해당하는 의지가 있습니다.

현대 과학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를 발견하려고 아주 많은 연구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기가 가기 전에 마음의 형성은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으로가 우리에게는 마음이 무엇인지 이미 밝혀져 있습니다.

감정에는 후각, 미각, 청각, 시각, 촉각 외에 느낌도 아니고 지식도 아닌 인식에 가까운 공간각이 있고 이것을 통틀어 감각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물은 각기 특유의 냄새가 있습니다. 60억이 넘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데 사람마다 풍기는 냄새가 다 다릅니다. 짐승도 식물도 바닷속을 해엄치는 고기들도 모두 각기 자기의 냄새가 있어서 각각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놀랍게도 사람에게는 같은 냄새를 가진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한 가족이고 한피를 물려받았어도 냄새는 다릅니다. 감정으로만 살아가는 짐승들은 냄새를 맡는 후각이 뛰어나 사람이 느낄 수 없는 훨씬 미세한 부분의 냄새도 쉽게 구별하고 판단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감정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뛰어난 후각이 필요했고, 냄새를 기억하여 냄새에 따라 의지 곧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같지 않습니다. 짐승들과 같이 민감한 후각기능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특히 냄새에 민감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개 코를 가졌어라고 별칭을 붙여 칭하도 합니다. 후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이 사람보다 짐승들이 더 발달해 있습니다. 미각으로 사람이 구별하지 못한 구별을 하여 자기를 보호하는가 하면, 청각이나 촉각은 훨씬 광역의 영역의 미세한 소리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감각으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반응합니다. 물론 사람이 전혀 감각적 반응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몇 가지 부분들에서는 지식과 관계없이 감각적으로 반응 행동을 합니다. 주로 위험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행위 등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것은 지식으로 행동한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자기만의 기호를 가진 냄새가 있습니다. 고향을 그리는 냄새, 즐거움, 욕망, 식욕등 자기만의 고유한 냄새가 있어서 그것을 기호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가진 냄새들이 1만 가지 이상을 기억하고 있지만 이 모든 냄새들을 냄새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냄새에 이름을 붙여 기억합니다. 만약 냄새를 맡았으나 이름이 없다면 그 냄새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냄새를 맡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기억 속에서 냄새를 생각하면 마치 냄새를 직접 맡는 것 같은 감정의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냄새뿐만 아니라 시각을 통해서도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역기능은 짐승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기능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짐승들은 감각에 반응하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모든 감각들이 사람보다 뛰어나게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감각을 인식하고 응용하는 부분에서는 사람과 결코 같지 않습니다. 이것은 짐승들은 감정과 의지만으로 구성되는 존재이지만 사람에게는 감정과 의지와 지성이 있는데 이 지성에서 감각을 응용하여 인식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짐승들과 같이 뛰어난 감각기능을 가지지 않아도 짐승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을 통해서 지식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는 우리의 시도가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람은 지식으로 행동하고 지식에 의해서 삶의 가치가 달라지며 지식에 의해서 사람이 달라집니다.

지식은 지성의 작용에 의해 나오는 것입니다.
지성이 지식을 내는 것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연적인 작용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냄새에는 언어가 없습니다. 즉 지식이없는 것입니다. 만약 냄새에 언어가 있다면 그 맡은 냄새가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냄새를 맡으므로 그것을 아는 지식을 자연적으로 가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성에서는 무한정 지식을 생성해 내는  지식 공장이 아닙니다. 만약 무한정 생성해 낸다면 수많은 냄새에 대하여 기억하지 못할 냄새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맡은 냄새에 대한 모든 지식을 생성하여 명칭을 부여하고 그것을 기억해둘 것이기 때문에 이름이 없는 냄새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냄새를 맡았으나 냄새에 대한 명칭을 알지 못하는 냄새가 있습니다. 명칭이 없는 냄새는 정체를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그 냄새를 맡았을지라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람은 자기 지성에서 지식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의 지성에서 지식을 생성할때 근본이 되는 어떤 지적인 조명을 받아야만 지식을 생성하게 되고 생성된 그지식을 정확하게 기억을 할 수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사람의 영혼이 스스로 생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최초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안에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들을 주셨고 그 지식이 지성에 반영된 표상을 조명하여 지성이 지식을 생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생성한 자기지식을 기억해 두었다가 인식함으로 행동합니다. 

다른 모든 감각도 감각 자체가 언어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존재하는 모든 객체에 대한 감각은 육체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을 표상화하여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면, 이 지성은 이미 있는 지식의 조명으로 표상을 조명하여 지식을 생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은 타락함으로 표상을 조명하는 선재하는 지식을 상실하게 됨으로 타락 이전이 생성하여 가진 지식으로 조명하여 지식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들이 사람의 경험에 비해 너무 작은 부분뿐이므로 알수 없는 부분은 무지로, 지식을 가지지 않은 부분은 결함을 조명함으로 필연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모든 지식은 무지와 결함을 함의된 지식을 생성할 수 밖에 없고, 이 지식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가 하나님 께서 주신 본유지식의 조명에 의해 생성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필연적인 죄뿐이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죄에 속하여 있고,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행하게 하는 이지식은 실질적으로 죄의 본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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