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51

주의 인자를(시51:1)

생명있는 신앙 2013. 7. 27. 06:24

 

다윗은 영혼은 자기의 한 일에 대해서 마음을 찢는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영혼은 육체를 이용해 욕구를 체우고 만족을 누리며 즐거워했었으나, 이제는 그 육체의 행위들이 마음을 찢는 고통속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한 영혼이 자기의 행위를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육체로 다른 반응을 드러내게 하는 양면성을 가진 것은 영혼에 두 개의 지식 그릅으로 구성된 지성이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지식의 작용에서 일어난 반응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면 한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전혀 다른 지성의 작용이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지식 그릅인 지성이 결코 하나의 통합된 지성으로 유기적으로나 혹은 하나의 사람으로 섞이지 않습니다. 두 지식은 서로 다른 코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육체에 나타난 반응을 보면 두 지식 그릅인 지성의 행위는 전혀 다른 도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한 사람 안에 있는 거듭난 지성과 거듭나지 않는 지성이 가진 전혀 다른 도덕 감정으로,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그릅에 있는 지식들은 왜곡되고 거짓된 지식들로서의 도덕을 가지고 있고, 거듭난 지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된 지식으로 구성된 지성이기 때문에 진리에 가까우며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지성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래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에게는 하나같이 거듭나지 않은 지성만 지니고 있을 뿐이지만 창세전부터 이 땅에 태어나기로 작정되어진 사람들의 영혼에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말씀이 심겨지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조명하심으로 생성한 지식들을 가짐으로 타락한 사람에게 하나님말씀을 뿌리로 하는 지식 그릅을 가진 지성이 된 것입니다.

다윗과 같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로 이와 같은 경우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며 회개하는 그 영혼은 거듭난 지성의 지식이 작용하는 것이고, 타락의 삶은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전에 작용하던 거짓과 진리를 왜곡하는 지식의 작용과는 전혀 다른 지식이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식들의 작용으로 영혼이 행한 자기의 행위를 보았고, 그 행위는 죄였으며 하나님을 반역하는 악이라는 것을 지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그의 지성에 조명하시자 거듭난 지성이 이를 인식하는 지식을 생성하였기 때문이고, 이로 인하여 자기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나단으로부터 들려지기 전에는 자기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이 행위로 인한 추악한 만족을 누리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말씀으로 거듭나기 이전 까지는 우리의 행위가 악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배반하며, 불순종하는 삶을 산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거짓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거듭난 지성에 있는 지식들에 의해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다윗의 변화된 자세를 보면서 회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제가 사도의 글인 로마서를 살펴보다가 다윗의 시편의 글을 대표적으로 살펴보는 이유를 이해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초보적이고 핵심인 사상을 가지는 것이고, 이 지식을 시작으로 비로서 기독교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를이라고 다윗이 말하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이 자비하시고 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가지고 계시고 그것을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생성된 지식이 같은 코드의 지식이기 때문인데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코드라고 말하는 것은,  거듭나지 않은 지성에 있는 지식은 모든 지식에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인 반면, 하나님을 아는 거듭난 지성의 지식에는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지 않은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은 무지와 결함을 가진 왜곡된 지식으로 인하여 지식을 가질때는 왜곡된 지식을 가지고,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지 않은 지식의 반영으로 지식을 가지면 그 지식이 올바른 지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지식은 결코 서로 소통되어질 수 있고, 다윗이 선지자 나단의 말을 들을 때 말씀은 자기 안에 있는 거듭난 지성의 지식이 반응하여 자기지식을 드러내는 반응인 것입니다. 이로서 불신자들과 가인이 하나님에 대해 자기의 죄를 깨닫는 회개의 반응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듣고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지식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이 아닌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거짓된 지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적대적인 반응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아는 '주의 인자'가 무엇입니까?

인자는 자비를 다른 말로 번역한 말입니다.
하나님께는 자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그 자비를 사용하여 저에게 적용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비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행한 행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지어주시고 존재하게 하셨는데 하나님을 반역하고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내가 아니라 내안에 죄가 이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비하심으로 죄의 본성인 거듭나지 않은 지성을 저의 본질로 여기지 마시고, 여기 이렇게 하나님을 아는 저를 다윗으로 보시고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께 반역한 저 것은 온전한 다윗이 아닙니다."

"그 행위의 본질은 죄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윗은 자기의 죄를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한바와 같이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17)”에서 말한 것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 앞에 선 한 사람으로서 다윗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지성이 행한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심판대 앞에 설 때 자기를 호소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지 않는 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이것을 저가 하나님 앞에 서서 유구무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자기를 변호하고 호소할 수 있는 이 영혼,

우리가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하는 영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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