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51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시51:8)

생명있는 신앙 2013. 8. 9. 06:25
다윗의 영혼은 이제 욕구로부터 놓임을 받은 상태에 있습니다. 그는 잠시 발작을 일으켜 혼란에 빠졌던 사람과 같이 비정상적인 삶속에서 욕구의 노예가 되었었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삶이었고,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지식들로 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사도는 육체의 삶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다(8:7)고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육신으로 사는 모든 삶이 사망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삶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살펴온 거듭나지 않은 삶과 거듭난 삶이 사도바울의 로마서를 계속해서 살펴 보면 그 중심에 이르러 확인하게 될 것이지만 다윗을 통해서 미리 언급한 것은 로마서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잠시 시편을 살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분명히 언급하기를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에 분명히 말했고,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3:6)라고 하시면서 반드시 거듭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어떻게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거듭남에 대해 너무도 의식적이며 형식적인 인식에 치우쳐 있습니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제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막연한 가르침에 젖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처럼 분명한 거듭남이 제시되고 있고, 사도나 주님의 말씀을 통해 분명히 가르쳐 지고 있으나 이를 이해하도록 해석하는 내용이 지나치게 형식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볼 때 욕구에 메인 지난날들의 삶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5;19)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밧세바와의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을 언급한 것처럼 거듭나지 않은 지성에서 나오는 지식들의 삶인 무질서와 부조화의 삶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앞에서 많이 자주 언급해왔던 것처럼 육체의 삶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가임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가인의 영혼에 있는 무질서하고 조화롭지 못한 지식들의 삶으로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지식들로 살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타락한 사람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비로서 자기 안에 있는 그 더럽고 타락한 속성이 자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삶을 이끌어 왔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비로서 회개의 마음을 갖게 되고 욕구에 얽매여 행한 자기의 죄가 자기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인식하고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자기를 결코 돌아보지 않으시는 것이고, 어두움과 사망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비참한 삶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하여 왜곡된 지식을 갖게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합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본질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없어서 왜곡된 자기 지식으로 이해하여 오만과 당당함으로 대함과 같이 죄는 자기 안에 있는 왜곡된 지식들과 그 행위 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을 통해서 이 두 지식의 사람을 분명히 목격하고 시편의 고백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사람의 호소가 거듭나지 않은 지성으로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밧세바를 범하고 살인을 하며 욕구를 한없이 채워가면서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행하는 삶과 전혀 다른 면을 보고 있습니다.
다윗의 표현은 자신이 죄로 말미암아 뼈가 꺾이는 것과 같은 심한 억눌림의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의 죄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버림을 당할 것과 같은 두려움, 소름끼치는 추악한 행위,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은 죄의 충격은 선지자 나단의 말을 들은 후 잠시 동안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괴로움을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도가 말한 것과 같이 육체의 사람이 결코 행할 수 없는 것처럼 거듭나지 않은 지성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자기의 행위의 죄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하지만 성령의 조명을 받은 말씀에 의해 거듭난 지성을 가진 사람만이 느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면서 사람에 대해서 분명한 지식을 갖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죄에 속하는 일을 면서 그것이 주는 두려움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죄인줄 알면서 그것을 지속적으로 행할 때 감각이 무뎌져서 그 행위가 죄라는 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결국은 그 죄가 자기를 뒤덮어 사망으로 이끌고 간다는 사실을 지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혼의 감성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죄를 알면서 행할 때 그 죄에 대하여 판단을 상실한 감각을 가집니다. 교회에 속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죄와 접촉하면서 살 때 자기 안에 거듭난 지성이 점차 본성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과 그로인한 고통을 지각하지 못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뼈가 꺾이는 고통을 겪는 것은 거듭난 지성이 감당할 수 없는 타락된 지식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지각은 심한 충격과 두려운 공포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혼의 고통입니다.

신자들은 하루의 삶을 마치고 자신을 돌아보면 무수히 많은 죄의 벽돌로 하늘 까지 닿는 벽을 쌓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이 죄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삶에 속한 행위들이 거듭나지 않은 지성으로가 아니면 행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거듭난 지성은 최초 사람이 받은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짐으로 사람이 삶에서 진리대로 행하는 완전한 지식을 상실함으로 심겨진 말씀에 의해 거듭남으로 얻은 지식은 아주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에 지식을 더하여야 하고 이렇게 거듭난 지성을 성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