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7)
NIV 의 성경은 “상한 심령”을 “broken spirit”라고 번역했습니다.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contrite heart, O God, you will not despise.
본문을 보면 여기에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더 표현함으로 상함 심령의 의미를 더 강조하여 이라고 이어서 말합니다. 이는 상한 심령으로부터 일으켜진 마음의 통회 분명히 드러내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런 해석 방식은 말꼬리를 물고 이어가면서 전체의 의미를 하나의 말에 집약시켜 왜곡시키는 경향이 짙게 나타날 수 있으나, 가능하면 왜곡되지 않도록 간단하게 접근하여 이해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상한심령을 원하시므로 그로 인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을 것입니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할 때 타락하지 않은 사람에게 있는 본유지식이 “상한 심령”을 조명할 어떤 지식을 가질 수 있을 까요?
왜 이런 생각을 가지는가 하면, “상한 심령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지각된 지식”은 거듭난 지성에 있는 지식이기 때문에 최초의 지음을 받은 상태로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 상한 심령이라는 지식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에게는 “상한 심령”이라는 지식이 생성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한 심령은 타락한 사람의 일탈 행위를 거듭난 지성이 인식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객관적인 경험을 찾으려한다 해고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는 죄로 인한 일탈 행위를 발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도 없기 때문에 인식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한 심령”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행위라고 할 때 거듭난 지성이 인식하는 자기의 무너짐의 절망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범죄 행위를 지각하고 분명히 인식하면 스스로 무너지는 파멸을 경험하게 됩니다. 실지로 이런 인식을 일컬어 죄로 인하여 얻게 될 결과들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것이 존재로서의 생명과 단절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경험할 때 자기 죽음이라는 종말적인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계의 두려움만을 인식하였으나, 이는 다윗의 거듭난 지성에 최초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상실되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하게 회복되어 인식한 것이 아니라, 아직 구원자의 필요성마저 인식하지 못하는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여만 있는 작은 지식으로 자기의 범죄행위를 인식하고 느끼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지금으로는 경험할 수 없으나, 만약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하지 않았다면 결코 상한 심령이라는 말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을 것이고 다윗의 삶은 죄를 알지 못하는 낙원의 삶일 것이며, 하나님을 알리기 위한 성경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형상의 조명으로 사람의 상태에서 상한 심령을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상태에서는 상한 심령이 발생할 객관적인 객체가 자기의 육체에 감각되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은 하나님의 선한 삶을ㄹ 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상한 심령”은 타락한 사람의 영혼이 자기 영혼에 심겨진 하나님 말씀의 조명으로 인하여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이 지식들의 그릅으로 형성된 거듭난 지성이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행위를 감성으로 지각한 후 전인의 마음에서 인식한 것인데, 거듭난 지성이 자기 본성의 행위를 인식하고 자기 아픔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거듭나지 않은 지성만으로 타락된 본성으로 사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고 말씀에 의해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에 말씀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곧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지성에 가지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지성의 지식들로는 사람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이 생성하여 가진 모든 지식은 왜곡되고 거짓된 지식이기 때문에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자기지식으로 이해하여 왜곡되게 하나님을 인식하여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된 자기지식으로 이해하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지식들이 왜곡된 거짓지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자기의 영혼에 심겨지지 않은 수 많은 사역자들의 성경 해석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해석은 지극히 육적이고, 세상적이며, 성공주의적이며, 번영신학적인 지식입니다. 게다가 신비주의적이기 까지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영혼에 심겨지지 않았으므로 성령께서 그들의 영혼을 조명할 수 없게 되자 가인처럼 자기가 만난 하나님을 본질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되게 하나님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상한 심령”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은 왜곡된 지식의 사람이 자기의 지식으로 판단한 선과 악에 의해 감정적인 판단으로부터 감정을 끌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를 자기의 감정에 이입하여 마치 주님의 고통을 자기가 직접 겪고 느끼는 것처럼 고통과 아픔을 함께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르게 이해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성령의 조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지식이 그리스도릐 십자가를 이해하고 감정으로 적용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을 원하시고 계신다는 것으 타락한 사람의 본성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사람의 본성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고 그 말씀을 조명하시는 성령에 의해 말씀에 비췬 말씀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자기의 타락한 본성으로 모든 세상을 왜곡되게 인식하여 거짓된 지식을 쏟아내는 추한 자기를 보고 가슴을 찢는 통회를 전인으로 인식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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